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니 다른 은행 직원 명의의 통장이었다. 통장에는 인감 날인이 없었고 발급 당시 비밀번호도 직원이 마음대로 입력한 것으로 조사됐다. 여직원이 평소 잘 아는 다른 은행 직원들과 짜고서 실적 밀어주기 용도로 이름뿐인 통장을 무더기로 발급한 것이다.
W은행 모 지점은 작년 12월 자기앞수표 3장을 분실한 사실을 6개월이 지난 최근에야 금융감독원 검사에서 발견했다.
자기앞수표는 중요 증서이기 때문에 창구 보관 시 관리표에 기록해야 하고 매일 업무를 마감할 때마다 관리표대로 실물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지난 6개월간 사라진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 금감원 관계자는 "시간이 한참 지나 어떻게 분실됐는지 상황 파악도 어려운 지경"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최근 한 달간 시중은행 22개 영업점을 대상으로 점검을 실시한 결과 이처럼 내부 통제가 엉망인 사항을 무더기로 적발했다고 19일 밝혔다. K은행 모 지점의 창구 직원은 검사 도중 관리표에 나와 있지 않은 통장 10여 개를 책상 아래 세단기로 폐기하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적나라하게 찍혔다.
W은행 모 지점에서는 중요 증서 담당 직원이 자석을 사용해 본인 통장의 마그네틱(MS)을 지워서 통장을 새로 만드는 식으로 부족한 통장 개수를 채운 사실이 적발됐다. 이런 용도로 만들어진 미사용 통장이 무려 70여 개에 달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통장 발급 시 오류가 발생하면 지점장 승인을 받아 통장 수량을 조정해야 하는데 통장 수량이 부족할 때마다 직원 본인 이름의 잉여 통장을 만들어왔다"고 전했다.
거래처 통장을 임의 보관하고 고객정보 관리를 소홀히 하는 식의 규정 위반뿐 아니라 금융 거래 때 반드시 지켜야 할 금융실명법ㆍ자본시장법도 위반했다.
N은행 지점에서는 직원이 본인 확인 없이 고객 30여 명의 신규거래신청서를 임의로 작성하고 신규 계좌를 만든 사실이 적발됐다. 또 고객 본인 확인은 물론 투자 상품에 대한 설명도 제대로 하지 않고 수억 원대 위험 투자 상품 가입을 권유하고 판매한 사실도 드러났다.
S은행 지점에서는 기업대출 시 고용 임원에 대해 연대보증을 요구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연대보증서를 작성하게 한 후 이면으로 관리해왔다. 일부 지점에서 적발된 사례들이지만 다른 은행 점포에도 비슷한 사례가 많을 것으로 금감원은 보고 있다.
관행적으로 처리해온 일이어서 당장은 문제가 안될지 몰라도 여차하면 은행원 본인뿐 아니라 은행 전체가 책임을 져야 하는 대형 금융사고로 번질 위험이 있다.
올해 초 발생한 카드사 고객정보 유출 사고나 국민은행의 국민주택채권 횡령과 같은 대규모 금융사고도 일개 직원이 아주 세부적인 내부 통제 사항을 위반한 데서 시작됐다.
근본적으로 실적을 우선시하는 은행 문화가 바뀌어야
[배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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