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전장에서는 말을 갈아타지 않는다는데…
사무부총장과 훈련, 국제업무 간부 대폭 경질
금메달 목표도 1, 2개로 30년전 수준으로 후퇴
이기흥 회장, 자신감 잃었나…납득 어려운 행보
대한체육회(회장 이기흥)가 동계올림픽을 1개월 앞둔 상황에서 대규모 인사이동을 단행하는가하면 올림픽 메달 목표를 역대 최저수준으로 설정하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예부터 ‘전장에서는 말을 갈아타지 않는다’는 말도 있는데 대한체육회는 동계올림픽을 코앞에 두고 훈련과 국제 등 주무 부서 간부들을 거의 바꿔버리는 악수(惡手)를 두었다는 평가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금메달 목표 또한 1, 2개로, 1990년대인 30년 전 수준으로 후퇴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왜 그럴까? 대한체육회의 최근 행태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다.
“원칙 없는 인사”비판…하려면 진작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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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사진=MK스포츠DB |
대한체육회는 28일 사상 최대 규모 수준의 인사이동을 내년 1월 3일자로 단행했다. 부장급부터 본부장급, 사무부총장까지 간부 23명의 자리바꿈을 했는데 사무총장을 보좌. 행정을 총괄하는 사무부총장에 이병진 훈련본부장을 파격적으로 발탁, 승진시켰으며 5명의 본부장급도 모두 새 얼굴로 교체했다. 새해를 앞두고 기관이나 기업의 대규모 인사이동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이번 인사 규모는 대한체육회 출범 이래 가장 큰 규모라는 것이 체육계 원로들의 말이다. 문제는 인사 규모가 아니라 내용이다. 내년 2월 4일 개막하는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그동안 대회 준비를 총괄했던 박철근 사무부총장을 비롯해 국제본부장, 국제교류부장, 국제대회부장 등 국제파트와 훈련본부장, 훈련지원부장, 선수촌 운영부장 등 훈련파트 간부들을 거의 바꿔 업무 차질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굳이 인사이동을 해야 했다면 지난 8월 도쿄올림픽이 끝난 직후 베이징 동계올림픽과 내년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대비, 진용을 갖춰었어야 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아울러 지난 1991년 공채로 입사해 30년 넘게 대한체육회에서 일해온 박철근 사무부총장과 김종수 기획조정본부장, 박인규 국제본부장 등 4명의 핵심 요원이 주요 업무를 앞두고 업무자문관으로 밀려나 논란이 일고 있다. 이들은 입사 동기생으로 그동안 대한체육회 주요 보직을 맡아 나름대로 조직에 공헌해왔는데 뚜렷한 이유도 없이 2년 뒤 퇴직해야 하는 업무자문관으로 발령받았다. 업무자문관은 정년 2년을 앞두고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가는 자리인데 이들의 정년은 3년 이상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 체육계에서는 이번 인사가 원칙 없이 이루어졌으며 지난 1월 재선에 성공한 이기흥 회장이 3년 뒤 치러질 제42대 대한체육회장 선거를 의식한 사전포석이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이번 인사는 지난 4월 사무총장으로 부임한 조용만 전 조폐공사 사장보다는 이기흥 회장 측근 간부가 주도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쪼그라드는 한국체육…국제종합대회 잇단 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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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흥 회장은 출입기자단 간담회를 통해 “베이징동계올림픽 종합 15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대한체육회 제공 |
한편 이기흥 회장은 지난 23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참가하는 한국선수단은 금메달 1, 2개에 종합 15위권을 목표로 한다고 밝혀 구설에 올랐다. 이 회장은 이날 “우리나라는 6개 종목 110명 규모의 선수단을 파견해 쇼트트랙에서 1, 2개의 금메달을 딸 수 있지 않을까 예측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선수단의 체질 개선,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데 어려움이 컸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제대로 훈련할 수 없었다. 빙상의 경우 (회장사 없이) 관리단체로 지정돼 지도부 공백을 겪는 등 문제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회장의 이 같은 목표 설정은 동계올림픽 참가 사상 최악으로, 가장 결과가 나빴던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금2, 은2)의 종합 14위와 2014년 러시아 소치 올림픽(금3, 은3, 동2) 종합 13위보다 낮은 것이다. 우리나라는 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 올림픽에서 처음 종합 10위에 오른 뒤 2010 캐나다 밴쿠버 올림픽에서는 종합 5위까지 오르는 등 1992년 이후 8번의 동계올림픽에서 6번이나 ‘톱-10’에 들었었다.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는 금 5, 은 8, 동 4개로 일본(금4, 은5, 동4, 종합 11위), 중국(금1, 은6, 동2, 종합 16위)을 제치고 종합 7위(아시아 1위)를 차지했었다.
2016년 제40대 대한체육회장에 취임한 이기흥 회장은 2018 평창올림픽을 제외하곤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과 2020도쿄올림픽에서는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부터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까지 8번의 아시안게임에서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만 빼고 7번 모두 일본을 제치고 중국에 이어 종합 2위를 했었다. 그러나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한국이 금 49, 은 58, 동 70개로 일본(금75, 은56, 동74)에 뒤져 24년 만에 3위로 밀렸다.
우리나라는 지난 8월 끝난 2020 도쿄올림픽에서도 종합 10위 이내 진입을 목표로 했으나 16위(금6, 은4, 동10)에 그쳤다. 개최국 일본은 미국, 중국에 이어 종합 3위(금27, 은14, 동17
)에 올라 우리나라와의 격차를 더욱 벌렸다. 이 때문에 “이기흥 회장은 한국 엘리트 체육의 상징인 국가대표팀의 전력 향상보다는 회장 연임에만 신경을 쏟는다”는 비판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대한체육회의 상급 기관인 문화체육부의 세심한 지도 관리가 필요한 이유다.
이종세(용인대 객원교수‧전 동아일보 체육부장)[ⓒ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