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증권업종 대차거래잔액은 1억1872만주를 기록해 지난해 말 8940만주보다 무려 32.8% 급증했다. '빌린 주식'을 의미하는 대차잔액은 통상적으로 공매도(숏)를 위한 준비 물량으로 해석된다. 증권주가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는 투자자들은 주가가 비쌀 때 판 뒤 값이 쌀 때 되사서 갚기 때문이다. 김민규 KB투자증권 연구원은 "대차잔액이 100% 공매도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공매도를 위한 대기물량이 늘었다고 볼 수 있다"면서 "증권주의 향후 주가흐름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종목별로는 현대증권 대차잔액이 지난해 말 352억원에서 716억원으로 두 배 넘게(103.4%) 급증했다. 미래에셋증권과 대우증권 대차잔액도 연초 이후 각각 88.6%, 56.8% 급증했다. NH투자증권·신한지주·하나금융지주·삼성증권 등 다른 대형사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증권주 대차잔액이 이처럼 빠르게 늘어난 것은 연초 이후 전 세계 증시가 출렁이면서 증권사 실적에 대한 염려가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급락한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을 보유한 증권사들의 실적 악화가 불가피하다. 투자자들이 위험자산을 기피하고 안전자산을 찾는 추세도 증권사 펀더멘털에 대한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이철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증시 상황을 보수적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증권사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약 20%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실적에 대한 염려뿐만 아니라 변동장에서 롱숏펀드로 자금이 몰리는 것도 공매도 수요가 늘어난 이유"라고 설명했다. 자산운용사들이 수익률 방어를 위해 숏 전략을 활발히 구사한 점도 대차잔액 증가에 기여했을
늘어난 대차잔액은 당장 공매도로 연결되지 않더라도 주가가 조정받기 시작할 때 한꺼번에 쏟아져 추가 하락을 부추길 수 있어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 이 같은 위험 때문에 국내 증권주에 대한 공매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3년 11월까지 법적으로 금지되기도 했다.
[김윤진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