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격이 난무하고, 경기 중 부상이 속출한다. 경기마다 비디오 판독이 필수이고, 다른 선수에 의해 승부가 결정된다. 레인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변칙과 술책이 경기력을 좌우한다. 판정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이런 종목이 과연 올림픽 정신에 부합할까? 다신 한 번 이런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하고도 전광판을 보며 실격당하지 않기를 기도하는 선수들 모습은 쇼트트랙이 공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올림픽 스포츠로서 자격이 있는지를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내로라하는 선수와 심판이 모였는데도 선수들은 어김없이 엉켜 넘어지고 판정은 공정시비를 낳는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쇼트트랙은 개인별 주행 구역이 따로 없다 보니 앞서가려면 추월이 불가피하다.
111m의 작은 링크를 도는 쇼트트랙에서 접촉과 충돌은 피할 수 없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넘어질 수도, 진로를 방해받기도, 속력이 줄어들기도 한다. 심판이 반칙 가해자로 지목하면 세계신기록급 주행을 펼치고도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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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트트랙은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해도 종목 특성상 불가피한 신체접촉에 대해 심판이 반칙을 지적하면 언제든 실격당할 수 있어 공정성에 한계가 분명하다. 황대헌(가운데)도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남자쇼트트랙 1000m 준결선을 1위로 마치고도 페널티를 받아 탈락했다. 사진=AFPBBNews=News1 |
20년 전 브래드버리는 다른 선수의 실격으로 결선무대에 오른 뒤 최하위로 밀려났는데도 나머지 참가자가 모두 넘어지는 '천운'으로 우승을 차지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의 주인공이다. 다른 종목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실력으로 경기 외적인 악조건을 이겨내고 성공하는 스타들이 끊임없이 나오는 것이 스포츠가 주는 감동이고 존재 이유다. 그러나 쇼트트랙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변수’가 경기 내부에 너무 많다.
500m, 1000m, 1500m 등 주어진 거리를 누구보다 빨리 완주할 수 있고, 아무한테도 추월당하지 않을 만큼 독보적인 선수가 있어도 올림픽 금메달은 장담할 수 없다. 쇼트트랙은 출발 과정부터 신체접촉이 불가피하므로 아차하는 순간 실격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전 결승 1위를 할 능력이 없는 월드챔피언도, 경쟁자를 여유 있게 따돌리고 결승선을 통과해도 페널티를 받아 탈락하는 세계 최강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베이징올림픽은 쇼트트랙이 왜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주관 종목 중 가장 늦은 1992년에야 올림픽 정식종목이 됐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쉴 새 없이 벌어지는 코스 경쟁이 핵심인 쇼트트랙 특성상 접촉 없는 개인 주행을 일정 구간 보장해주는 개정도 쉽지 않다. 언제까지 실력을 웃도는 행운과 이에 따른 판정 논란에 분노하면서 쇼트트랙을 봐야 하는 걸까.
쇼트트랙
[김대호 MK스포츠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