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은행, NH농협은행, KDB산업은행, IBK기업은행, DGB대구은행, JB전북은행…”
우리가 평소 길거리나 광고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은행 간판명이다. 하지만 찬찬히 보면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은행들의 이름이 한글과 영문으로 병기된 것. 이는 마치 삼성의 한글 CI를 ‘SS삼성’처럼 한 것과 비슷하다.
그럼 왜 은행들은 고객은 물론 평소 자사 은행원들 조차 잘 부르지 않는 ‘영문중복 표기’를 고수하는 걸까. 영문중복 표기를 둘러싼 각 은행들의 속사정과 이를 지켜보는 고객들의 시선과 반응에 대해 알아봤다.
이들 대부분의 은행들은 영문중복 표기에 대해 국제화 추세에 대응하기 위한 ‘글로벌 전략’의 일환이라고 입을 모았다.
먼저 NH농협은행은 2007년 국제화 추세에 발맞춰 그간 폐쇄적·정적 이미지의 ‘농협’에서 탈피해 ‘NH농협’으로 이미지 변신을 꾀했다. 2007년부터 IBK를 병기한 IBK기업은행도 글로벌 시장 진출과 트렌드를 반영했다는 설명이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2007년에 새로 간판을 바꿨는데 글로벌화 부각과 다른 시중은행들의 영문중복 표기 추세를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업확장으로 인한 그룹비전 개편 등의 이유로 CI를 변경한 사례도 있었다.
KDB산업은행은 2005년도에 KDB라는 명칭을 1차적으로 사용했다. 이후 국제투자은행을 지향하면서 2010년부터 CI에 ‘KDB산업은행’이라고 썼다. 고대현 산업은행 과장은 “‘대한민국 발전의 금융엔진 글로벌 KDB’라는 산업은행의 비전을 고객들이 친근하게 인지할 수 있도록 KDB를 앞에 쓴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KB국민은행은 주택은행과의 합병과정에서 일련의 시련의 과정을 거쳐 영문을 병기했다.
국민은행 CI개발에 참여했던 관계자는 “초기 계획은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한글이름을 모두 안 쓰고 ‘KB은행’으로 가는 것이었다”며 “시나브로 국민은행이라는 브랜드를 버릴 수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결국 KB국민은행을 사용케 됐다”고 밝혔다.
하나은행은 외환은행과의 통합추진위원회를 오는 20일 출범, 통합 은행명에도 일대 변화가 있을 전망이다.
통합 은행명은 ‘KEB외환은행’에서 영문 이니셜만을 취한 ‘KEB하나은행’이 유력하다.
하나금융지주 관계자는 “외환은행 노조와의 최근 협상에서 노조측이 ‘KEB외환은행’의 상호명을 버릴 수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해 이를 수용케 됐다”며 “이에 따라 한글 ‘외환’ 대신 차선책으로 영문 ‘KEB’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지방은행들의 경우도 글로벌화와 함께 금융지주로 일원화 하면서 한글 앞에 영문명을 병기했다는 설명이다.
DGB대구은행은 종합금융지주로서 자회사들의 정체성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DGB’가 붙게 됐고, JB전북은행 또한 같은 이유였다.
그러나 글로벌화에 대한 고객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서울 영등포구 소재 국민은행을 이용하는 김태영(49·가명) 씨는 “영문명이 앞에 병기돼 있어 발음하는데 너무 어렵다”며 “국내에서 굳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이유가 궁금하다”고 말했다.
경기도 소재 고영민(39·가명) 씨도 “(국내 은행들이)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글로벌 시장 공략은 소극적으로 임하면서 한글상호명 앞에 영문명을 병기해 국제화 전략을 강조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시중은행 복수의 은행원은 “회사 내부에서 조차 한글 이름만 부르는데 어느 고객이 영문이니셜을 포함한 온전한 이름을 불러줄지 의문”이라며 “어찌보면 이것이 국내 은행들의 글로벌 전략의 현주소인 것 같기도 해 씁쓸하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매경닷컴 류영상 기자 / 김진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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