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는 올 스토브리그 FA 시장에서 외야수 박해민(31)을 보강했다.
잠실 구장을 홈으로 쓰는 구단 입장에서 넓은 수비 범위를 갖고 있는 중견수의 가세는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우려스러운 대목이 있다. LG가 그를 2번 타자로 쓸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오히려 강한 9번 타자로 기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LG는 박해민을 2번 타자로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각종 지표는 박해민이 9번에 배치됐을 때 더 강력한 공격력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사진=LG트윈스 |
최강의 출루율을 자랑하는 톱타자 홍창기와 함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홍창기가 1번, 박해민이 2번에 배치되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클래식한 야구의 관점에서는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닐 수 있다.
홍창기가 많이 출루하며 기회를 만들고 박해민이 다양한 작전 수행 능력을 보이며 중심 타선으로 찬스를 이어주는 상상을 해볼 수 있다.
하지만 야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물과도 같다. 현대 야구에서 2번 타자는 작전 수행 능력보다는 보다 과감한 공격 전략을 펴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일명 '강한 2번 타자 이론'이다.
'강한 2번 타자'의 관점에서는 출루율이 좋은 홍창기가 1루로 나가면 강한 2번 타자가 등장해 단박에 1,3루 혹은 2,3루를 만드는 야구가 훨씬 생산적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나 LG는 상하위 타선의 편차가 큰 팀이다. 하위 타선에선 득점력에 대한 기대치가 크게 떨어진다. 상위 타선에서 보다 많은 찬스를 만들고 해결해 줘야 득점력이 올라간다.
2번 타자가 찬스를 만드는 역할 보다는 해결사들의 등장을 이끄는 중심 타선의 톱타자 몫을 해내는 것이 훨씬 유리한 이유다.
박해민은 생각보다 출루율이 높은 타자가 아니다. 2021시즌에는 0.383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지만 이전 3년 동안 0.350을 넘긴 것은 2018시즌 단 한차례에 불과하다.
타자의 생산력을 알 수 있는 WRC+에서도 100을 넘긴 것이 올 시즌이 처음이었다. 서른 살이 넘어가며 타격에 눈을 떴다고도 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이전 시즌들의 기록에 좀 더 무게감을 둬야 한다. 해결사 능력은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대신 9번으로 기용하면 여러가지 장점을 찾아볼 수 있다.
일단 공을 많이 보는 홍창기 앞에서 출루를 한다면 장기인 도루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 도루는 타석에 들어서 있는 타자와의 호흡도 중요하다. 타자가 공을 잘 골라내 줘야 한 번이라도 더 뛸 수 있는 찬스를 만들게 된다.
불리한 카운트에 몰려도 출루할 가능성을 높게 갖고 있는 홍창기인 만큼 박해민이 뛸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벌어줄 수 있다.
9번부터 공격이 시작되게 되면 실질적인 테이블 세터 몫을 하는 것과 다름 없다. 다만 박해민이 먼저 나서 상대를 헤집고 다니게 된다면 홍창기에게는 더욱 많은 기회가 찾아올 수 있다.
주자 두 명을 쌓아 놓고 강한 2번 타자가 등장한다면 LG의 득점력은 배가 될 수 있다.
물론 지난 시즌까지 LG는 2번 타자에서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고민이 언제까지나 계속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외국인 타자가 성공적인 결과물을 만들어주기만 한다면 중심 타선을 2번부터 시작하는 그림을 다시 그려볼 수 있다.
9번부터 시작되는 공격은 보다 다양한 찬스를 중심 타선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확률 높은 야구가 가능해진다.
박해민을 통해 진정한 테이블 세터의 구성을 기대한다면 오히려 9번에 배치해 홍창기 앞에서 마음껏 뛰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그리고 강한 2번부터 상대를 압박하는 공격력을 보여준다면 상위 타선에서 경기의 흐름을 가져오는 힘이 생길 수 있다.
야구는 변하고 있다. 이미지 적으로는 2번이 어울려 보이지만 각종 지표는 박해민이 LG에선 오히려 9번 타자에
'강한 2번의 시대'를 LG가 이끌기 위해선 박해민이 9번에 배치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수 있다.
결정은 감독이 내리는 것이다. 보다 많은 경기 개입을 원한다면 박해민을 2번에 쓸 수 있겠지만 자원 낭비가 될 수도 있음을 잊어선 안될 것이다.
[정철우 MK스포츠 전문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