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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N 스포츠야 제공 |
‘K리그 베스트11, 축구대표팀 발탁, 스코틀랜드 리그 진출, 남아공월드컵 첫 원정 16강 진출, 런던올림픽 동메달 쾌거, 프리미어리그 진출, 축구대표팀 주장, A매치 센추리 클럽 가입 등.’
절대로 지기 싫어하는 승부욕과 거침없는 성격에 지금껏 여러 구설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오랜 해외 생활로 인한 외로움과 치열한 생존 및 주전 경쟁에서 얻어진 단단함, 그리고 국가대표팀 주장이란 책임감 등이 중첩된 영향인지 언젠가부터 10대 시절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매사 고심과 고민을 안고 사는 것처럼 보인다. 사회적 책임감은 물론, 아내와 자녀의 영향도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MBN 스포츠 전문 토크쇼 ‘스포츠야’에서 10여년 만에 마주한 33세 기성용은 실제로 그런 사람처럼 보였다. 인사부터 다른 출연자와는 조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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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N 스포츠야 제공 |
보통 자기 소개를 해달라고 하면 이름 앞에 직함이나 여러 수식어를 붙여 소개하곤 하는데 기성용은 위 인사처럼 ‘열심히 뛰고 있는’이란 단순하면서도 어딘가 다르게 표현을 했다. 얘기를 듣다보니 왜 그렇게 자신을 설명하는지 알 수 있었다.
Q.시즌 중 방송 출연이 쉽지 않은데 어떤 결심으로 나왔나요?
“여러 좋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이고, 많은 팬에게 제 얘기를 잘 들려줬으면 좋을 것 같아 나오게 됐습니다. 방송 출연은 2018년 러시아월드컵 이후 처음인 것 같네요.”
Q.유럽에서 뛰다가 국내 FC서울로 복귀한지 3시즌째인데 팬들이 예전처럼 많이 응원하죠?
“아직도 많은 분이 응원해주시고 성원을 많이 보내주셔서 참 감사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열심히 끝까지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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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 한혜진 씨 인스타그램 |
Q.세월이 많이 지나서 최근에는 딸과 그라운드를 밟는 시간도 가졌죠?
“딸아이가 아빠가 뛰는 경기가 긴장이 되는지 그동안 잘 안 보려고 했는데, 저랑 같이 ‘에스코트 키즈’로 입장해보더니 한 번 더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좋은 추억이 됐나 봐요. 딸이 아기 때 제 센추리 클럽 가입(A매치 100경기 출전) 경기에 제 손을 잡고 입장했었는데, 시간이 참 빠르게 간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저도 ‘나이를 많이 먹었구나’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Q.17세에 FC서울에 입단하던 때 돌이켜보면 옛날 생각이 많이 날 것 같아요.
“사실 그때 제가 어떻게 경기를 했는지 기억이 잘 안나요. 그래서 ‘어릴 때 어떻게 경기했지’ 생각하고 영상을 찾아볼 때도 있어요. 지금과 비교하면 그때는 완전히 다른 선수더라고요. ‘나한테 저런 시절도 있었구나’란 생각도 들고 그립기도 해요. 지금은 많은 경험을 통해서 노련미는 생겼지만요. 그런 그리운 시절이 있었죠.”
Q.올해 국내로 복귀한 절친인 구자철(제주)과도 그런 얘기들을 많이 나눌 것 같아요.
“함께 대표팀 생활을 하고, 해외에서 경험을 했다보니까 공통된 부분이 많아서 얘기를 많이 하게 돼요. 저희가 축구 선수로서의 날이 얼마 안 남았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건지 얘기를 많이 해요. 은퇴하면 뭐 할 건지, 어떤 식으로 일할 건지, 자녀 얘기도 많이 하고요. 그 친구랑 전화하면 대화가 끊기지 않아요. 길어져요. 여기 오면 아마 방송 안 끝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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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
이제부터는 현실적인 얘기로 해보려고 한다. 기성용은 시끌벅적하게 국내 친정팀으로 복귀했던 시기(2020년 7월)를 지나 지난 시즌에는 최하위까지 떨어졌다가 7위로 마무리하는 ‘롤러코스터’를 탔다. 그렇게 반등을 하면서 올 시즌은 앞두고는 희망을 꿈꿨다. “올해는 다를 것”이라고 힘차게 다짐하고 복귀 3번째 시즌에 돌입했건만, 정규리그 2경기를 남긴 현재 FC서울의 성적표는 파이널B에 속한 9위다. 어떻게든 분위기 전환을 해보려고 지난 8월 후배 나상호에게 주장을 넘겼지만, 뜻하는 대로 되지는 않았다. 매력적인 축구로 각광받았던 안익수 감독의 ‘익수볼’은 경기 막판 이길 경기를 비기고, 비길 경기를 지는 경우가 많았다. 선수들의 줄부상이 이어지면서 시즌 내내 안정적인 전력을 갖추기 힘들었던 탓이다. K리그에서 가장 재미있고 색깔 있는 경기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등 ‘내용’은 좋았지만 ‘결과’가 따라주지 않은 이유다. 냉정하게 보자면, ‘열심히’ 했지만 결과적으로 ‘잘’하지는 못했다.
Q.올 시즌 아쉬운 경기가 참 많았죠?
“한 6번 정도 저희가 상위권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더라고요. 가장 아쉬웠던 경기는 수원FC전(9월10일)이죠. 다 이겼는데, 끝나기 직전에 실점해서 2대2로 비겨서 승점 3점을 따지 못했어요. 올 시즌 우리 팀에 가장 타격이 있던 경기였죠.”
Q.그럼 ‘익수볼’ 때로는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극단적으로 ‘점수 지키기’처럼 결과를 추구해야 할 때도 필요하지 않느냐는 의미)
“아니요. ‘실리 축구’를 하든 어떤 축구를 하든 그 팀에 철학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역습을 주로 하는 건지, 아니면 능동적으로 공격적인 축구를 하는 건지요. 그 철학 안에서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 해답을 찾기 위해서 조금씩 변화를 주는 건 맞다고 생각하는데, 철학 자체를 한꺼번에 바꾼다든지, 아니면 기존 방식이 안 된다고 해서 모든 걸 바꾸기에는 선수도 다 바꿔야 하는 문제죠. FC서울 같은 경우에는 지난 몇 년간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감독이 바뀌고 선수들도 많이 바뀌었는데, 새로운 감독님이 오시면 또 새로운 철학을 가지고 또 새로운 선수들을 영입하는 악순환이 됐던 것 같아요.”
Q.그래서 현재 기대와 달리 하위권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죠?
“올해는 작년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라고 예상했고, 그건 팬들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상위권에 올라가지 못해서 상당히 개인적으로도 많이 아쉬운 시즌이 되고 있고, 팬들도 많이 아쉬워하고 계실 것 같습니다. 일단은 부상 선수들이 많이 나온 게 가장 컸다고 생각하고요. 주축 선수들이 많이 빠져 공백이 컸고, 그 자리를 어린 선수들이 메웠지만 그 선수들은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주장을 맡으면서 많이 다그치기도 하고, 또 많은 얘기를 했는데, 어린 선수들에게 너무 큰 부담을 준 것 같아서 많이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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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
기성용은 지난 9월 한 인터뷰에서 후배들에게 따끔한 메시지를 전했다. “경기장 안에선 착한 사람이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서울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승리하려면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 갖은 방법을 다 써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한마디로 ‘더 열심히 하자’는 것이다. 때로는 승리를 위해 상대를 걷어차든지, 거칠게 압박을 한다든지 말이다. 이 대목에서는 기성용이 2009년 셀틱(스코틀랜드)으로 이적하고 나서 플레이 스타일이 굉장히 거칠게 변해 ‘싸움닭’으로 기사로 표현했던 기억이 난다. 개인은 물론 팀에서 살아남으려면 처절하게 싸워야 한다는 걸 몸소 겪었기 때문에 자신을 바꿨던 것이라 생각된다.
“11명이 그라운드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경기가 축구잖아요. 그런데, FC서울의 선수들의 면모를 보면 정말 다 착해요. 모두 좋은 사람이고, 좋은 후배예요.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 저희는 그런 면에서 약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고비가 왔을 때 못 넘긴다든지, 상대가 강하게 나올 때 제어를 못한다든지 부족함이 있다고 생각을 해요. 선수들에게 강조를 많이 하는데, 이게 그 사람의 성향이기 때문에 바뀌는 게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어찌됐든 상대를 이겨야 내 가치가 올라가는 거고, 우리 팀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라서 때로는 퇴장을 받지 않는 선에서 상대를 거칠게 다룰 필요도 있어요. 그런데, 저희는 이런 부분이 약하다 보니까 팀이 어려울 때 치고 나가는 힘이 부족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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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
그런 면에서 기성용은 이승우(수원FC)처럼 그라운드에 들어가면 앞뒤 재지 않고 개성 있고 색깔 있는 선수로 돌변하는 선수를 좋아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 그라운드에서 보여준 모습도 그러하다. 기성용이 앞서 올 시즌 가장 아쉬운 경기로 꼽았던 수원FC전에서 이승우와 볼을 다투다 뒤엉켜 넘어져 ‘레이저 눈빛’을 주고받았지만 경기가 끝나고는 ‘쿨’하게 툭툭 털고 돌아섰는데, 그런 모습이 ‘프로’라는 게 기성용의 생각인 듯 하다.
“저는 승우 같은 캐릭터를 참 좋아해요. 당돌하고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잖아요. 물론 그런 승부욕이 때때로는 문제를 만들기도 하지만, 저는 승우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선수인지 잘 알기 때문에 제 입장에선 많이 귀여워 보여요. 승우가 승부욕이 강하게 때문에 저랑도 몸싸움도 많이 하지만 그라운드 안에서는 충분히 허용되는 부분이죠. 승우가 국내로 복귀했지만, 언젠가 다시 유럽 무대로 가야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어요. 여기 있기에는 아직 어리고 해외에서 자랐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장점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승우가 지금보다 더 훌륭한 선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승우와는 올 시즌 마지막 경기(22일)에서 맞붙죠?
“수원FC와 최종전인데, 그 전에 정리(잔류 확정)를 해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상대했으면 좋겠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경기를 해야 플레이도 더 잘 나올 것 같아요. 승우랑도 올해 1승1무1패 중인 것 같은데, 마지막에 좋은 결과를 얻었으면 좋겠고, 선의의 경쟁을 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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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
기성용과 서울 선수들은 ‘열심히’ 뛰었지만 지난 1일 대구전에서 2대3으로 패했고, 일부 서울 팬들은 원색적인 비난과 함께 거칠게 불만을 쏟아내기에 이르렀다. 급기야 기성용은 서포터스 쪽으로 다가가 굳은 표정으로 항의했다. 안익수 감독이 팬들에게 찾아가 사과하면서 일단락됐다. 기성용은 그 다음 김천전(1대1 무)이 끝나고 응원해준 팬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준비를 잘해서 다음 경기(16일 성남전)에선 선수들이 반드시 팬들에게 기쁨을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이런 면에서 선수 입장에서는 팬은 자극제가 되기도 하고, 자신감을 주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자괴감도 들게 한다.
“유럽에서는 축구가 거의 전쟁 같거든요. 팬들이 경기 결과가 좋지 않을 때는 야유를 하고 윽박지르기도 하고 욕도 하죠. 잘할 때는 세계 최고의 선수처럼 대해주고, 그런 것들이 선수들에게 긴장감을 갖고 살아가 수밖에 없게 만들어요. 조금 더 치열하고 처절하게 경기를 준비하도록 하고, 거기서 오는 부담감을 느끼면서 선수들이 성장하죠. 한국은 아직까지는 그런 문화는 아니기 때문에 조금 더 그런 치열함들이 있었으면 좋겠고, 그래야 선수들도 더 많은 긴장감과 치열함 속에서 더욱 성장을 하게 될 것 같아요. 물론 유럽의 축구 문화가 다 좋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한국의 좋은 문화들도 계속 지켜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어찌됐든 선수들이 항상 최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책임감을 항상 갖고 있어요.”
기성용이 올 시즌 이렇게나 ‘열심히’ 뛴 데는 이유가 있다. 유럽 무대에서는 여러 차례 우승컵을 들어올렸지만, 친정팀인 서울에서는 실질적으로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성용이 지난 2009년 셀틱(스코틀랜드)으로 이적해 비운 사이, 서울은 K리그에서 2010년과 2012년, 2016년, FA컵에서는 2015년 각각 우승을 차지했고, 기성용이 다시 복귀한 이후로는 우승권에서 멀어졌다. 올해 FA컵에서는 다르다. 4강에서 대구를 꺾고 결승에 진출해 전북과 두 차례 대결(27일, 30일)을 통해 우승컵을 가린다. 정규리그 2위를 달리는 전북과 올 시즌 전적은 2무1패다.
“우승이 엄청 간절하죠. 리그를 좋은 모습으로 치르지 못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욕심이 많이 나요. 물론 FA컵 우승에 대한 욕심이 당연히 있지만, 올 시즌 마무리를 좀 잘하고 싶은 마음도 상당히 커요. 1년, 1년이 지날수록 시간이 별로 없다고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FA컵 우승을 하면 조급한 마음이 조금 사라질 거 같은데. 지금은 그런 조급한 마음도 있는 것 같아요. (FA컵에서 우승하면 내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기 때문에) 팀도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아시아 대회 성적도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고요.”
FA컵과 별개로 일단 정규리그는 이제 2경기로 끝이 난다. 정확히 진단하고 변화를 줄 건 줘야 2010년 들어 3차례 우승을 차지했던 ‘서울의 봄’을 다시 맞이할 수 있다. 주장 나상호에 따르면, 팀에 대한 고민과 걱정에 가끔 수면제를 먹고서야 잠이 들었던 기성용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Q.그럼 현 시점에서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어떤 특정한 한 부분을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요. 이제는 구단과 선수가 어떻게 해야 우리가 상위권으로 올라갈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팀이 다시 정상궤도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팀의 철학도 중요할 것이고, 선수 구성도 중요할 것이고, 그 다음에는 감독님도 중요할 거예요. 이 모든 것들이 하나가 돼서 과연 FC서울에 지난 3년 동안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계획을 가지고 실행에 옮겨야 저희가 조금 더 좋은 방향을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올 시즌이 끝나고 어떻게 다시 발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갈 것이냐, 그게 저는 중요한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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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제공 |
기성용의 고민은 소속팀 말고도 사회적 기여라는 부분에 또 있다. 올초 국제구호개발 NGO 월드비전에 20억원을 기부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사실 어릴 적부터 후원해왔는데 올해에는 더욱 파격적이었다. 지난 8월에는 월드비전이 ‘기성용 Underswings 엘리트 축구단’ 발대식도 개최했다. 기성용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인 축구 꿈나무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멘토 역할도 했다. 매해 축구 꿈나무 30명을 선발해 훈련비와 축구용품 구입비, 심리치료비에 5년 간 10억원이 후원된다.
Q.(농담 섞어서) 한 번에 일시불로 기부를 한 건가요?
“거의 현찰로. 그래서 지금 힘듭니다. 하하. 많은 고민 끝에 장기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을 생각을 했고, 기부를 하면서 여러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축구 꿈나무를 위한 사업과 여러 힘들고 어려운 분들을 위한 사업을 하고 있는데 제가 해야하는 본분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그런데, 기부를 그렇게 하니까 사람들이 제가 진짜 돈이 엄청 많은 줄 알아요. (Q.많다고 들었는데요?) 전혀 아니고요. 하하. 제가 예전에 중국 리그 이적을 고민을 하다가 포기를 했었는데, 그때 제가 거기 갔으면 (돈을 많이 벌어서) 아마 은퇴가 더 빨라졌을 거예요(2016년 연봉 220억 원에 중국 상하이와 허베이 이적설 보도). 그때 깨달은 게 있어요. ‘돈의 힘이 엄청나구나’하는 것이요. ‘나는 (돈만 보고) 그렇게 살진 말아야 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고, 그러면서 ‘정말 좋은 일들을 많이 하면서 앞으로도 많이 베풀며 살아야겠다’는 고민을 하면서 큰 금액의 기부를 하게 됐고요. 앞으로도 축구 선수가 끝나도 그런 신념은 제 안에 계속 있기 때문에 무엇을 어떻게 해서 도움을 줄지 많이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기성용에게 여지없이 다음 달 개막하는 카타르월드컵에 출전하는 대표팀 얘기도 물었다. 사실 대표팀에서 은퇴했기에 태극전사들에 대한 얘기를 굉장히 꺼려한다고 들었다. 대표팀 내부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데 외부에서 왈가왈부하는 게 맞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대표팀 선수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런데, 이번엔 대표팀에 많은 기대가 된다며 입을 열었다. 프로 선수가 되고 나서 처음 월드컵을 대표팀 밖에서 지켜보는 기성용은 앞서 2010년 남아공(사상 첫 원정 16강), 2014년 브라질, 2018년 러시아(주장) 대회에 참가했다.
Q.월드컵을 한 달 앞둔 대표팀이 잘 가고 있다고 보나요?
“상당히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예전에 대표팀에 있을 때 다른 선배들이 대표팀에 대해 부정적으로 얘기할 때는 상당히 서운하더라고요. 그래서 항상 대표팀 얘기가 나오면 상당히 말을 조심하게 돼요. 그 상황과 그 친구들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죠. 그런데, 저는 냉정하게 봤을 때 대표팀이 사실 너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대표팀이 못하고 있으면 제가 아예 얘기를 안 했을 거예요. 월드컵 최종예선도 상당히 안정적으로 통과해서 본선에 진출했고, 멤버를 보더라도 그 전 대표팀보다 훨씬 더 좋은 활약을 해주는 친구들이 많아요. 개인적인 능력이나 4년 동안 좋은 조직력을 갖췄기 때문에 상당히 많이 기대돼요. 물론 월드컵이라는 무대가 쉽지 않지만, 이 선수들이 부상만 없다고 하면, 지난 번(2018 러시아월드컵)하고 다른 결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거든요. 제 바람이 잘 이뤄져야 할텐데.”
Q.그럼 16강 진출도 가능하다고 보나요?
“50대50이라고 생각하고요. 이번 대표팀이 기대가 되는 이유는 월드컵을 경험한 친구들이 많다라는 게 엄청 큰 장점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왜냐하면 처음 월드컵을 나가는 선수와 이미 월드컵을 경험해본 선수가 느끼는 건 다를 수밖에 없고, 저도 처음 출전했을 때랑 두 번째, 세 번째는 많이 달랐거든요. 상대가 강팀들이지만, 우리 대표팀은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좋은 이 스쿼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스쿼드로 세계적인 팀들을 상대로 어떤 모습을 보일지가 상당히 기대되고 궁금하기도 해요. 50대50이라고 말씀드린 건 제가 괜히 8강 간다고 했다간(웃음). 어찌됐든 월드컵은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아요. 지난 번(러시아 대회)에 저희가 독일을 이길지 누가 알았겠어요. 분위기가 굉장히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첫 경기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나머지 경기들은 많이 변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Q.주장 손흥민 선수에게 당부를 전하자면요?
“제가 얘기할 게 있을까요. 에이스고, 세계적인 선수고, 한국 축구에 많은 팬들이 가장 기대를 하고 있는 선수기 때문에 그런 부담에 대해서는 제가 얘기 안 해도 모든 분이 알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참 신기한 게 흥민이가 그런 부담을 안을 때마다 더 잘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대표팀에 오면 모든 포커스가 흥민이한테 맞춰질 수밖에 없는 부담이 있잖아요. 월드컵에 나가면 많은 외신 기자들이나 해외의 시선이 흥민이를 주목할 텐데, 저는 오히려 그런 자리에서 흥민이가 더 잘할 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큰 경기에 항상 골을 넣어주고, 승리로 이끌어줬기 때문에 이번 월드컵에서도 아마 흥민이가 힘든 상황에서 대표팀에 꼭 좋은 선물을 줄 거라고 생각을 하고요. 동료 선수들도 흥민이와 함께 하나가 돼서 이번에 꼭 국민에게 큰 기쁨을 줄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기성용
[국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