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올림픽의 메인이벤트로 꼽히는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이 초상집으로 변모했다.
금지약물 복용이 적발됐음에도 뻔뻔하게 연기를 펼친 카밀라 발리예바(16)는 물론 은메달을 획득하고도 거세게 반발한 알렉산드라 트루소바(18)까지 러시아 선수들이 만든 초상집 분위기였다.
17일 저녁 중국 베이징 캐피탈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프리스케이팅은 러시아 선수들이 금·은메달을 나란히 차지하며 막이 내렸다.
↑ 올림픽 후 좌절하고 있는 카밀라 발리예바. 사진(중국 베이징)=AFPBBNEWS=NEWS1 |
혜성처럼 나타난 발리예바는 이번 올림픽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다. 하지만 도핑 논란이 불거졌다. 발리예바는 어떻게든 올림픽 무대에 서려고 발버둥 쳤다. “할아버지와 물컵을 같이 쓰다가 할아버지의 심장 치료제 성분이 발리예바의 소변 샘플에서 함께 검출된 것”이라는 해명으로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항소가 수용돼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지만, 발리예바를 향한 시선은 싸늘했다.
발리예바가 쇼트프로그램에서 1위(82.16점)에 오르며 비극이 시작됐다. 하지만 인과응보였다. 프리스케이팅에서는 잦은 실수로 141.93점에 그쳤다. 자신의 최고점인 185.29점에 약 40점이 모자라는 점수였다. 합계 224.09점으로 4위에 그쳤다. 발리예바가 메달을 만약 딴다면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메달 시상식을 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추후 메달 획득과 박탈 여부를 가리겠다는 것이다.
발리예바의 노메달이 어찌보면 불행 중 다행이었다. 하지만 불법 약물을 사용한 선수가 올림픽 무대를 밟는다는 것부터가 불행의 시작이었고, 자칫 도핑 전력 선수를 감싸준 올림픽이라는 오명을 쓸뻔했다.
시상식은 또 어두웠다. 은메달리스트 트루소바의 돌발행동 때문이었다. 트루소바는 프리스케이팅에서 177.13점을 획득해 1위에 올랐다. 그러나 전날 쇼트프로그램 점수를 합산한 결과 총점 251.73점으로 팀 동료 안나 셰르바코바(18)의 255.95점에 뒤져 은메달을 가져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트루소바는 메달이 확정되자 울음을 터뜨리며 “나 빼고 모두 금메달이 있다. 난 스케이팅이 싫다. 정말 싫다. 이 스포츠가 싫다. 나는 다시는 스케이트를 타지 않을 것이다. 절대. 이제 불가능하다. 그러니 할 수 없다”고 소리쳤다. 또 에테리 투트베리제 코치를 밀쳐내는 장면이 TV 중계화면에 고스란히 잡히기도 했다.
트루소바는 경기 후 이어진 공식 기자회견에서 “나는 3년 동안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한 적이 없다. 나는 항상 목표를 향해 노력했다. 나는 항상 더 많은 쿼드러플(4회전) 점프를 추가했다”며 “그러면 나는 우승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화가 났다”고 밝혔다. 싱글에서 은메달을 획득했지만, 트루소바는 단체전에서 제외됐고, 발리예바가 출전해 1위를 차지했다. 금메달을 딴 셰르바코바의 표정도 마냥 좋을 수는 없었다.
↑ 시상대에 나란히 선 트루소바(왼쪽)와 셰르바코바(가운데). 은메달리스트 트루소바는 시상식에서 가운데 손가락을 활용한 욕을 한 게 아니냐는 논란도 일었다. 사진(중국 베이징)=AFPBBNEWS=NEWS1 |
[안준철 MK스포츠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