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차 산업혁명 성공의 조건 2부 ③ / 금융의 미래 上 인터넷전문은행 ◆
↑ 일본 도쿄 au숍. 통신사 KDDI가 운영하는 이 매장은 휴대폰 개통뿐 아니라 인터넷전문은행 지분뱅크 계좌 개설과 상담도 가능한 `제2의 은행 지점` 역할을 하고 있다. [김태성 기자] |
고객이 매장 직원에게 "지분뱅크 계좌를 만들고 싶다"고 하자 태블릿PC를 가지고 나온 직원이 "현재 au 휴대폰에 가입돼 있느냐"고 물었다. '그렇다'며 고객이 자신의 au 아이디를 태블릿PC에 입력하자 이름과 주소 등 기본적인 인적사항이 자동으로 계좌 가입 화면에 나타났다. 추가로 필요한 신분증 자료는 태블릿PC 카메라로 찍어 바로 전송했다. 계좌가 만들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3분. 고객들은 새 휴대폰을 개통하면서 지분뱅크 결제계좌를 만들고 요금 할인 혜택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곳에서 만든 모바일 전용통장인 '지분통장'을 가지고 고객은 예·적금과 온라인쇼핑몰 결제, 우리나라 티머니와 같은 전자화폐 충전뿐 아니라 카드 고객을 대상으로 한 신용대출 상품인 카드론, 달러·위안·원 등 8개 통화로 이뤄지는 외화예금과 송금도 모두 할 수 있다.
대주주인 미쓰비시도쿄금융그룹 계열회사인 카부닷컴(인터넷 증권회사)을 통한 주식 매매도 가능하다. 또 올해 들어 일본 최초로 스마트폰 하나로 신청부터 발급까지 논스톱으로 이뤄지는 '서류 없는 주택담보대출(au주택론)'까지 선보이면서 스마트폰으로 모든 뱅킹서비스를 할 수 있는 인터넷전문은행으로 급부상했다.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가 출범을 앞두고 올해 '인터넷전문은행 원년'을 맞는 한국과 달리 이미 일본과 중국 등 이웃 나라에서는 모바일 전용 계좌로 돈을 주고받고 대출까지 신청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만큼 인터넷전문은행이 금융산업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도 국내에서는 여전히 은산분리 규제에 발목이 잡혀 제대로 된 투자와 본격적인 영업이 차질을 빚고 있다.
일본은 2000년 은행 면허심사·감독지침을 만들어 비금융기업의 은행업 진출에 관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이에 따라 비금융사가 인터넷은행 등 은행 지분을 20% 이상 확보하는 것도 사전에 인가만 받으면 문제가 안 된다.
이 덕분에 인터넷포털 야후가 지분 41%를 보유한 재팬넷뱅크, 일본 최대 오픈마켓 업체 라쿠텐이 100% 출자해 만든 라쿠텐뱅크까지 금융업과 무관한 기업 7곳이 현재 인터넷은행 대주주로 활약하고 있다. 금융업과 관계없는 기업들이 대거 인터넷전문은행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 금융과 비금융 간 벽을 허물고 있는 것이다. 지분뱅크는 2012년 136만좌, 3497억엔(약 3조5000억원) 수준이던 계좌 수와 예금 잔액이 지난해 9월 말 현재 230만좌, 7600억엔(약 7조6000억원)으로 급증하는 등 가파르게 덩치를 키우고 있다. 도쿄 본사에 근무하는 직원 217명으로 거둔 놀라운 성과다.
소니의 금융자회사 소니파이낸셜홀딩스가 100% 출자해 만든 소니은행은 모회사 소니의 브랜드 파워를 앞세워 호주와 미국 등 10여 개국을 무대로 외화예금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일본 인터넷전문은행 8곳은 지난해 말 현재 총 14조1000억엔(약 141조원)의 예금 잔액을 보유할 만큼 급성장했다. 지분뱅크가 탄생한 2008년 2조7712억엔과 비교하면 10년도 안 되는 기간에 시장 규모를 5배나 키운 셈이다.
마이뱅크를 운영 중인 알리바바는 자사 온라인 쇼핑몰 거래 내역을 빅데이터로 구축해 이를 토대로 고객 신용도를 분석하고 최고 500만위안(약 9억원)까지 돈을 빌려주는 무담보 신용대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인도에서도 지난해 4월 인터넷전문은행 '디지뱅크'가 출범했는데 수개월 만에 60만명의 고객을 확보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은행은 싱가포르개발은행(DBS)이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내세운 온라인 플랫폼인데, 최근 미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카시스토의 지분을 인수해 AI 신기술 접목에 나섰다.
샨타두 센굽타 DBS 인도 소비자금융그룹장은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모든 연령대가 편리성과 단순함에 호응하면서 거래가 늘고 있다"며 "인도를 시작으로 인도네시아, 홍콩 등 아시아 지역에서 세를 불려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반면 우리나라 국회에서는 비금융자본의 은행 지분율 보유 한도를 50%까지 허용하는 은행법 개정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대기업 사금고화' 논란 탓에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
조대형 국회입법조사처 금융공정거래팀 조사관은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위한 은행법 개정 지연으로 산업자본의 투자가 막히면서 소수주주들만 난립하는 구조를 개선하지 못해 인터넷전문은행의 효율적인 의사결정과 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염려했다.
[도쿄 = 김태성 기자 / 상하이 = 노승환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