국민연금 등 사채권자들은 대주주가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산업은행의 추가 감자가 전(全)금융권 채무재조정의 전제가 돼야 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지난해 11월 주식 소각 등을 포함한 대규모 감자를 한 차례 진행한 상태에서 추가적인 감자는 불가하다고 맞서고 있다.
27일 채권단 고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다음달 17·18일로 예정된 사채권자 채무재조정 동의의 전제 조건으로 산업은행의 추가 감자를 요구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채권단 관계자는 "국민연금뿐 아니라 사채를 보유하고 있는 복수의 기관투자가가 감자 요구를 굽히지 않고 있어 당혹스러운 상황"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 측은 "공식적으로 산업은행 등에 감자를 요청한 사실이 없다"면서도 "실무선에서 그런 얘기가 오갔는지는 알 수 없다"고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통상 구조조정 대상 기업이 자율협약이나 워크아웃, 법정관리 같은 구조조정 절차에 돌입하면 대주주 책임론과 자본잠식 탈피 등을 위해 대주주 감자가 이뤄지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 대주주인 산업은행은 그룹 총수 같은 자연인이 아니라 사실상 국가기관이기 때문에 2015년 10월 구조조정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자금 4조2000억원을 수혈하면서 감자가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에도 대우조선해양 경영 정상화가 차질을 빚으면서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자 지난해 11월 산업은행이 들고 있는 대우조선 보유 주식 6022만주가량을 소각하고 나머지 보유분에 대해서도 10대1 비율로 감자를 진행했다. 이때 금융위원회(8.5%), 대우조선해양 우리사주조합(2.5%), 기타 소액주주(39.3%)도 감자에 동참했다.
감자 직후 산업은행의 대우조선해양 지분율은 35.5%로 감소했고 같은 해 12월 산업은행이 1조8000억원 규모의 출자전환에 나서면서 지분율이 77.7%까지 상승했다. 이처럼 산업은행이 감자를 시행했는데도 국민연금 등 사채권자들이 추가 감자를 요구하는 것은 기관투자가인 국민연금 등이 채무재조정에 동의할 수 있는 명분을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주주인 산업은행이 추가 감자에 나서면 그만큼 출자전환에 나서는 국민연금과 사채권자들의 대우조선해양 지분 비중이 높아질 수 있다.
산업은행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우조선해양을 통해 최대한 사채권자 설득 작업에 나서겠지만 감자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채 다음달 17·18일 사채권자 집회에서 채무재조정이 결의되지 않으면 P플랜 돌입이라는 배수진을 친 상태다. 하지만 신규자금 지원조건부 법정관리인 P플랜 돌입 이후에도 감자 논란이 지속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산업은행 지분은 모두 대우조선 회생자금 4조2000억원의 출자전환분이고 사실상 국민 혈세라 다른 이해관계자는 4조2000억원의 혜택을 본 셈"이라며 "추가 감자는 국민 입장에서도 부당하다는 입장이지만 P플랜 돌입 이후 상황은 전적으로 법원이 결정하기 때문에 현재로선 예단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일단 이번주 중 대우조선 경영진 면담을 계획하고 있는 국민연금은 채무재조정 동의 여부를 검토하기 위해 늦어도 다음주 안으로 대우조선해양 회사채 부실 내용을 심의하기 위한 투자관리위원회를 열 계획이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당장 회사(대우조선)가 망할 수 있다면서 채무조정안에 동의하라고 하는데 관련 정보가 불충분한 상태에서 어떤 판단을 내릴 수가 있겠느냐"며 "국민의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선량한 관리자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라도 투자회사에 대한 필요한 모든 정보를 검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별도로 국민연금공단 준법감시인은 대우조선해양 회사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여부도 검토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투자한 회사채가 분식회계가 이뤄진 재무제표를 토대로 발행된 것이라는 점에서다. 대우조선해양은 금융당국이 적발한 분식회계 기간(2008년부터 2016년 3월)에 속하는 2012년 7월부터 2015년 3월까지 회사채를 발행했다.
현재 국민연금은 대우조선해양과 회계법인 딜로이트안진 등을 대상으로 분식회계로 입은 투자
■ <용어 설명>
▷ 감자(감축자본) : 기업이 자본금을 줄이는 것을 말한다. 손실 때문에 기업 자산이 자본금을 밑돌거나 자본잠식 때 이를 메우기 위해 실시한다. 감자가 되면 그만큼 주주들이 손해를 보게 된다.
[정석우 기자 / 문지웅 기자 / 김효혜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