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떠나는 신제윤 前 금융위원장의 소회
'신 위원장' 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기억할 것이라고 보는지 물어봤다. 그는 "사고 수습하느라 정신 없었던 장관으로 기억하지 않겠느냐"고 자신을 낮췄다.
신 전 위원장은 지난해 1월 발생한 카드사 고객정보 대량 유출 사태가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끊었던 담배를 잠시 다시 태웠던 때이기도 하다. 그는 "짧은 기간에 온갖 대책을 쏟아냈는데 다행히도 당초 예상보다 사태가 조기에 수습됐다"며 "사람들은 잘 느끼지 못하겠지만, 당시만 해도 온 국민 휴대폰으로 수시로 들어왔던 '김미영 팀장 대출 권유' 문자가 이제는 거의 사라지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김미영 팀장' 하면 보이스피싱 사기 전화의 대명사로 통했다.
신 전 위원장은 "사태 수습도 많았지만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위한 기술금융과 핀테크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며 "1년 전만 해도 용어조차 몰랐던 핀테크를 이제 금융권에서 다 얘기할 정도가 됐는데 불과 1년 만에 벌어진 일"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위원장으로서, 그리고 30년 넘는 정통 금융관료로서 가장 힘들었던 점을 물어봤다.
신 전 위원장은 "금융이 참 어렵다. 기업이 망하면 금융 잘못이고, 금융이 지원했다가 망하면 금융이 더 큰 잘못이고, 만약에 금융이 지원했다 살아나면 그것은 기업이 잘해서 그런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며 "조용하게 잘된 것에서는 금융 역할이 잘 드러나질 않는다. 그게 '금융의 숙명' "이라고 말했다.
남들은 잘 기억 못하겠지만 금융위원장으로서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 하나를 말해 달라고 했더니 그는 '회사채 신속인수제도 도입'을 꼽았다. 한 기업에 회사채 만기가 집중적으로 도래할 경우 회사채의 80%를 산업은행이 총액 인수해 주는 제도다. 금융 구조조정 과정에서 채권시장을 비롯한 금융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신 위원장 시절에 도입됐다.
신 전 위원장은 "해운 업체들이 최근 저유가 시대가 오면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며 "당시 상황만 보고 그때 다 문 닫게 했으면 어떻게 되었겠느냐. 금융이 역할을 해줘서 살아남은 사례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주회장과 은행장이 동시에 중징계를 받고 물러나는 것으로 귀결됐던 KB사태에 대해서는 "아쉬운 점이 많고 아직도 이해 안 되는 부분도 많다"며 "그렇게까지 가지 않을 수 있었는데 '템플스테이'에서 일이 벌어지면서 완전히 틀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역사라는 것이 아주 사소한 곳에서 틀어지더라"고 덧붙였다.
우리금융 매각과 관련해선 "오랜 숙원이었던 우리금융의 민영화 물꼬를 텄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다"며 "우리은행까지 무리해서 매각할 수도 있었지만 제대로 팔고 마무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신 전 위원장은 재임 기간에 우리금융의 증권 계열 부문과 지방은행 등을 모두 매각했다.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선 수익성 회복이 시급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신 전 위원장은 "대표적으로 금융사들의 수수료를 비롯한 각종 가격을 현실화해 정상화시킬 필요가 있다"며 "단돈 100원이라도 수수료를 인상하면 여기저기서 아우성이겠지만 지금은 비정상적인 측면이 많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한 국가 안에서만 보면 금융을 산업이 아닌 것으로 볼 수 있지만 해외로 나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금융을 해외로 확장시켜서 생각하게 되면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하나의 산업으로 볼 수 있다. 한국 금융이 해외로 나가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퇴임 후 계획으로 얘기가 옮겨갔다. 신 전 위원장은 "차기 금융위원장 선임 발표 직후 파리에서 열린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총회에 차기 의장 자격으로 출장갔는데 남들은 이제 좀 쉬다 오라고 했지만 그게 아니더라. 진짜 밤늦게까지 회의하고 자료 정리하는 강행군이었다. 이렇게 일이 많을 줄 몰랐다"며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이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 시절에 추진해서 의장 자리를 확보한 것인데 진 원장에게 속은 것 같다"고 농담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에서 앞으로 국제기구에 진출하는 국제금융통이 많이 나와야 하는데 저도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 국제금융계에서 'J Y Shin'이라고 불리는 신 전 위원장처럼 자신의 이름 이니셜로 불리는 한국의 국제금융통은 많지 않다. 대개는 국가명이나 직함으로 불리기 일쑤다.
이임사에서 '평생 저와 함께 금융강국을 꿈꿔온 사람'이라고 말했던 임종룡 신임 금융위원장에 대한 따뜻한 애정의 말도 아끼지
[송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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