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 신호가 울리자마자 다소 쉰 목소리가 들렸다. 구창모(25·NC다이노스)였다.
“오랜만입니다.” 구창모의 말처럼 1년 2개월 정도 만에 다시 전화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물론 1년 2개월 전인 2020년 12월 구창모와 2022년 2월의 구창모는 많은 게 다르다.
↑ NC다이노스 구창모가 C팀(2군) 스프링캠프에서 복귀 준비에 한창이다. 사진=NC다이노스 제공 |
“작년엔 정말 힘들었죠. 야구를 시작한 한 뒤로 제일 힘들었습니다.”
NC 선발의 한 축이자, 우승의 주역이었던 구창모는 2021시즌 자취를 감췄다.
부상이었다. 전완부 피로골절 증상과 골밀도 부족 때문에 복귀는 더뎠고, 결국 수술대에 올랐다. 1군은 물론 퓨처스리그(2군)에서도 마운드에 오르지 못한 채 시즌을 마감했다.
사실 토종 에이스다운 활약을 펼친 2020시즌에도 구창모는 전반기에만 9승(무패)을 따낸 뒤 긴 휴식에 들어가야 했다. 그때도 팔꿈치 뼈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그해 정규시즌 막판에 복귀해 두산 베어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 두 차례 등판해 2승 2패로 분수령이었던 5차전 승리투수가 되는 빼어난 호투를 펼친 게 구창모의 공식경기 마지막 등판이 됐다.
“사실 수술을 생각했던 건 아닙니다. 피로골절이라고 했고, 뼈는 자연적으로 붙는거라 생각하고 재활을 했습니다. 하지만 나아지질 않았고, 조급해진 마음이 독이 된 것 같았습니다. 수술이라는 답을 내리기까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재활 과정은 전진하지 못하고, 후퇴했다. 지난해 8월 도쿄올림픽은 구창모에게도 대표팀에게도 중요했다. 빨리 복귀해서 건재함을 보여줘야 대표팀 승선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팔은 쉬이 나아지지 않았다.
태극마크, 올림픽 무대는 오래 전부터 구창모의 꿈이었다. “대표팀은 야구를 시작하면서 꿈이었죠. 또 대표팀 감독님도 공교롭게 김경문 감독님이셨잖아요(구창모가 데뷔했을 때 NC사령탑이 김경문 감독이었다). 정말 올림픽은 욕심이 생기는 무대였는데, 2019 프리미어19때도 그렇고, 올림픽도 부상으로 못가게 돼서 아쉬운 마음과 감독님께 죄송한 마음이 컸습니다. 올림픽 기간 중에 더 힘들었던 거 같습니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그런 시간이었습니다.” 전화기 넘어 들리는 구창모의 목소리는 잠겨있었다. 그래도 야구선수였다. 야구를 놓을 순 없었다. “야구를 안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보게 되더라고요. 보면서 ‘저기에 내가 있었으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해보기도 했죠. 보기 힘들었지만, 결국엔 경기를 다 봤습니다.”
지난해 7월 수술을 받으면서 구창모의 대표팀 승선은 불발됐다. 다소 생소한 ‘왼쪽 척골 피로골절 판고정술’이었다. 소량의 골반 뼈세포를 부상 부위에 이식 후 판을 고정하는 수술이다. 골밀도를 높이는 목적이다.
“지금은 수술하길 잘했다는 생각입니다. 실제 (팔을) 열어보니 생각보다 (뼈) 상태가 더 안좋았다고 하더라고요. 자연적으로 붙는다고 해도 다시 부러질 가능성이 크고, 그게 반복되면 똑같아지는 것이잖아요. 기왕 판을 (팔꿈치에) 고정해서 스트레스를 덜 받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구창모의 목소리가 다시 풀리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고민과 방황이 끝나는 포인트가 됐다. “수술하기 전에는 어떠한 위로나 조언도 귀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냥 6월까지는 모든 게 싫었습니다. (이동욱) 감독님도 야구장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머리를 식히라고 조언을 해주셔서, 야구 생각이 안날만한 곳에 가서 바다를 보고 온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수술을 받기로 결심하고 나서는 ‘좋아질 일만 남았다’라는 얘기가 가장 많이 들렸습니다. 또 복귀에 대한 정확한 기준점도 잡혔고, 그 기준점에 맞춰서 순리대로 운동을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동료들은 물론 코치님들이 해주셨습니다.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구창모 스스로 느끼기에도 팔은 단단해졌다. “뼈에다 판까지 고정했으니, 웬만한 힘에도 부러지지 않을 듯 합니다. 처음에는 팔에 판을 붙여놓은 거라 불편하고 어색했는데, 지금은 적응이 돼서 불편한 느낌은 없습니다.”
스프링캠프에 돌입하기 전 지난달 따뜻한 제주도에서 개인훈련을 하면서 팔상태를 끌어올렸다. 기술훈련에 초점을 맞췄다. 어느 정도 팔의 강도가 올라왔는지, 또 공을 던진 뒤 회복 기간 같은 것들을 확인하고 왔다. “지금은 캐치볼, 롱토스 다 하고 있고, 평지에서 피칭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실전 등판을 해야하고, 건강하게 복귀하더라도 구창모가 자리를 비운 사이 선발진에 진입한 선수들과 경쟁해야 한다.
“잊혀진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잊혀지는 건 한순간이라는 것을 여실히 깨달았습니다. ‘야구선수는 야구장에 있어야 하는구나’라는 것도 말이죠.” 피식 웃는다.
그러면서 구창모는 “프로라면 당연히 경쟁을 해야 발전할 수 있다. 예전부터 내가 자리를 비우면 누군가 튀어 나오더라. 내 자리라는 건 없다. 기량을 인정 받아야만 자리를 되찾을 수 있다. 지금 선발에 (이)재학이 형, (송)명기, (신)민혁이 등 여러 후보들이 있는데, 나도 한 자리를 다시 찾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젠 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4월 내 복귀도 가능하다는 게 구창모의 생각이다. 그러나 스스로 늦추고 있었다. 150km를 넘나드는 강속구를 뿌리는 구창모가 일부러 오프 스피드를 하는 것이었다. “이젠 급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천천히 완벽한 몸상태가 되는 게 더 중요합니다. 그래도 5월초에는 복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마운드에 서는 ‘떨림’은 분명할 것이다. 수술을 받기 전인 지난 여름 이후 마운드 위에서 공을 던지지 못했다. 구창모도 “연습경기라도 등판하면 긴장할 것 같고, 떨릴 것 같다”며 웃었다.
그래도 자신감은 여전하다. “실전 등판을 안해봤지만, 공던지는 감각이 뒤처지거나 그렇지 안않습니다. 물론 타자들도 저를 분석하겠지만, 저도 나름 잘 준비해서 자신은 있습니다. 몸만 건강하면 충분히 자신있고, 타자들과 승부가 재밌을 것 같습니다.”
구창모의 이탈이 결정적이 이유는 아니었지만, NC는 우승 1년 만인 지난시즌 포스트시즌 진출도 하지 못했다. “팀에서 저에 대한 기대도 컸는데, 기대에 못미쳐서 스스로 아쉽고, 팀에 대한 미안함도 컸습니다.” 부채의식이 높아진 구창모다.
2020시즌 통합 우승 이후 NC 2연패라고 새롭게 동기를 부여했었다. 하지만 2021시즌을 통째로 날리면서 구창모의 약속은 식언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일까. 구창모의 목표는 변함이 없다. “올 시즌 목표는 팀 우승입니다. 그리고 제가 복귀한 뒤로 건강하게 한 시즌을 마치는 것입니다.”
↑ NC다이노스 구창모의 2022시즌 부활을 향해 힘찬 피칭을 하고 있다. 사진=NC다이노스 제공 |
“작년에 못했던 것만큼 올해 더 열심히해서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구창모의 새로운 약속이다. 팔이 단단해진 만큼 마음도 단단해졌다. 잊혀졌던 에이스는 그렇게 다시 돌아왔다.
[안준철 MK스포츠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