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도 리포트 확대 발간, 사내 편집국 신설 등 잇단 파격 행보를 펼치던 주진형 한화투자증권 사장에 대해 한화투자증권 직원들이 집단 항명에 나서며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주 사장이 표면상 ‘고객보호’를 내걸고 잇단 개혁작업을 펼쳤지만 이 과정에서 한화증권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졌다는 내부 직원 및 시장 평가 때문이다.
3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화투자증권 리테일본부 사업부장 4명과 지점장 53명은 이날 주진형 사장실을 항의 방문해 다음달 5일 실시예정인 ‘서비스 선택제’를 유보해달라고 요구했다. 아울러 한화투자증권 리테일본부 명의로 성명서를 발표함과 동시에 본사 팀장 30여명과 영업점 프라이빗뱅커(PB)들도 일제히 이들에 대한 지지 성명을 사내 인트라넷에 게시했다. 사실상 전직원들이 주진형 사장에 대한 항명에 나선 것이다. 사태의 발단은 주 사장 주도로 한화투자증권이 내달 5일 도입 예정인 새로운 수수료 체계 ‘서비스 선택제’ 때문이다.
서비스선택제란 주식매매 수수료를 기존 거래대금에 비례해 일정 비율로 받던 정률제에서 거래건당 수수료를 받는 정액제로 변경하는 것을 골자로 한 수수료 체계다. 거래비중이 가장 큰 온라인 거래의 경우 기존 수수료는 거래대금*0.1%+1950원에서 건당 6950원으로 변경된다. 이 경우 건당 거래대금이 500만원 이하인 고객은 수수료 부담이 높아지며 500만원 이상일 경우 낮아지게 된다. 고액거래자를 우대하겠다는 것이다.
주 사장은 개인 페이스북을 통해 “온라인 거래는 주문 액수가 크다고 해서 비용이 더 들어가지 않는다”며 “수수료율이 정률로 되어 있으면 고액주문을 내는 고객이 저액 주문을 일삼는 고객에게 보조금을 주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온라인 거래는 고액 주문 고객이 내주는 돈으로 소액주문 고객들이 초단타에 몰두하는 화상 경마장이 되었다”고 적었다. 서비스 선택제 도입이 주 사장이 그간 추진해온 매도 리포트 확대 발간, 과당매매 방지 등 ‘고객보호’ 취지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한화투자증권 직원들은 성명서를 통해 “고객에게 불편을 주는 서비스 선택제 관련 업무는 고객보호를 위해 전면 유보해달라”고 밝혔다. 건당 500만원 이하 ‘개미’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수수료가 인상될 경우 다른 증권사로 이동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해당 수수료 체계가 도리어 ‘고객보호’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화투자증권 관계자는 “수수료를 아끼기 위해 거액 주문을 일괄로 낼 경우 분할 매수, 분할매도라는 위험관리 원칙과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이와 같은 주 사장과 임직원간 충돌은 인사조치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16일 사업부장, 지점장 등이 서비스 선택제 중지 요청 건의서를 제출한 결과 사업부장과 지점장 대표 1명은 대기발령이 난 상황이며 22일에는 권용관 한화투자증권 리테일본부 부사장이 항의의 뜻으로 사표를 제출하고 회사를 떠났다. 이어 지난 25일에는 사업부장 4명 전원과 지점장 53명이 연서해 서비스선택제 중지 요청서를 제출했지만 사측은 사내 이메일 삭제 및 접속불가로 대응에 나섰다. 이날 사장실 항의방문이 이뤄진 이유다.
시장 반응도 싸늘한 상황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주식 매매 수수료율이 현저히 낮아진 상황에서 주 사장의 수수료 체계 변화는 개미들의 이탈만 초래할 뿐 아무런 효과가 없는 ‘보여주기식’ 탁상공론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수수료 정액제 시도는 이미 10년전에 업계에서 폐기처분된 모델이다. 지난 2003년 옛 동원증권(한국투자증권)은
임직원 반발에도 수수료 체계 개편을 밀어붙이고 있는 주진형 사장은 내년 3월을 끝으로 사장직에서 물러난다.
[한우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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