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사이에선 국민연금이 기금운용원칙에 따른 책임 있는 결정을 내렸다면 곧바로 판단 근거를 공개하는 것이 2100만 국민연금 가입자의 알권리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3일 국민연금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지난 10일 개최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안 관련 내부 투자위원회에서 찬성 입장을 결론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공개하지 못하는 이유는 '국민연금기금 의결권 행사지침' 때문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최우선 기준이 되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지침'(지난달 9일 최신 개정) 제17조 4항에서는 "의결권 행사의 기준, 방법, 절차 등에 관한 사항은 기금운용위원회가 별도로 정한 국민연금기금 의결권 행사지침에 따른다"고 명시돼 있다. 지난해 2월 개정된 '국민연금기금 의결권 행사지침' 제10조 1항 2호에서는 "상장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 내역을 주주총회 후 14일 이내에 공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 합병에서 국민연금이 사실상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것으로 평가되는 가운데 국민연금이 찬성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못하면서 투자자들의 혼란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번 합병에 문제를 제기한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연금의 내부 의사결정을 무시한 채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가 판단하는 게 맞다며 사실상 입장 번복을 압박하고 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규정상 입장 공개가 가능했다면 지난 10일 곧바로 알리는 게 깔끔하고 떳떳하게 보일 수 있는데 현재로선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아쉬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 방향 공개를 주총 이후 가능토록 한 것은 자본시장에서의 막강한 영향력을 감안할 때 다른 투자자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이 공식적으로 결정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게 오히려 시장의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수익성·공공성·독립성 등 기금운용원칙에 따른 책임 있는 판단이라면 오히려 명확하게 입장을 밝히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전광우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현행 규정은 국민연금의 결정이 다른 주주에게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한 신중한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책임 있고 떳떳하게 기금운용원칙에 부합한 결정이라면 투명하게 대외적으로 알리는 게 국민연금 의사결정에 대한 가입자들의 신뢰를 높이는 데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기금운용본부가 자체 의결권 행사 결정이 어려울 경우 판단을 이관할 수 있도록 돼 있는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와의 형평성 측면에서도 주총 이전 입장 공개를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지침 제3항에서는 "기금운용본부는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가 결정한 의결권 행사방향에 대하여 위원회가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해 주주총회 개최 전에 공개를 결정하는 경우 그 내용을 공개할 수 있다"고 예외를 두고 있다. 당초 의결권행사위원회도 주총 이전 결과 공개가 안 됐지만 2008년 12월 기금운용위원회가 이를 승인해 2009년부터는 공개가 가능해졌다.
연기금 사정에 밝은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공개할 사안의 중대성과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의결권위원회가 동의하면 공개할 수 있도록 한 것과 달리 기금본부 투자위원회는 안 된다는 현행 조항은 형평성에서 분명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주요 의사결정이나 입장 공개와 관련된 혼선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전문성과 독립성을
[최재원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