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거둔 성과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18살 고등학생에서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을 대표하는 22살 스케이터로 성장한 김민석(성남시청)이 대한민국 선수단의 첫번째 메달을 따내며 연이은 쇼트트랙 실격으로 침체된 선수단에 모처럼 활력을 불어 넣었다.
김민석은 8일 중국 베이징 국립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2022베이징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500m 종목에 출전해 1분 44초 24의 성적을 기록했다. 15조 중 11조로 나선 김민석은 3위에 올랐고 이어진 경기에서 그를 뛰어넘는 선수가 나오지 않으며 지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이어 2연속 동메달을 확정할 수 있었다. 과거의 메달이 유망주가 거머쥔 행운이 아니라 자신의 확실한 실력이었음을 또 다시 증명한 것이다. 해설위원으로 나선 빙속 선배들인 이상화, 이강석 등도 눈물을 흘리며 메달에 기뻐했다.
중거리로 분류되는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500m는 단거리의 스피드와 장거리의 지구력이 모두 필요한 까다로운 종목이다. 그동안 스피드스케이팅 중에서도 네덜란드와 노르웨이, 구소련 등 신체조건이 뛰어난 유럽 선수들이 포디움을 독점하던 종목으로 꼽혀왔다. 지난 2004년 만 15세의 나이로 최연소 태극마크를 단 김민석은 꾸준한 웨이트 훈련을 통해 중거리에서 강점을 가지는 '올라운드형' 선수로 진화해왔고 아시아 최초의 1500m 메달리스트가 된 바 있다.
이번 대회에서도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178cm 신장의 김민석은 자신보다 한 뼘 이상 큰 유럽 선수들과 경쟁하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작은 거인'다운 면모를 보여줬다. 바로 앞 조에서 토마스 크롤(네덜란드)이 올림픽 신기록(1분 43초 55)을 세웠고, 같은 조에 편성된 지난 평창 대회 1000m, 1500m 2관왕 키얼트 나위스(네덜란드)가 곧바로 1분 43초 21의 올림픽 기록을 갈아치우며 금메달을 따냈지만 김민석은 주눅들지 않았다. 어느덧 유망주가 아닌 간판 선수라는 호칭을 듣게 되었고, 한국 선수단 전체에서 단 하나의 메달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 남녀 빙속 대표팀 첫 출전이라는 중책을 맡았지만 거칠 것이 없었다.
이날 김민석은 첫 300m 구간을 23초 75로 주파했고, 700m까지 49초 13으로 무난한 기록을 냈다. 이후 1100m 구간을 1분 15초 74로 통과한 뒤 마지막까지 스퍼트를 하면서 경기를 마칠 수 있었다. 올 시즌을 월드컵 1차 대회에서 1500m 금메달로 시작했고, 2차 대회에서 동메달을 일궈 랭킹 7위까지 오르는 등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던만큼 자신의 시즌 최고 기록(1분 43초 05)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메달권 안에 드는데는 모자람이 없었다. 이후 조이 만티아(미국), 오다 타쿠로(일본), 종얀 닝(중국) 등 김민석보다 시즌 최고 기록이 빨랐던 강자들 다수가 경기를 펼쳤지만 정작 큰 무대에서 김민석만큼의 속도는 내지 못했다.
경기를 마친 뒤 김민석은 "솔직히 말해 올림픽 챔피언을 향해 준비해왔고 내 레이스에 대해서는 전혀 후회없이 펼쳤다고 본다. 네덜란드 선수들이 나보다 잘한 것에 대해서는 승복하고 만족하겠다"며 당당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어 김민석은 최근의 쇼트트랙 판정 논란을 떠올린 듯 "내가 한국의 첫 메달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못했다. 불의의 사건이 있어서 저라도 메달을 따서 선수단에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코로나19로 준비 과정이 힘들었는데 응원해주신 국민들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김민석보다 앞서 경기를 펼친 박성현(한국체대)은 최선을 다해 레이스를 펼쳐1분 47초 59의 기록으로 21위에 올랐다. 당초 올림픽 출전이 가능한 랭킹이 아니었다가 결원이 발생하면서 지난달 21일 극적으로 올림픽에 나설 수 있었던 박성현은 "좋은 기록은 아니지만 월드컵 때 나를 이겼던 선수들을 이겼기에 만족한다"며 웃어보였다.
에이스의 기분좋은 메달로 분위기 전환에 성공한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은 앞으로도 팀추월과 매스스타트 등 메달 획득 가능성이 있는 종목들을 남겨두고 있다. 김민석 자신도 1000m 경기와 팀추월 경기에 나설 예정이다. 평창
[이용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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