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절~대 월드 클래스 아닙니다!”
최근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은 손웅정 SON축구아카데미 감독의 발언입니다. 손 감독이 이 말을 했던 건 러시아월드컵 직전이던 2018년 5월이었습니다. 아들 손흥민이 2017~2018시즌에 기록한 유럽 무대 골이 18골, 전 시즌이었던 2016~2107시즌에 21골을 넣었으니 한 시즌에 20골 안팎을 기록하던 시기입니다.
‘로마인 이야기’로 잘 알려진 일본의 인기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일본 축구의 자랑 나카타 히데토시가 한창 잘 나갔을 때 “나카타는 ‘본 조카토레(좋은 선수)’이기는 하지만 ‘포리클라세(일류)’는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요. 사견입니다만 2018년 5월 당시 손흥민은 본 조카토레에서 포리클라세로 올라서려고 하던 시기가 아닌가 합니다.
손웅정 감독의 ‘월드 클래스’ 발언이 나오고 4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손흥민은 한 단계 도약했습니다. 최근 4시즌 유럽 무대 평균 득점이 21골이고, 지난 시즌에는 아시아인 최초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에도 올랐죠.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무대도 밟은 손흥민은 확실히 ‘초사이어인’이 됐습니다. 전성기 시절 메시나 호날두 급은 아니더라도 월드 클래스라고 불러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토요일 손흥민 국제유소년축구대회를 취재하러 손흥민의 고향 춘천에 갔습니다. 그동안 취재진 인터뷰를 고사하던 손웅정 씨가 인터뷰에 응하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인데요. 춘천으로 가는 2시간 동안 질문 내용을 정리했는데, 가장 묻고 싶은 건 역시 “지금도 아들이 절~대 월드 클래스가 아니라고 생각하느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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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절~대 월드 클래스 아닙니다.”
아버지는 단호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라는 말로 아들이 월드 클래스가 되려면 아직도 멀었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모든 분야에서 10% 정도만 더 성장하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개인적인 생각을 늘 가지고 있다”라며 지금 위치에 만족하지 말고 더 분발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습니다.
손웅정 감독의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월드 클래스 발언의 본뜻은 ‘야박한 평가’가 아닌 ‘자제’ 당부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상에 올랐다고 생각하는 순간 성장은 멈춥니다. 성장만 멈추는 게 아니라 자만에 빠집니다. 자만은 운동선수에게 마약입니다. 자만이란 늪에 빠지면 그걸로 끝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자만에 빠질까 봐 일부러 언론 앞에서 ‘너 아직 멀었다’고 말한 겁니다.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이요? 저는 흥민이가 함부르크에서 뛸 때 분데스리가 데뷔 골을 넣었을 때처럼 두려웠어요. 올해 풍년 들었다고 내년에도 풍년 든다는 보장은 없잖아요. 올해 풍년 들었을 때 내년에 흉년이 들었을 때를 대비해야 흉년이 왔을 때도 생존할 수 있지 않나 그렇게 늘 조심성을 가지고 다른 교만한 생각이 안 들 수 있게 그렇게 하고 있고 득점왕이 됐을 때도 그런 두려움, 호황보다는 불황이 더 다음 과정을 준비하는 데는 흥민이한테 더 좋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건방지게 보일지 모르지만, 화무십일홍이라고 생각을 해요. 열흘 이상 지속되는 꽃은 없고, 영원한 게 없고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방해하는 조건들이 유혹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 부분은 은퇴할 때까지 또 우리가 일반인으로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 부분에 대해선 조심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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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걸음 뒤에서”
손웅정 감독 인터뷰에서 월드 클래스 발언만큼 인상적이었던 건 이제는 한 걸음 뒤에서 지켜보겠다는 말이었습니다. 손흥민은 1992년 7월 8일생으로 만 30세입니다. 아들은 10대 소년이 아닙니다.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되는 나이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공항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 데에서도 흥민이가 나이 서른이 넘었기 때문에, 제가 나이 서른 넘은 만큼의 자식과의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언론을 통해 아들에게 아직 정상에 오르지 않았다고 다시 한번 충고했지만, 아버지는 아들이 자만심에 취하지 않을 걸 알고 있습니다. 그저 노파심에서 다시 한번 여전히 월드 클래스가 아니라고 말한 겁니다. 아버지가 다 큰 아들에게 진짜 하고 싶은 말은 행복입니다. 명예를 얻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공을 차지 말고 "축구를 하는 게 제일 행복하다"라고 말했던 초등학교 3학년 때의 마음, 초심이라고 부르는 그 마음으로 은퇴할 때까지 뛰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습니다.
“제가 흥민이 축구 시작하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얘가 나중에 어느 정도 리그에서 뛰겠지’라는 생각은 추호도 한 적 없고 늘 그냥 아, 흥민이가 이렇게 행복하게 축구를 하니까 제가 흥민이 하고 같이하면서 저 또한 행복했고 그 행복이란 단어 외에는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토트넘이든 어떤 구단이든 어떤 도시든 흥민이가 은퇴하기 전까지 돈을 떠나서 네가 가보고 싶은 어디든지 연봉이 적어도 네가 가서 살고 싶은 도시, 뛰고 싶은 구단에 가서 네가 행복하게 축구를 하다가 은퇴를 하는 게 나는 최고의 바람이라고 얘기해요. 그게 제 최고 바람입니다.”
기자들에게 털어놓는 아버지의 속마음을 들으면서 아들이 왜 세계 최고의 공격수가 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열변을 토하는 손웅정 감독의 말을 막고 한마디 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습니다.
“근데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아버지가 월드 클래스입니다!”
[전광열 기자 revelge@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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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족
그래도 궁금했습니다.
“도대체 아버님이 생각하는 월드 클래스는 누굽니까?”
예상 밖의 질문이라는 듯 잠시 멈칫하던 손웅정 감독이 답했습니다.
“월드 클래스요? 글
손 감독의 발언을 아주 기계적으로 해석해 봤습니다. 일단 2021~2022시즌 전 세계 최고의 클럽은 레알 마드리드일 테고…. 레알 마드리드에서 손흥민의 포지션인 공격수로 ‘생존’하는 월드 클래스라면…. 혹시 카림 벤제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