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드사 정보유출 후폭풍 / KB금융 경영진 사의 ◆
KB금융ㆍKB국민은행ㆍKB국민카드 경영진 27명이 일괄 사의를 표명한 것은 예상된 수순이었다. 피해 규모가 가장 컸고, 카드가 아닌 은행 정보까지 함께 유출됐다는 점이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사상 최대 금융정보 유출 사건으로 전 국민이 혼란에 빠지자 정부와 금융당국은 이례적으로 강도 높게 경영진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여기에 정치권은 20일 오후 긴급 당정협의를 열어 책임자를 엄중 문책하고 근본적인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검사ㆍ제재 조치와 별도로 고객 정보 유출로 국민을 불안하게 만든 데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KB금융 경영진은 잇따른 악재를 극복하고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일괄 사표를 내기에 이르렀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이날 오전 신제윤 금융위원장에게 "정확한 상황과 피해를 국민에게 자세히 알리고 재발 방지 대책 수립과 책임자 처벌을 대폭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총리가 이 같은 지시를 내린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9일 저녁 기자들과 만나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이라도 해당 그룹 최고경영자(CEO)가 국민이 납득할 만한 인사 조치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원장은 "사태 수습이 우선이지만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금융당국이 작심하고 사퇴를 압박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금융당국 안팎에서는 당초에 '사태 수습 후 문책 인사'가 거론됐지만 유출사고 여파가 일파만파로 커지자 조기 수습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런 뜻을 공개적으로 전달했지만 이날 기자회견에서 카드사 사장들은 즉각적인 사퇴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이런 태도에 금융당국은 적잖이 당황했다는 후문이다.
최 원장은 이날 임원회의에서 발언 강도를 높였다. 최 원장은 "카드사 경영진에 대한 책임을 조기에 묻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지주회사 차원의 책임도 묻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최 원장은 "자회사 간 정보 교류 남용으로 인한 은행 정보 유출이 지주회사 관리 소홀 및 내부 통제 문제로 드러나면 이에 대한 책임도 묻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KB금융은 이번 일 외에도 지난해 말부터 도쿄지점 비자금 사건, 국민주택기금채권 위조ㆍ횡령 사건, 카자흐스탄 BCC은행 투자 부실 등으로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여론이 높은 상태였다.
KB금융은 '선별 수리' 입장을 밝혔지만 상당수 임원들이 물갈이될 예정이다.
심재오 KB국민카드 사장은 사건이 터진 이후에 취임했지만 교체 여론이 높다. 또한 최근 일련의 사고에 국민은행이 있었기 때문에 지난해 7월 취임한 이건호 국민은행장이 낙마할지도 주목된다.
손경익 NH농협카드 분사장도 책임 지고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고, 김주하 농협은행장이 곧바로 이를 수용했다. 같은 날 사의를 표명한 박상훈 롯데카드 사장도 교체가 확실시되고 있다.
다만 이번 일로 인한 사퇴 여파가 금융지주 회장에까지 미치지는 않을 전망이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금융당국은 금융 지주회장까지 책임질 수준은 아닌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알고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앞으로 내부 직원의 잘못으로 유사한 사고가 일어난다면 CEO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감독 규정을 바꾸든지 필요한 절차를 거쳐서 제재의 최고 한도를 높이고, 금융당국 수장으로서 이번 사건을 포함해 앞으로 CEO가 도의적 책임이라도 꼭 지게 하겠다"고 밝혔다.
[박용범 기자 / 이덕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