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독(Underdog)’은 어디나 존재한다. 다소 약세란 평가에도 박수받는 존재. 스포츠맨십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현상이다. 특히 야구란 종목에선 언더독의 반란이 잦다. 약팀이 강팀을 제압하고 우승기를 들어 올린다. 우린 이를 이변 혹은 기적이라 부른다.
8월 15일. 기장군 현대차드림볼파크에선 언더독의 반란이 또 한 번 목격됐다. 상대적으로 약세란 평가를 받던 대구 협성경복중(교장 이종법)이 '제52회 대통령기 전국중학야구대회' 결승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 협성경복중은 부산권 신흥 강호 센텀중을 상대로 7-6, 짜릿한 1점 차 역전승을 일궈냈다.
경기는 시종일관 역전의 역전을 거듭했다. 승기는 센텀중이 먼저 가져갔다. 경기 초반부터 불방망이를 선보인 센텀중은 3회 초까지 6점을 뽑아내며 점수 차를 크게 벌렸다.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센텀중의 우승이 목전까지 올라온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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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협성경복중은 제52회 대통령기 전국중학야구대회 결승전에서 우승기를 들었다. 당초 언더독이라는 평가를 들었던 협성경복중의 우승은 김기덕 협성경복중 감독의 지도력과 학교의 충분한 지원, 협성경복중 학생 선수들의 분전으로 가능했다는 평가다. 사진=베이스볼 코리아 제공 |
우승의 기쁨을 뒤로 한 채. 경기 후 복수의 관계자가 한 명의 이름을 언급했다. 협성경복중 김기덕 감독이다.
한 야구계 관계자는 “사실 이날 초반부터 점수 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승리는 어렵겠구나 했던 게 사실”이라며 “승리가 기울어지려던 찰나에 감독의 용병술이 적재적소에서 큰 힘을 발휘했다. 야구는 선수가 하는 스포츠지만, 이날만큼은 감독의 역량이 왜 중요한지 알 수 있는 경기”였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 감독은 이런 평가에 대해 되레 얼굴을 붉혔다.
“감독의 용병술이요? 당치도 않는 말입니다. 선수단 전원이 평소 훈련하던 대로 잘 따라줬습니다. 늘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습관이 결승전에서 발휘된 것 같아요. 오히려 저보단 이재현, 김건필, 우동균 코치가 최선을 다해준 덕분입니다. 감독이 없는 야구. 그게 협성경복중의 야구예요.”
▲협성경복중, 우승으로 자율야구 입증...학생 야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 제시
김기덕 감독은 대구고와 한양대를 거치며 1991년 LG 트윈스 유니폼을 입었다(2차 4라운드). 은퇴 후엔 중앙대 투수 코치와 백송고 감독을 맡아 지도자 생활을 이어갔다. 2010년엔 KBO총재기 전국대학선수권 지도자상을 수상했고, 여러 차례 대표팀 코치로 선임된 바 있다. 지난해엔 전국소년체전 출전권을 따내며 대구 중학야구 최강자로 떠올랐다. 가는 곳마다 혁혁한 공을 세워 지도력을 인정받은 그다.
협성경복중은 이번 대회 시작 전부터 우승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였다. 대구 명문 중학교 야구부로서 긴 명맥을 이어왔지만, 코로나 여파로 선수 수급에 어려움이 생기면서 근근이 팀을 이끌어 왔다.
“최근 몇 년간 코로나가 정말 심했잖아요. 특히 대구는 코로나 팬데믹을 심하게 앓은 도시입니다. 야구도 크게 다를 게 없었어요. 가장 유행할 때, 선수 스카우트 역시 한창 열을 올려야 했던 시기였거든요. 당연히 선수 수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정부가 정해놓은 규정과 학교의 방침을 따라야죠. 순리대로 하지 않으면 결국엔 망가지게 마련입니다. 제 인생 철칙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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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각종 논란이 끊이질 않는 아마야구계에서 김기덕 협성경복중 감독은 냉대받던 자율야구로 전국제패를 이뤄냈다. 김기덕 감독은 선수들이 ‘정규 수업을 다 듣는 것. 정해진 시간 내에서만 훈련하는 것. 나머지 시간은 학생선수 스스로에게 계획할 수 있게 맡기는 것’을 협성경복중학교 야구부의 세가지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사진=베이스볼 코리아 제공 |
김 감독의 ‘자율야구’는 그간 1980년대 금서처럼 냉대받고 의심받았다. 항간에선 “여기가 미국이냐”며 비아냥을 쏟아냈다. 일부 지도자들 역시 “학생 야구는 아이들을 다그치고, 통제하지 않으면 절대 승리할 수 없다”고 쏘아댔다.
그런데도 김 감독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사실 어려움이 많았죠. 주변 시선도 달갑진 않았습니다.” 김기덕 감독의 말이다. “협성경복중 감독 부임 이후 지도자로서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제가 추구하고 아이들에게 강조했던 야구 철학을 지키기 위해 책임감을 느끼고 밀어붙였죠.”
틀린 말이 아니었다. 김 감독은 주변 반응이 격할수록 한 번 더 학생들을 격려했고, 믿음을 안겼다. 야구계에서 그를 ‘투사(鬪士)’라 부르는 이유다.
“경복협성중에선 딱 세 가지 원칙만 지키면 됩니다. 정규 수업을 다 듣는 것. 정해진 시간 내에서만 훈련하는 것. 나머지 시간은 학생선수 스스로에게 계획할 수 있게 맡기는 것입니다. 그래야 어른이 돼서도 능동적으로 내 야구를 할 수 있어요. 아! 제일 중요한 걸 빼먹었군요. 바로 인성입니다. 저는 모든 학생 락커에 학교폭력 유인물을 붙여놓습니다. 경각심을 가지란 의미죠. 말은 아낄수록 힘을 얻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의미를 전달할 수 있어야 진정한 소통 아니겠어요(웃음).”
실제 협성경복중에선 단순하고 반복적인 훈련을 찾아볼 수 없다. 양보단 질을 추구한다. 모든 코치진이 짧은 시간 가장 효율적인 훈련법을 갖추기 위해 매일 같이 연구하고 공부한다.
“왜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윽박지릅니까. 요즘 학생들은 똑똑해요. 좋게 이야기해도 다 알아듣고 받아들입니다. 단, 지도자가 학생보다 똑똑해야 합니다. 더 많이 알아야 수긍시킬 수 있어요. 이젠 ‘매’가 아니라 ‘앎’입니다. 적어도 현장 지도자가 유튜브에 지진 말아야죠.”
김 감독의 자율 야구 뒤엔 언제나 든든한 지원군. 이종법 교장이 있었다. 부임 전부터 야구부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던 이 교장은 취임 후 김 감독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학교 운동부 방향성 개선에 힘썼다. 이 교장은 “승리를 떠나 그간의 노력이 오늘의 결실이란 사실을 학생들이 배웠으면 좋겠다.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고 학생 본연의 모습을 유지하는 협성경복중 학생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 엘리트 스포츠계에선 찾아볼 수 없는 이상한 학교. 야구보다 학업이 우선시 되는 학교. 매보다는 앎을 중시하는 학교. 야구장이 전쟁터보단 놀이터가 됐으면 하는 학교. 김 감독은 여전히 국내 어디에도 없는 학생 야구를 꿈꾼다.
“기억을 한 번 더듬어 보세요. 중학교 시절 어땠는지. 모든 게 즐거울 나이잖아요. 전 아이들에게 야구를 통해 즐거움을 주고 싶습니다. 어제 우리가 졌어도 웃으며 짜장면 한 그릇 하러 갔을 겁니다. 여긴 전쟁터가 아닙니다. 야구장은 놀이터여야 합니다.” 김 감독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대통령배 우승이 우리 아이들 성장하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된 것 같아 너무 행복합니다. 승리는 모두 아이들의 몫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학생이 경복협성중에서 즐겁게 야구하고 즐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협성경복중은 대구 야구
(전수은 베이스볼코리아 편집장)[ⓒ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