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 권위의 카레이싱 대회인 슈퍼레이스 최상위 클래스(슈퍼6000) 드라이버(총 21명) 중 한 명인 이정우(27,엑스타레이싱)에게 ‘카레이싱에 대한 열정이 어느 정도인가’라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예나 지금이나 카레이싱에 “미쳐 있다”는 것.
이 짧은 한마디에 그의 젊은 인생 스토리가 오롯이 설명된다. 카레이싱의 ‘성공한 덕후’이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중고교 시절, 비디오 게임을 접하고는 카레이싱에 빠졌다. 이후 실제 카트 스쿨을 경험하며 자신의 진로를 확실히 정했다. 열악한 국내보다는 더 큰 시장인 일본에서 레이싱을 배우는 게 나을 것 같아 고교 3학년 야자(야간자율학습) 때도 일본어를 파고들었다. 그렇게 8개월 만에 일본어능력시험(JLPT) 1급을 따내 일본어 특기생으로 계명대 일본학과에 입학했고, 계획대로 대학 2학년 때는 교환학생으로 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 경영경제학과에 들어갔다. 일본에서는 아마추어 대회에서 입상해 세계 대회에도 출전했다. 이후 현지 아마추어 선수로 활약하려고 비용 마련을 위해 밤낮으로 아르바이트했다. 택배, 퀵서비스, 이삿짐센터, 식당 서빙, 등 가리는 게 없었다. 그렇게 2019년 국내 오디션을 통과해 슈퍼레이스의 최상위인 6000클래스 드라이버가 됐다.’
↑ 일본 교환학생 시절 레이싱 비용 마련을 위해 택배 아르바이트를 하던 이정우11 |
‘지성이면 감천’,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이 절로 생각나게 하는 이야기다. 이렇게 하나에 꽂혀 지독하게 파고들어 마침내 성취한 이정우를 두고 ‘신데렐라 스토리’를 가졌다거나, ‘흙수저 드라이버’라고도 부른다.
이런 이정우를 MBN 스포츠 전문 토크쇼 ‘스포츠야’에서 만났다. 온갖 고생을 했기에 외모에 고스란히 삶이 녹아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정반대였다. 염색한 머리카락에 잘 생긴 외모로 ‘아이돌 레이서’라 불리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자신의 생각 또한 명쾌하고 유쾌하게 풀어낼 줄 알았다.
-다른 레이서들과 달라 보이네요?
“여름이라서 시원하게 염색을 해봤습니다. 원래는 핑크색이었는데 일주일 만에 물이 다 빠졌어요. 머리를 많이 감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 직업 특성상 헬멧을 쓰니까 냄새가 많이 나서 연습하고 나서 머리를 자주 감게 되니까 염색이 금방 빠지더라고요. 핑크색 땀이 흐르기도 했어요. 하하.”
-경주차 내부 온도가 거의 한증막 수준이라 그렇죠?
“타본 사람만 알 수 있는데 차량 내부 온도가 50도는 가볍게 넘는 거 같아요. 한 60도 가까이 간다는 얘기가 있던데, 비까지 내려서 수증기가 들어오면 진짜 한증막이죠. 습식 사우나 같다고 해야 할까요. 그 안에서 1시간 가까이 레이스를 한다고 보면 됩니다. 레이스를 마치면 체중이 2~3kg은 가볍게 줄죠.”
↑ 레이스 도중 경주차 내부 온도는 섭씨 50도가 훌쩍 넘어간다 |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이정우는 비디오 게임을 통해 실제 드라이버가 된 사례다. 2년 전, 코로나19로 인해 실제 서킷 레이스가 열리지 못하자 가상의 레이스, 즉 심레이싱(시뮬레이터 레이싱)에서는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일반 아케이드 게임과 다르다).
“심레이싱은 제 영역이죠. 하하.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우승을 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는 없어요. 요새는 심레이싱 출신 드라이버들이 늘어나서 이분들이 같은 클래스에 올라오면 저보다 잘할 것 같거든요.”
↑ 심레이싱 이벤트로 열린 슈퍼레이스에서 우승한 이정우 |
-말씀대로, 요즘은 e슈퍼레이스라고 심레이싱 대회도 있어서 여기서 입상하면 실제 레이싱팀에 스카우트 되기도 하죠?
“맞아요. 지금은 시스템이 굉장히 잘 갖춰져서 e슈퍼레이스에서 우승한 선수들을 실제 레이스카에 태워주기도 하는 등 그런 사례들이 많아지고 있더라고요. ‘라떼는’ 하나 밖에 없었는데요. 하하.”
-심레이싱이 실제 레이스와 얼마나 유사하나요?
“심레이싱이 레이스 도중 브레이크를 어떻게 밟고, 가속은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이론 공부하기 정말 좋아요. 거의 흡사해서 입문할 때 대단히 좋아요. 다만, 다른 점이나 한계점이라고 하면, 실제로 사고 났을 때 그 충격과 레이싱의 공포감을 느낄 수 없다는 점이죠. 실제로 사고가 나면 비용도 발생하는 등 여러 심리적 압박감이 종합적으로 작용하는 것도 다르죠. 하하.”
-그럼, 저 같은 일반인도 심레이싱을 통해 드라이버가 될 수 있을까요?
“하루에 5시간씩 꾸준하게 연습하면 될 것 같기도 한데…. 그런데 요즘 수준이 정말 높아져서 솔직히 ‘제가 해도 될까’란 생각이 들어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만큼 경쟁 심리도 엄청나기 때문에 다들 연습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하거든요. 그래서 하루 1~2시간 해서는 따라잡을 수가 없을 거예요.”
↑ 이정우의 경주차에 선명한 올 시즌 엔트리 넘버 55번 |
이정우는 이렇게 가상의 세계에서는 정상을 맛봐 자신감이 넘친다. 하지만, 실제 세계는 아직 우승이 없다. 2년차이던 2020년 대회 7라운드 2위가 최고 성적이다. 종합 성적으로 보면, 2019년 14위, 2020년 6위, 2021년 9위였다. 다만, 4년차를 맞은 올 시즌 전반기 성적 그래프(13위-9위-5위-8위)와 실제 레이싱을 보면 뭔가 심상찮다. 갈수록 상위권으로 도약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올 시즌에는 주변에서 잠재력이 폭발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하죠?
“시즌 초반에는 힘이 들어갔어요. 개막전 때 오랜만에 많은 관중이 찾아와서 그런지 힘을 많이 줬더니 결과가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후에 힘을 빼고 즐기면서 하니까 성적이 나오더라고요. 여유까지는 아니고, 즐기고 있달까.”
-우승을 목표로 하는 팀에 소속되어 있어서 부담이 될 것 같아요?
“맞아요, 엑스타 레이싱(2020년 CJ로지스틱스 레이싱에서 이적)이 우승을 위해 싸우는 팀(2015 2016 2020년 우승)이다 보니 현재 제 순위에 만족하지 않아요. 우리 팀 미케닉(정비)팀 실력이 국내에서는 1등이라고 봐요. 지난 후반기 마지막 대회 때 차량 문제가 있어서 ‘예선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3분 만에 문제를 파악하고 고쳐서 레이스를 하면서 무전으로 계속 ‘감사합니다’라고 했거든요. 이제 제가 (실력 발휘)할 차례죠.”
-그럼, 우승은 언제 가능하리라고 보나요?
“사실 올해 전반기 끝나는 시점(대회 4라운드)에 우승하고 아름답게 후반기를 맞이하는 모습을 그렸는데,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후반기 첫 대회인 다음 경기에서 우승하고 싶어요. 가능할 수 있어요. 아니, 가능하다! (우승)할 때도 됐습니다, 이제.”
-앞서 나가는 얘기지만, 혹시 준비한 우승 세리머니가 있나요?
“저는 특별히 생각하지 않았지만, (김진표) 감독님이 포디움(시상대)에 서면 ‘꼭 춤추라’고 하더라고요. 한창 유행했던 ‘제로투 댄스’요. 밋밋한 건 하기 싫은데, 샴페인 원샷하고 춤추고 내려올게요. 부끄럽지 않도록 취기에. 하하.”
↑ 엑스타 레이싱의 김진표 감독 |
이정우가 지목한 슈퍼레이스 하반기 첫 대회 결승은 이번 주 일요일(21일) 강원도 인제 스피디움에서 열린다. 대회 5라운드다. 프로야구 이정후(키움)가 지난 6월 자신의 공을 원한 팬에게 정확히 ‘홈런 배송’을 한 것처럼, 이름이 비슷한 이정우는 자신이 원하는 대회에서 팬들에게 ‘우승 배송’을 할 수 있을까. 말하는 대로 이뤄진다면 말 그대로 ‘성공한 덕후의 화룡점정’이 될 것이다. '점'을 찍지 못하더라도 이정우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꿈’을 이룰 때까지 달릴 것이다. 누군가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며 말이다.
“프로 드라이버를 꿈꾸는 분이든, 다른 길을 가시는 어떤 분이든 열심히 한 길을 걸으면 ‘언젠가는 이뤄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진심으로 열정을 다하면 일이 풀리더라고
이정우의 희망 스토리가 계속되고, 제2, 제3의 우리 시대 이정우의 탄생 또한 기대한다.
[국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