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1차 관문인 신용등급 문턱에 걸려 얼마 전 특허를 받은 신기술 담보 가치는 아예 평가조차 받지 못했다”며 “이럴 바엔 뭐하러 기술금융 대출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반면 중소기업 사장 B씨는 평소 친하게 지내는 은행 직원이 기술금융 대출을 받으라고 연일 권하는 정반대 경험을 하고 있다. 기술금융 대출을 늘리라는 윗선 지시에 실적 압박을 느낀 은행 지점이 평소 재무 상태가 우량한 B씨 회사에 돈을 빌려주면 떼이지 않으리란 판단을 내린 것이다.
B씨는 “돈이 필요 없어도 일단 빌려서 통장에 쌓아놓으면 (이자 때문에)손해 보지 않도록 예금 금리를 맞춰주겠다고 약속해 대출을 받기로 했다”며 “회사 기술 평가는 허울뿐이었다”고 말했다.
시중은행이 정부 시책에 따라 기술금융 대출을 늘리고 있지만 이 중 상당수가 편법으로 운영된다는 불만 섞인 목소리가 중소·벤처기업인 사이에서 쏟아지고 있다. 기존 신용대출을 기술대출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19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7월 486건 1922억원에 불과했던 일선 은행 기술대출 잔액은 지난달 6235건, 3조5900억원으로 규모가 커졌다. 넉 달 만에 대출 규모가 18배 넘게 뛰었다.
기술금융은 잠재력 있는 기술에 돈이 들어가 꽃을 피우게 하는 게 주 목적이다. ‘한국판 구글’에 기술력 하나만 믿고 돈을 빌려줘 창조경제 주역으로 키우자는 게 제도 취지다. 하지만 시세가 있는 땅이나 건물과 달리 기술은 평가하기가 까다롭다. 관건은 기술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 데이터를 어떻게 얻느냐다. 지금은 한국기업데이터(KED)를 비롯한 3대 기술신용평가기관(TCB) 평가를 쓰고 있는데 평가자 주관을 반영한 수작업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아 객관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게 현장 목소리다.
시중은행 기업금융 담당 부장은 “은행으로서는 공신력 없는 기술평가보다 자체 신용등급을 우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순수 기술만 평가해 대출을 받기는 현 제도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부동산으로 치면 공시지가를 제공하는 한국감정원 구실을 할 기구가 기술금융에 필요하다는 얘기다. 일찍부터 지식재산권이 발달한 미국에는 특허 빅데이터업체인 인텔렉추얼벤처스, 아카시아리서치, 오션토모가 이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함유근 건국대 교수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기술 가치 데이터를 수집해 빅데이터 솔루션으로 분석하면 수작업에 비해 훨씬 객관적인 수치를 얻을 수 있다”며 “한국도 기술평가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외형에만 집착해 기술금융 대출을 독려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상빈 한양대 교수는 “정부가 실적을 내기 위해서 기술대출을 늘리라고 은행들을 몰아붙이고 있다”며 “(TCB로) 기술의 사업성을 파악하기 힘든데 은행이 이를 평가해 대출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기술금융 명목으로 돈을 빌린 업체가 부실에 빠지면 대출을 해준 은행만 손해 보고 정부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도덕적 해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일부 은행에서는 기술대출을 늘리
■ <용어 설명>
▷ 기술금융:기업 재무 상태가 아닌 보유 기술을 잣대로 자금을 지원하는 것. 자금력이 열악한 신생 벤처를 키우기 위한 정책 일환이다.
[홍장원 기자 / 김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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