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금융산업에 지각변동이 나타나고 있다. 진원지는 금융산업내부가 아니라 빅데이터와 블록체인 등 정보기술이다.
전통적 금융회사가 독점해온 예금,대출,송금,결제 등 거의 대부분의 금융 영역에서 온라인과 모바일 기술에 의해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 일어나고 있다. 과거 형태의 은행은 10~20년 후에는 사라지거나 모습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변해있을 것이다.
특히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은 중앙은행의 위상마저 흔들 정도로 파괴적이다. 블록체인은 여러 이용자가 거래 정보를 공동으로 인증하고 보관하는 보안기술이다. 이 블록체인을 활용해 발행되는 가상화폐가 바로 비트코인(Bitcoin) 이다.
블록체인은 종전 중앙집중형 거래정보관리시스템에서 대용량 서버나 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투자를 필요로 한 것과 달리 데이터 등록·거래 기록 보관 등 데이터 관리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 인터넷에 연결된 수많은 컴퓨터에 데이터가 분산형으로 저장되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보안면에서도 유리하다. 중앙집중형 결제네트워크인 경우 해커가 금융기관의 중앙 서버에 침투하기만 하면 금융 정보의 해킹이 가능했다. 그러나 블록체인 방식에서는 여러 사용자들에게 이 데이터가 분산 저장돼 있어 단시간내 해킹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은행끼리 연결해서 그 자체가 결제망이 되는 기술도 나와 있으며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그동안 발권력을 독점하고 있던 중앙은행의 위상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블록체인 기술은 자본시장의 인프라 측면에 큰 변혁을 가져올 것이다. 미국 나스닥은 작년 말 블록체인에 기반한 장외시장 거래 플랫폼을 도입했다. 블록체인에 기반한 플랫폼에서는 거래 성립부터 증권 결제까지 걸리는 시간이 종전 2~3일에서 10분으로 크게 단축된다. 외신에 따르면 JP모건 체이스는 블록체인 등 기반구축에 9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수익성이 가장 높은 은행 서비스중 하나인 국제송금 분야에선 송금 절차를 혁신적으로 바꾼 트랜스퍼와이즈(Transferwise)같은 업체가 나타났다. A국과 B국 사이에서 현금을 주고받을 일이 있을 때 A국 내에서 현금을 보낼 사람과 현금을 받을 사람을 연결하고 B국 내에서 현금을 보낼 사람과 현금을 받을 사람을 연결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을 활용하면 실제 A국과 B국 사이에서 움직이는 자금 규모는 최소화된다. 국제 송금 수수료는 기존 수수료의 10분의 1이면 충분하다.
이 같은 혁신이 현재 국내에선 일어나기 어렵다. 우버와 마찬가지로 트랜스퍼와이즈의 방식이 국내법상 불법이기 때문이다. 향후 외환거래에 대한 규제가 완화될 경우 국내 은행산업은 이같은 핀테크 기업으로부터 강한 위협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대안적인 대출 및 송금산업이 커지게 된 것은 전통적인 금융거래기록 이외에 개인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전자상거래기록등을 분석하는 빅데이터 기반 신용평가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자산관리 분야에서는 인공지능에 기반한 로보어드바이저가 화두다. 로보어드바이저의 경쟁력은 싼 수수료다.
다만 자산관리분야에서는 컴퓨터가 사람을 대체할 여지는 상대적으로 적다. 알고리즘의 한계때문이다. 투자판단과 관련된 알고리즘은 체스나 바둑에서 경우의 수보다 더 복잡한데다 산업의 흐름 자체가 알고리즘을 만드는 인간이 예측하는 것보다 더 빨리 바뀐다. 투자판단에 필요한 변수가 워낙 많은데 변수 자체도 계속 변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펀드의 기대수익률이 10%를 넘던 과거와 비교하면 크게 낮아진 지금은 같은 수수료 1%일 때 부담이 대단히 크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온라인화와 로보어드바이저 등의 확대가 수수료 절감 압력으로 계속 작용할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은행이든 보험,증권,카드산업이든 모두 현재 진행중인 혁명의 흐름에서 낙오하면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결국은 전문인력이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을 찾아내고, 그 부분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차별화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 과제를 해결하는 업종과 회사만이 살아남고 언제든 대체 가능한 그렇고 그런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업종과 회사는 생존이 어려울 것이다.
음악저장매체가 LP에서 CD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 / 정리 = 용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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