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못한 지수 급락에 한국거래소는 시장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서킷브레이커 제도를 4년6개월 만에 긴급 발동했다. 지수가 곤두박질칠 때 주식매매를 일시 정지하는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된 것은 2011년 8월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제도가 도입된 2001년 10월 15일 이래로 실행된 적도 단 일곱 차례에 불과하다. 이틀 연속 코스닥 급락을 부추긴 주범은 다름 아닌 외국인이었다. 특히 바이오·제약주에 대한 집중적인 매도 공세가 두드러졌다. 전날 외국인은 코스닥시장 전체에서 2003년 6월 이후 최대 규모인 1132억원을 순매도한 데 이어 이날도 770억원에 달하는 주식을 팔아치웠다.
김영준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코스닥에서 외국인이 하루 만에 1000억원 이상을 팔아치우며 수급을 주도한 것은 이례적"이라며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으로 리스크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커지자 그동안 성장 프리미엄이 과도하게 붙어 있던 중소형주에 대한 차익 실현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이날 코스닥시장에서는 셀트리온(-11.66%) 메디톡스(-12.75%) 바이로메드(-11.29%) 코미팜(-10.46%) 등 코스닥 시가총액 상위 제약사들이 10% 이상 우수수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바이오·제약주뿐만 아니라 지난해 성장주 랠리를 타고 많이 올랐던 중국 테마주 등 고평가주의 하락세가 무섭다고 분석했다. 연초부터 미국 나스닥의 바이오·기술주가 조정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코스닥에서 가격 부담이 큰 종목 위주로 거품이 꺼지는 국면이라는 지적이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최근의 코스닥시장은 밸류에이션 부담이 커져 2001년 IT 버블 당시와 같은 고평가 구간이었다"며 "지난 5일 기준 주가수익비율(PER)이 17.36배로 코스피 대비 38%의 프리미엄을 받았을 만큼 비쌌던 상태"라고 말했다.
글로벌 안전자산 쏠림이 심해질수록 미국 유럽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연초 이후 대형주 대비 중소형주의 약세가 뚜렷했는데 한국에서는 한발 늦게 반영되고 있는 모습이다. 설 연휴 전까지만 해도 코스닥은 0.15% 떨어지는 데 그쳐 2.25% 떨어진 코스피와 다른 글로벌 증시 대비 선방했다. 그러나 금융 불안이 길어지고 쉽사리 진정되지 않자 더 이상은 밸류에이션 부담을 견디기 힘들어졌다는 지적이다.
김학균 KDB대우증권 투자분석부장은 "나스닥 바이오 업종이 고점 대비 40%나 추락했지만 기업 체질에 근본적인 변화나 이상이 있어서가 아니라 리스크 회피 심리 때문에 많이 오른 종목들이 우선적으로 조정받았을 뿐"이라며 "미국 시장 진입 등 호재가 발표된 셀트리온 주가가 떨어지는 것을 봐도 코스닥에서 동일한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투자 심리 악화로 버블이 붕괴되는 국면에서는 투자를 가급적 자제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심리에 좌우되는 중소형주 시장 특성상 주가의 '바닥'을 섣불리 점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강현철 NH투자증권 투자전략부장은 "코스피는 청산 가치에도 못 미치는 주가순자산비율(PBR) 0.9배로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지만 코스닥 상황은 다르다"면서 "코스닥 중소형주 조정은 이제 시작인 만큼 3월 중후반까지는 조정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년간 600~700선 좁은 박스권에서 횡보하던 코스닥의 저점이 이날 무너진 만큼 조정폭이 깊어지고, 기간도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지난해 4분기 주력 기업의 어닝쇼크 등 악재가 이미 반영된 코스피와 달리 코스닥은 기업 실적마저 안갯속에 있다는 점도 염려를 키운다.
■ <용어 설명>
▷ 서킷브레이커 : 주가가 급락할 때 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주식 매매를 일시 정지하는 제도다. 지수가 전일 종가 대비 8% 이상, 15% 이상 급락한 상태가 1분간 지속되면 각각 1·2단계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돼 20분씩 거래를 중단한다. 20% 이상 급락하면 3단계가
▷ 사이드카 : 선물시장 급등락이 현물시장에 과도하게 파급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코스닥150지수 선물 가격이 6% 이상 상승 또는 하락하고, 코스닥150지수 현물 가격이 3% 이상 상승 또는 하락한 상태가 1분 이상 지속될 때 발동된다. 이때는 프로그램매매 호가 효력이 5분간 정지된다.
[용환진 기자 / 김윤진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