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핸드볼연맹 홈페이지 제공 |
2004~2005년생으로 구성된 쾌활한 MZ세대 소녀들이 모두 코트로 뛰어나가 얼싸안고 기뻐하는 모습. 과거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서로 어깨에 어깨를 걸고 빙그르르 도는 세리머니를 펼친 모습은 눈에 선하다. 다른 팀도 아닌 덴마크를 꺾었기에 기쁨이 배가됐던 것 같다. U-18 대표팀은 2006년 초대 대회에서 덴마크에 33대 36으로 패해 준우승한 바 있다.
특히나 언론들은 직후부터 U-18 대표팀을 ‘리틀 우생순’으로 불렀다. 우리나라 여자 국가대표팀이 2004년 아테네올림픽 결승에서 덴마크에 연장에 이어 승부던지기 끝에 덴마크에 무릎을 꿇었던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을 떠올린 것이었다.
‘원조 우생순’만큼은 아니더라도 이번에 ‘리틀 우생순’도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우여곡절 끝에 덴마크란 마지막 고비를 넘고 정상에 올랐다. 김진순(인천비즈니스고) 감독과 대회 최우수선수에 뽑힌 김민서(황지정산고) 선수는 MBN 스포츠 토크쇼 ‘스포츠야’에 출연해 비하인드 스토리를 풀어냈다.
‘리틀 우생순’은 대회 시작도 전에 갖가지 ‘액땜’을 했다. 인천비즈니스고 코치인 김진순 감독은 대회를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 갑작스럽게 대표팀 사령탑에 선임됐고, 그런 까닭에 16명의 선수단 또한 급하게 선발할 수밖에 없었다.
“대회 두 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감독에 선임이 됐는데, 이걸 다 설명하자면 너무 길고요. 아무튼 국내 여자 핸드볼 고교팀이 11개 있는데, 이번에 7개 학교에서만 대표 선수를 선발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 부분은 선발하지 못한 4개 학교 선생님(지도자)한테 죄송스러운 면이 없지 않아 있어요.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다양한 선수를 소집해서 테스트를 해보고 선발할 수 있었을텐데, 그럴 수는 없고 당장 대표팀을 꾸려야 하는 상황이라 머릿속으로 파악한 필요한 선수들을 선발해야 했어요.”
현장 지도자를 하면서 고교 선수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던 덕분에 어려움 속에서도 적재적소에 필요한 선수를 선발할 수 있었단 얘기다. 대한핸드볼협회가 2019년 진행한 우수 선수 해외 연수(헝가리)를 다녀온 김민서, 이혜원, 임서영도 무럭무럭 성장해 선발할 수 있었다. 다만, 시간에 여전히 쫓기는 건 걱정거리였다.
“7월 초에 며칠 간 간단하게 소집 훈련을 했는데, 곧이어 ‘태백산기’라고 큰 대회가 7월 13일부터 20일까지 강원도 태백에서 열렸기에 선수들을 소속 고교 팀에 다시 보낼 수밖에 없었어요. ‘태백산기’가 끝나고 다시 모여서 며칠 간 훈련을 하고 7월 27일 새벽에 출국을 해야 했어요. 출국 준비한다고 마트에 가서 장보기 등을 하는데 하루 이틀을 보냈지요. 시간은 없고 생각할 것들은 많아서 어려움이 많았어요.”
↑ 김진순 감독 제공 |
그래도 출발만 하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대회 준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건만, 그때부터 문제가 쓰나미처럼 들이닥쳤다. 인천공항에서 대회가 열리는 북마케도니아 스코페에 가기까지 꼬박 이틀이 걸렸다. 남미가 아프리카도 아니고 유럽에 가는데 이틀이나?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인천에서 환승지인 빈(오스트리아)으로 12시간 30분 비행을 하고, 거기서 9시간 대기하고 나서 스코페(북마케도니아)로 들어가는 항공기를 타는 일정이었어요. 빈 공항 안에서는 선수들이 몸을 풀려고 간단하게 움직이고 간단하게 놀이 같은 훈련도 했어요. 그렇게 9시간 대기를 끝내고 드디어 스코페로 가는 비행기를 탔죠. 1시간 30분만 가면 스코페에 도착하는 거였어요. 그런데 도착할 시간이 다 되어서 보니까 비행기가 심하게 오르락내리락 하고, 창밖을 보니 플래시가 터지듯 번쩍번쩍 하는 거에요. 아이들이나 저나 너무 피곤해서 ‘그냥 그런가 보다’하고 잤어요. 그렇게 어쨌든 착륙을 하고 나서 휴대폰을 열어봤는데 카톡에 ‘감독님, 괜찮으세요’는 메시지가 오더라고요. 불안한 느낌이 들었죠.”
파악을 해보니 도착한 곳은 스코페가 아니라 다시 빈 공항이었다. 도착지 기상악화로 인해 항공기가 회항한 것이었다.
“이 상황을 모르는 아이들은 다시 빈 공항에 온지도 모르고 ‘유럽은 공항을 다 똑같이 짓나봐요’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사실대로 알려줬죠. 그렇게 공항 한켠에 다시 자리를 잡고, 휴대폰 번역기를 돌려가면서 항공사 측에 물어봤더니, 스코페에 들어가려면 다시 9시간을 대기해야 한다는 거에요. 참 암담한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감독인 제가 불만을 드러내면 아이들이 처질 수밖에 없어서 침착하게 아이들에게 ‘벤치에 자리 잡고, 잠 잘 사람은 쪽잠을 자고, 물을 많이 마시라’고 말해줬어요. 그렇게 다시 9시간을 기다린 끝에 다시 항공기를 타고 스코페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출발부터 도착까지 꼬박 이틀이 걸렸더라고요.”
↑ 김진순 감독 제공 |
이게 끝이 아니었다. 선수단은 대회장에 도착했지만, 일부 짐이 도착하지 않았다.
“출발 전에 여행객이 많아지면서 유럽 공항들 사이에서 수하물 분실이 잦다는 얘기를 들어서 불안한 마음에 아이들에게 유니폼과 신발 등 중요 물품은 꼭 메는 가방에 넣으라고 했어요.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주전 선수 2명의 수하물이 도착하지 않은 거에요. 선수와 지도자로 20년 간 대표팀 생활하면서 겪은 모든 일을 이틀 동안 다시 겪은 것 같은 것 같더라고요. 아토피로 고생한 아이의 약이 분실 수하물에 있어서 그 아이가 고생을 많이 했어요. 어찌됐든 6일 뒤에 그 가방들을 받긴 했지만요.”
“처음에 캐리어(가방)를 받지 못한 친구 둘이 원래는 같은 방을 배정 받았어요. 그런데 짐이 없다보니까 선수들끼리 방을 섞어서 필수품을 룸메이트끼리 나눠 썼어요. 협회 직원분이 옷하고 속옷 사주셔서 해결했어요. 선수들이 처음에 고생을 조금 했어요.”(김민서 선수)
숙소도 처음에는 몰랐지만, 나중에는 공평한 배정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대다수 유럽 팀들은 메인 경기장 옆 호텔을 함께 썼지만, 우리나라는 거기서 조금 떨어진 호텔을 기니와 함께 썼다고 한다. 물론, 이것이 오히려 이득이 되긴 했다.
“두 호텔이 서로 멀리 떨어지진 않았어요. 대다수 국가 팀은 메인 라운드 경기장 바로 옆에 있는 호텔을 썼고, 저희는 처음 예선 경기했던 경기장 근처 호텔을 썼어요. 저희가 아웃사이더라 생각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경기 준비를 하는데는 더 좋긴 했어요. 한 호텔에 많은 팀이 묵으면 선수들끼리 서로 자주 마주치게 되면서 인사도 하고 사진도 찍고 교류도 하면서 팀 분위기가 어수선해질 수 있는데 그런 걱정은 안하게 된 거죠. 저희는 기니와만 호텔을 함께 쓰면서 식사 시간도 겹치지 않게 쓸 수 있었고, 전력 분석과 회의를 했던 미팅룸도 자유롭게 쓸 수가 있었어요. 우리 코치님들과 ‘더 이상 나쁜 일들은 없을 것 같다. 액땜을 제대로 한 것 같다’는 얘기를 했었죠.”
↑ MVP 김민서. 국제핸드볼연맹 홈페이지 제공 |
대표팀은 현지 도착 후 스위스와 조별리그 1차전까지 이틀 간 준비 기간이 있었는데, 피로를 풀기 위해 하루는 온전히 휴식을 하고, 나머지 하루만 전술 훈련을 하고 대회에 들어가야 했다. 최악의 상황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첫 훈련을 시작했는데, 믿었던 (김)민서가 달리고 나서 허리를 숙이고, 또 달리고 나서 허리 숙이기를 반복하더라고요. 아이들 전부 그랬어요. 아이들이 이동하느라 나흘 정도 훈련을 하지 못해서 많이 뛰지도 안았는데도 호흡이 되지 않았던 거에요. 첫 경기를 하루 앞두고 너무 불안했는데, 감독인 제가 티를 내면 안 되니까 단호하게 지시하긴 했죠. 아이들이 힘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정말 많이 뛰지도 않았는데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더라고요. 그래도 훈련 때 뛰어야 다음 날 경기를 제대로 뛸 수 있으니까 다들 참고 뛰려고 했던 것 같아요.”(김민서 선수)
김 감독은 제한된 정보에도 상대 팀을 분석하기 위해 매일 새벽 2~3시까지 비디오를 돌려보고, 아침 일찍에는 전력 분석 회의를 했다고 했다. 그렇게 초조하게 준비했던, 고비였던 스위스와 서전을 승리하면서 서서히 바람을 타기 시작했다.
“스위스전이 다행인 게 선수들 개인 기량으로 풀어갈 수 있던 경기였어요. 아이들이 호흡이 틔이고 조금씩 회복이 되면서 흐름을 탈 수 있었어요. 사실, 스위스전을 더 쉽게 풀어갈 수 있었는데, 선수들이 첫 경기라 그런지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긴장을 했는지 큰 실수를 하기도 했어요. 경기를 마치고 라커룸에서 선수들에게 ‘조금 후회가 남은 경기를 해서 아쉬울 것 같다’고 말해줬더니 (이)혜원이가 대성통곡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경기가 독이 아닌 약이 됐으면 좋겠고,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고 얘기를 해줬어요. 너무 우니까 동료 친구들이 토닥여줬어요. 혜원이도 생각하는 계기가 됐고, 그렇게 아이들이 으쌰으쌰하면서 경기력이 점차 상승하게 됐던 것 같아요.”
대표팀은 스위스와 1차전을 시작으로 조별리그에서 독일, 슬로바키아를 연파해 F조 3전 전승으로 결선 라운드에 진출했다. 결선 라운드 3조에서도 루마니아, 네덜란드를 꺾고 1위로 8강에 진출했다. 8강에선 스웨덴, 4강에선 헝가리, 마지막 결승에서는 덴마크를 격파하고 유럽 팀들을 상대로 8전 전승, 완벽한 우승을 차지했다. 비유럽 국가 최초 우승이다.
↑ 태극기를 직접 그려온 노르웨이 팬들. 유튜브 NB couple엔비커플 화면 캡처 |
우승 비결은 평균 신장 175cm 전후의 유럽 팀들을 상대로 빠른 속도와 조직력, 그리고 탁월한 개인기가 제대로 통한 것이었다. 우리 대표팀의 평균 신장은 168cm로 한눈에 봐도 유럽 팀에 비해 작았지만 위에 설명한 바대로 극복했다. 이렇게 아주 특징을 갖고 있지만 한 단어로 설명하기 애매할 때 쓰는 K를 여기에도 써본다면, ‘K-핸드볼’이랄까.
국제핸드볼연맹은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많은 패스, 뛰어난 리듬, 빠른 전환을 통해 한국만의 스타일을 선보였다”고 ‘리틀 우생순의 핸드볼’을 설명했다. 독특한 스텝은 다른 나라의 연구 대상이 됐다고도 했다. 체격과 힘으로 밀어붙이던 유럽 팀들은 우리 핸드볼에 반해 팬이 됐다.
“대회 초반에는 우리 교민 등 한국 분들만 응원해주셨고 우즈베키스탄 등 아시아 국가 팀들도 응원하긴 했어요. 그런데, 경기를 치를수록 유럽 팀 선수들이 관중석에 앉아서 우리를 응원하더라고요. 우리가 작은데도 빠르니까, 스타일이 다르니까 우리한테 졌는데도 응원을 하는 것 같더라고요. 노르웨이 선수들은 태극기를 직접 그려서 관중석에 붙이고 응원하기도 했고요. 경기를 마치고 이동하려고 버스를 탔는데 밖에서 축제하듯이 난리가 나서 내려서 사진 찍어주고 그랬어요. 스웨덴과 8강 끝나고 나서였을 거예요.”(김민서 선수)
↑ 국제핸드볼연맹 홈페이지 제공 |
그런데, 끝날 것 같던 에피소드는 끝나지 않았다. 단벌 유니폼 때문에 벌어진 일이 있다.
“저희가 유니폼을 남색 2벌, 빨간색 2벌, 흰색 1벌씩 갖고 대회에 참가했어요. 흰색은 주 유니폼이 아니라 많이 입지 않으니까 1벌을 받아서 갔어요. 유니폼이 경기 중에 찢어지거나 오염이 되면 여벌 유니폼으로 갈아입어야 하는데, 이번 대회에 유독 흰색 유니폼을 입는 경기가 많았어요. 그리고 하필이면 흰색 유니폼을 입은 경기 도중 (김)서진이가 상대 선수 팔꿈치에 코를 맞아서 코피가 유니폼에 묻은 거에요. 여벌 유니폼이 없는데 말이죠. 그래서 트레이너 선생님에게 유니폼에 묻은 피를 빨리 세척하라고 했죠. 갈아입을 유니폼이 없으니까요. 아무튼 결승을 앞두고 국제핸드볼연맹에 이런 사정을 설명하고 흰색 유니폼 배정하지 말아달라고 요청을 했는데, 유니폼 오염이 됐으면 세탁을 해서 착용하라는 답변을 들었어요. 결국 결승에서도 흰색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했죠. 그래서 선수들에게 ‘어쩔 수 없다. 상황이 이러하니 이겨내자. 우리는 백의민족이 아니냐’고 말했어요.”
시상식에서는 태극기가 가장 높이 올라가고 선수단은 애국가를 불렀는데, 김 감독이 도중에 갑자기 선수들 앞에서 큰 동작으로 손짓을 해서 지휘자가 된 듯한 모습도 보였다. 흥이 많은 어린 선수들이 시상식 전부터 ‘애국가 떼창’을 신나게 하자고 말을 맞췄는데, 시상식에서는 박자를 너무 빠르게 불러 놀란 김 감독이 자제를 시킨 것이었다.
“우승을 해서 기분이 좋았고, 특히나 북마케도니아란 세계 무대에서 애국가가 흘러나오니까 기분이 더 좋아서 아이들이 흥이 엄청 나서 조금 빠르게 부르게 됐어요. 감독님이 ‘얘들아 박자가 너무 빨라’라고 말씀하셨는데, 못 알아듣고 계속 빠르게 불렀어요. 마지막 부분만 박자가 맞았던 것 같아요. 하하.”(김민서 선수)
김민서는 득점과 도움 모두 2위에 오르며 한국 선수로는 처음 대회 MVP에 뽑혔다. 이혜원(대구체고)과 차서연(일신여고)은 올스타팀에 선정됐다.
↑ 대한핸드볼협회장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으로부터 축하와 함께 포상금 1억1천만 원과 최신 휴대폰을 받은 선수단. 대한핸드볼협회 제공 |
이런저런 사연 속에서 우승을 했지만 중요한 건 ‘앞으로’다. 당장 2년 뒤 같은 장소에서 열릴 20세 이하 세계주니어선수권에서도 영광을 이어가야 하는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2014년 우승 이후 10년 만의 우승 도전이다.
녹록치는 않다. 어린 선수들의 경기력 유지 및 향상이 쉽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국내 대학 핸드볼팀은 2개, 실업팀은 8개가 있는데, 고교 선수(총 11개 학교)가 대학에 진학하면 대학팀은 2개뿐이라 경기 수가 많지 않고, 실업팀에 가도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경기에 나서는 게 쉽지 않아 경기력에 문제가 생긴다.
“지금 우리나라 18세 이하 선수들이 유럽보다 조금 더 정교하고 섬세한 게 있어요. 그런데, 유럽 선수들은 지금부터 2년 사이에 급성장해요. 유럽은 1부리그부터 5부리그까지 있는 나라도 있어요. 자연히 팀도 많고 경기도 많으니 선수들이 많은 경기에 출전하면서 실력이 느는 거죠. 우리는 그렇지 못한 상황이고요. 그렇다면 우리는 정기적으로 대표팀을 소집해서 해외 전지훈련을 가서 경기를 하든지, 국내 훈련이라도 하든지 해야지 기량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한창 경기에 뛰어야 하는 나이인데 그렇지 못하니 안타깝죠.”
국내 핸드볼 미래에 많은 고민을 털어놓은 김 감독은 여성 감독으로서 흔히 말하는 ‘유리천정’을 깨고 대단한 성과를 냈다. 우리나라 여자 핸드볼의 전설인 선배 오성옥 SK슈가글라이더즈 감독과 임오경 국회의원으로부터 많은 격려를 받아 힘이 됐다고 했다. 김민서 역시 착실하게 기량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어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 지도자나 선수나 앞으로 2년이 중요하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현대 핸드볼을 따라가면서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한다면 좋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수가 돼서 대표팀에 도움이 되고 주축으로 뛰어서 에이스 역할을 맡고 싶습니다. 올림픽에 나가서 한국의 새로운 역사를 쓰는 게 목표예요.”(김민서 선수)
[국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