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일본 각축에 중동국가도 만만찮아
귀화선수 앞세운 바레인 등도 복병
한국일까. 일본일까, 아니면 아프리카 귀화선수들이 나오는 중동국가일까. 내년 9월에 열릴 제19회 아시안게임(중국 항저우) 남자마라톤 우승의 향배가 주목을 끌고 있다. 남자마라톤은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 가장 각광받는 하이라이트. 때문에 항상 대회 마지막날 ‘클로우징 이벤트(Closing Event)’로 열려 폐회식 직전 메인스타디움에서 시상식을 거행하는 것이 관례다. 과연 어느 나라 선수가 영광의 금메달을 목에 걸고 자국의 국가가 연주되는 가운데 국기 게양을 지켜볼 수 있을까?
한국 7번, 일본 6번 우승…객관 전력 일본 앞서
↑ 일본의 이노우에 히로토(왼쪽)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마라톤에서 바레인의 엘핫산 엘압밧시와 선두를 다투고 있다. 이노우에가 간발의 차이로 우승,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이후 32년 만에 일본이 아시안게임 정상을 되찾았다. 일본은 내년 아시안게임에서도 대회 2연패를 겨냥하고 있다. 사진=AFPBBNews=News1 |
1958년 이창훈 첫 우승…1982년 김양곤 패권 탈환
한국은 1958년 도쿄에서 열린 제3회 대회에서 손기정(1936년 베를린 올림픽 우승)의 사위 이창훈이 2시간 32분 55초의 기록으로 버마의 마이이퉁 나우를 제치고 우승했다. 3위는 일본의 사다나가 노부유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환대를 받은 이창훈은 전국을 순회하며 아시아 마라톤 제패 기념 세리머니를 펼치기도 했다. 이후 1962년부터 1978년까지의 아시안게임에서는 일본이 4회 연속 우승을 휩쓸었다. 한국은 1982년 뉴델리 제9회 대회에서 무명의 김양곤(한국체대)이 섭씨 25도의 더위 속에 2시간22분21초를 기록, 이창훈 이후 24년 만에 우승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당시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윤탁영 한국체대 교수는 귀국 후 필자에게 “마라톤 결승선에 선수단 임원이나 취재진이 아무도 없어 우승 테이프를 끊는 양곤이를 나 혼자 맞이했다”고 말할 만큼 예상을 깬 우승이었다. 또 하나의 일화는 김양곤이 귀국 후 고향(전북 임실)에서 찍은 사진이 신문에 실렸는데 활짝 웃는 모친의 치아가 거의 없는 것을 본 서울의 한 치과의사가 무료로 의치를 시술해주기도 했다.
2002년 부산대회는 남북한 ‘봉봉남매’ 동반 우승
한국 남자마라톤은 1986년 서울 제10회 대회에서는 일본의 나카야마 티케유키에게 1위 자리를 내주었으나 1990년 베이징 제11회 대회 김원탁, 1994년 히로시마 제12회 대회 황영조, 1998년 방콕 제13회 대회와 2002년 부산 제14회 대회에서 이봉주가 거푸 우승해 4회 연속 우승의 금자탑을 쌓았다. 특히 2002년 부산 제14회 대회 여자부에서는 북한의 함봉실이 1위에 올라 ‘봉봉 남매’의 남북한 동반 우승이 화제가 됐다. 2006년 카타르 도하 제15회 대회에서는 아프리카 케냐에서 귀화한 카타르의 무바라크 핫산 사미가 우승, 중동국가의 아시안게임 마라톤 첫 우승을 기록했다.
↑ 한국의 지영준이 2시간11분11초로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남자마라톤 결승선을 통과하며 기뻐하고 있다. 한국 남자마라톤은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12년 만의 정상 탈환을 노리고 있다. 사진=국제육상연맹 공식 홈페이지 |
한국, 내년 대비 귀화선수 오주한 강훈 돌입
그럼 2022년 항저우 제19회 대회에서는 누가 웃을까? 우선 일본의 가능성이 가장 크다. 올해 2월 비와코 마라톤대회에서 아시아 최고기록인 2시간4분56초로 우승한 스즈키 켄코(26)뿐 아니라 지난해 2월 도쿄마라톤에서 아시아 기록 2시간5분29초를 수립한 오사코 스구루(30‧2020 도쿄올림픽 6위), 2018년 자카르타 제18회 대회에서 우승한 이노우에 히로토(28) 등 세계적인 선수가 즐비해 대회 2연패가 가능하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국도 일본에는 미치지 못하나 케냐 귀화 마라토너 오주한(33‧충남 청양군청)이 케냐 고원지대 이텐에서 내년 3월 국가대표선발전을 겸한 동아마라톤에 대비, 강화훈련에 들어갔다. 청양군청은 지난 3일 케냐 선수 출신인 티모리모(34)를 오주한의 코치로 내정하고 청주시청 소속 민진홍(26)을 영입해 케냐 현지에서 3명의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오주한의 훈련을 돕도록 했다. 2시간5분13초의 오주한도 훈련만 제대로 하면 아시안게임 우승이 가능하다는 평가다, 이와 함께 김재룡(55) 감독이 이끄는 7명의 한국전력 마라톤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우승의 지영준(40) 감독이 지휘하는 마라톤 명문 코오롱팀도 4명의 선수가 선발전에 참가할 예정이다. 한전팀은 도쿄올림픽에 참가했던 심종섭(30‧최고기록 2시간11분24초)과 지난 11월 동아마라톤 3위의 신현수(30‧최고기록 2시간14분06초), 코오롱팀은 지난달 동아마라톤에서 우승한 박민호(22‧최고기록 2시간13분43초)가 유망주다. 각국이 2명씩 참가하는 2022년 항저우 제19회 대회 남자마라톤에서 한국이 12년 만에 정상에 다시 오를지 결과가 주목된다.
2006년 도하대회부터 중동국가 강세 보여
한국과 일본을 위협하는 중동의 바레인과 카타르 등은 케냐, 이치오피아, 모로코 등 아프리카에서 귀화한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카타르는 2006년 도하 제15회 대회에서 케냐 귀화선수 무바라크 핫산 사니가 바레인의 칼리드 카말 야심을 제치고 우승했다. 바레인도 2014년 인천 제17회 대회에서 하산 마흐부브가 일본의 마쓰무라 코헤이와 카와우치 유키를 각각 2위와 3위로 밀어내고 정상에 올랐다. 바레인은 2018년 자카르타 제18회 대회에서도 엘핫산 엘압밧시가 1위인 일본의 이노우에 히로토와 같은 2시간18분22초를 기록했으나 간발의 차이로 2위를 했을 만큼 아시아 마라톤 강국으로 떠올랐다. 오일달러를 앞세운 바레인과 카타르 등 중동국가들의 강세는 케냐, 모로코, 이치오피아 등에서 귀화한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도 케냐 귀화선수 오주한이 있고, 일본 실업팀도 아프리카 선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