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동제약은 24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본사에서 열린 임시 주주총회에서 지주사 전환을 위한 기업분할 안건이 찬성 54.6%, 반대 45.4%로 찬성표가 많았으나 가결 요건인 출석 주식 중 3분의 2에는 못 미쳐 부결됐다고 밝혔다.
제약업계는 2001년 녹십자를 시작으로 대웅제약 JW중외제약 한미약품 동아제약 종근당 6개사가 지주회사로 전환했으며 2대 주주 반대로 무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주총에는 의결권 있는 주식 중 93.3%가 출석했다. 2대 주주인 녹십자 측(29.36%)이 반대표를 던진 게 결정적인 작용을 했고, 지분 9.99%를 가진 피델리티도 반대 의견에 힘을 보탰다.
국내 제약업계는 100년 넘는 역사 동안 오너 일가끼리는 서로 돈독한 관계를 맺어왔다. 고 허영섭 녹십자 회장과 윤원영 일동제약 회장도 옆집에 살면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일동제약이 그동안 녹십자 측 지분을 우호 지분으로 분류해 온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녹십자 측은 16일 이호찬 씨 지분(12.57%)을 매수해 지분율을 29.4%로 끌어올리면서 '경영 참여 목적'을 공개함으로써 적대적 M&A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이날 일동제약 주총에서 녹십자가 지주사 전환을 반대하면 경영권 확보라는 의도를 공식화하는 것이라는 부담을 안고도 녹십자는 강행했다. 녹십자 임원은 "2대 주주 위치는 경영 감독 책임도 있다"면서 "2대 주주로서 개인투자자까지 고려한 책임 있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녹십자 측 움직임에 대해 '형제 간 정리설'을 제기하고 있다. 녹십자는 2009년 창업주인 고 허영섭 회장이 사망한 뒤 지금은 허일섭 회장(녹십자홀딩스 10.3%)이 경영하고 있다. 따라서 고 허 회장 차남인 허은철 부사장과 경영권 분쟁 불씨를 안고 있다. 이로 인해 허은철 부사장이 녹십자 경영권을 승계하게 되면 숙부인 허일섭 회장이 일동제약 경영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특히 이날 주총에서 3대 주주 피델리티(9.9%)도 지주사 전환에 반대해 관심을 끌고 있다. 피델리티가 이날 지주사 전환에 반대표를 던진 것은 '몸값 높이기'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델리티는 녹십자와 경영권 분쟁으로 일동제약 주가가 상승하는 것이 자신들로선 나쁠 이유가 없다.
일동제약 경영권 다툼이 쉽게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실제 지난 17일 허일섭 녹십자 회장과 윤원영 일동제약 회장 등 양사 오너가 모여 대화를 나눴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동제약 측은 이날 "결과를 겸허히 수용한다"며 "향후 기업 가치 증대를 위해 녹십자와도 지속적인 대화에 나서겠다"고 공식 태도를 밝혔다.
양사가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지분 경쟁을 벌여야 한다. 피델리티 지분을 인수하면 녹십자와 일동제약 모두 최대주주에 오르게 된다. 피델리티
지주사 전환 안건이 부결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일동제약 주가는 다시 상한가로 돌아섰다. 24일 일동제약은 전날보다 2250원(14.9%) 오른 1만7350원에 장을 마감했다.
[박기효 기자 / 이새봄 기자 / 용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