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현(35)과 구자욱(29)이 딱 지난 시즌만큼만 해줬다면 삼성의 운명은 달라졌을까.
삼성 라이온즈는 지난 시즌 6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올 시즌 삼성은 다시 가을야구 문턱을 넘지 못했다. 7월 1일부터 23일까지 팀 역사상 최다 연패인 13연패에 빠지는 등 힘을 내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허삼영 감독이 사퇴하는 시즌 최대 위기도 닥쳤다.
물론 박진만 감독대행이 분위기 수습에 성공했지만, 이미 배는 떠난 뒤였다. 박진만 대행이 지휘봉을 잡은 후 50경기에서 28승 22패라는 뛰어난 성적을 보였지만, 이미 벌어진 격차를 따라 잡기에는 2% 부족했다. 결국 66승 76패 2무의 기록과 함께 7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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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정현은 올 시즌을 아쉬움 속에 마무리했다. 사진=김재현 기자 |
구자욱과 백정현, 두 선수 모두 지난 시즌 커리어 하이 기록을 작성했다. 먼저 백정현은 27경기에 출전해 157.2이닝을 던졌고 14승 5패 평균자책 2.63을 기록했다. 평균자책 2위, 다승 4위에 올랐다. 국내 선수만 놓고 보면 모두 TOP 이었다. 35세 나이에 제2의 전성기가 왔다는 소리를 들었다.
구자욱 역시 139경기에 출전해 타율 0.306 166안타 22홈런 88타점 107득점을 기록했다. 데뷔 첫 득점왕 수상은 물론이고 홈런은 커리어 하이였다. OPS(장타율+출루율)도 0.880으로 높았다. 또 데뷔 첫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했다. 데뷔 7년 만에 골든글러브(외야수 부문)까지 수상했다.
삼성은 올 시즌을 앞두고 두 선수에게 제대로 된 돈다발을 안겨줬다. 구자욱과 5년간 연봉 90억원, 인센티브 30억원 등 최대 총액 120억원 다년 계약을 맺었다. 백정현은 삼성과 4년 최대 38억에 FA 계약을 했다. 두 선수 모두 제대로 된 동기부여를 가지고, 시즌을 준비했다.
그러나 시즌은 이들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부상과 부진이 겹치면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전반기만 놓고 봐도 그렇다.
백정현은 전반기 14경기에 나서 10패 평균자책 6.63에 머물렀다. 피홈런은 리그에서 가장 많은 19개나 허용했다. 물론 잘 던지고도 불펜의 방화나 불운으로 승리를 챙기지 못한 적도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강점인 제구에서 난조를 보였고, 또 전반기 무실점 경기는 단 한 번도 없을 정도다. 이로 인해 2군에도 다녀왔다.
구자욱 역시 마찬가지였다. 구자욱은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전반기 40경기 출전에 그쳤다. 시즌 시작부터 코로나19 이슈로 개막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5월에는 허리, 6월에는 햄스트링 부상을 입었다. 타율 0.280이었고 홈런은 단 2개, 타점은 19개뿐이었다. 중심 타선에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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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자욱은 올 시즌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사진=김재현 기자 |
구자욱 역시 후반기 살아나는 모습을 보였다. 9월 타율 0.359 맹타와 더불어 후반기 0.303 73안타를 기록했다. 또 8일 SSG 랜더스와 최종전에서는 역대 72번째 600타점 고지도 밟았다. 구자욱은 99경기에 나서 타율 0.293(409타수 120안타) 5홈런 38타점으로 마무리했다.
후반기 살아났을지 언정, 전반기 부진이 워낙 컸던 탓일까. 올 시즌 두 선수의 기록은 예년과 비교하면 부진했다는 걸 바로 알 수 있다. 백정현은 불펜으로 활약하던 2016시즌 이후 첫 5점대 평균자책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백정현보다 아쉬운 건 구자욱이었다. 데뷔 후 처음으로 100경기도 소화하지 못했다. 또한 2할대 타율, 10홈런-50타점 미만으로 마무리한 것도 데뷔 후 처음이다. 그나마 8년 연속 세 자릿수 안타-8년 연속 두 자릿수 도루로 체면치레를 했다.
물론 이들의 아쉬운 활약이 삼성의 부진으로 이어진 건 아니다. 오재일 전, 삼성의 캡틴이었던 김헌곤도 43타석 연속 무안타 침묵과 함께 올 시즌 지독한 타격 부진에 시달렸다. 거포 김동엽도 2홈런에 그치는 등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백정현의 FA 계약 첫해, 구자욱의 다년 계약 첫해는 냉정히 말해 실패한 시즌이라고 볼 수 있다. 후반기 달라진 모습을 보여
올 시즌은 이제 끝났다. 이제 내년을 기대해야 한다. 구자욱도 어느덧 30대가 되어 삼성 야수진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고, 백정현도 선발진에서 베테랑의 품격을 보여줘야 하는 나이다. 부진은 한 번으로 족하다. 올 시즌 부진을 만회할 시간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정원 MK스포츠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