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 예상을 했지만 언니들의 공백은 생각보다 컸다.
세자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2일(한국시간) 미국 슈리브포트 보시에시티에서 열린 2022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1주차 일본과 경기에서 세트스코어 0-3(16-25, 17-25, 11-25)으로 패하며 대회 첫 경기를 패배로 마쳤다.
한국은 강소휘(26·GS칼텍스)가 11점을 올리며 분전했지만, 공격 에이스 역할을 해줘야 할 주장 박정아(29·도로공사)와 유일한 대표팀 전문 라이트 자원 김희진(31·IBK기업은행)의 부진이 아쉬웠다. 박정아는 7점, 김희진은 단 4점에 그쳤다.
↑ 사진=국제배구연맹 제공 |
이번 2022 VNL은 김연경(34), 김수지(35·IBK기업은행), 양효진(33·현대건설) 없이 치르는 첫 대회다. 10년 넘는 세월, 한국 여자배구를 지탱해 온 이들은 지난 2020 도쿄올림픽을 끝으로 국가대표 유니폼을 벗었다. 이제는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줄 때라 판단했다.
국가대표 엔트리를 작성할 때 가장 먼저 이름을 올렸던 이들이 이제는 없다. 새로운 출발을 나서야 했던 세자르호는 대회 시작 전부터 객관적인 전력에서 열세 평을 들었다. 미래가 창창한 선수들이 많지만 국제 대회가 주는 위압감과 부담감을 이겨낼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도 분명 있었다. 세 선수의 공백을 어떻게 채우냐가 최대 관건이었다.
물론 3회 연속 올림픽(2012 런던, 2016 리우, 2020 도쿄) 출전에 빛나는 김희진, 대표팀의 새로운 리더 박정아가 어느 정도의 그림자는 지우기를 바라는 팬들의 바람도 있었다.
박정아도 "쉽지는 않지만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즐겁고 밝은 분위기 속에서 훈련이 진행되고 있다. 서로 도와줄 수 있는 부분에 한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한다"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김희진도 "자신이 없더라도 코트에서 그런 모습이 비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언니들이 은퇴를 하면서 새로운 대표팀 모습은 어떨지 고민을 항상 한다. 우리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 경기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부담감을 지우기는 쉽지 않았다. 김연경, 김수지, 양효진. 세 명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컸다.
그 공백은 라이벌 일본전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코트 위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선수가 없었다.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다 보니 리시브가 흔들리고, 범실도 속출했다. 일본은 이를 파악하고, 한국을 집요하게 흔들고 파고들었다.
한 번 흔들리면 쭉 흔들리는 아쉬움이 있었다. 2세트 초반도 5-3으로 앞서갔으나 8-8 동점을 허용하더니 공격 범실과 안일한 플레이가 나왔다. 어느덧 스코어는 10-19, 한순간이었다. 이럴 때 한방을 책임져 줄 김연경의 존재감이 떠올랐다.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 김희진의 부진도 아쉬웠다. 대회 시작 전부터 무릎 통증을 느낀 것으로 알려진 김희진은 공격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4점, 공격 효율 -16%로 저조했다. 세자르 감독은 2세트 후반부터 김희진을 대신해 이선우를 넣었다.
↑ 사진=국제배구연맹 제공 |
2020 도쿄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 후 감독 교체 등 변화를 준 일본은 이시카와 마유와 코가 사리나가 확실하게 중심을 잡았다. 두 선수가 36점을 합작했다. 또 끈질긴 수비, 빠른 템포의 배구로 한국 선수들을 힘들게 했다. 한국은 보이지 않는 범실과 연결 과정에서 아쉬움을 나타냈지만, 일본은 이런 아쉬움이 보이지 않았다.
흔들릴 때 어떻게 풀어나갈 줄 아는 베테랑 선수들의 존재가 이럴 때 필요했다.
물론 수확이 없었던 건 아니다. 부상으로 2021 VNL과 2020 도쿄올림픽을 뛰지 못한 강소휘가 팀 내 유일한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리며 공격 에이스 역할을 했고,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른 이선우(20·KGC인삼공사)도 강렬한 서브에이스 두 방으로 인상을 남겼다. 이다현(21·현대건설)과 정호영(21·KGC인삼공사)도 중앙에서 존재감을 보여줬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이 결과를 가져와야 한다. 이제는 올림픽 티켓 부여 방식이 변경되면서 국제배구연맹(FIVB) 주최 대회 모든 순간이 중요해졌다. 대륙별 예선이 사라지면서 최대한 포인트를 쌓아 세계 랭킹을
힘든 여정이 이어질 거라는 건 선수들도 이미 알고 있었다. 이 힘든 여정 속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선수라면 이 과정을 이겨내야 한다. 언니들의 그림자를 하나, 하나 지워가면 된다.
한국의 대회 두 번째 상대는 독일(4일 오전 4시)이다. 독일전에서 승리를 가져올 수 있을까.
[이정원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