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히어로즈 신인 외야수 김현우(20)는 말투는 또렷했다. 호주에서 왔다기에 어눌할 줄 알았는데, 그렇진 않았다.
독특한 이력이다. 그는 호주 시민권자다. 호주에서 한국으로, 그것도 부산으로 ‘야구유학’을 왔다. 알고보니 고향이 부산이다. 김현우는 올해 부산 개성고를 졸업했다. 2차 신인드래프트 6라운드 전체 59번으로 키움이 지명해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부산 신정중학교부터 한국에서 야구를 했다. 호주에서 야구를 시작했는데, 갈증이 있었다. 김현우는 “호주에서는 주말 (야구)클럽 활동을 했다. 호주에는 중·고등학교 야구부가 없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조언도 있었다”고 말했다.
↑ 호주에서 온 키움 히어로즈 신인 김현우는 고양 퓨처스팀에서 프로 선수로 성장 중이다. 사진=키움 히어로즈 제공 |
아버지는 호주에 정착하기 위해 고생했다. 어머니 김현미(51)씨와 함께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차에서 잠을 청할 정도로 바쁘게, 열심히 살았다. 그 와중에도 야구를 놓지 않았다. 한국인들로 구성된 사회인 야구팀을 만들었다.
어린 김현우도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야구에 흥미를 붙였고, 야구선수의 꿈을 키웠다. 호주에서도 한국 야구 중계를 시청했다. “열광적인 팬들한테 엄청 반했습니다. 호주에 있다가 한국에 한 번 놀러와서 부산 사직구장에 야구를 보러 갔는데 관중들 열기에 놀랐습니다. ‘내가 거기에 서 있으면 어떤 기분일까’라는 마음에 많이 사로잡혔던 것 같습니다. 악착같이 하는 한국인들의 그런 거에도 반했습니다. ‘죽어라 하는’ 선배님들을 보면 저도 그런 선수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짜 정식으로 야구를 하고 싶으면 한국으로 가자.” 어머니의 반대가 있었지만, 아버지와 김현우는 결단을 내렸다. 그렇게 자신이 태어난 지 100일 만에 떠난 고향으로 돌아왔다. 1년 유급해 중학교 1학년부터 다녔다.
따지고 보면 한국에는 6~7년 정도 머문 것이다. 한국말도 서툴렀다. 김현우는 “일부러 잘하는 척을 했다. 못 알아들었는데도 알아들은 척했다. 그리고 나서 검색을 했다(웃음). 이제는 많이 할 줄 아는데 처음 왔을 땐 못 알아듣는 용어가 많았다. 중학교 땐 7교시까지 수업을 들으면 못 알아듣는 것이 엄청 많았다”고 털어놨다.
이방인인 김현우는 적응하기 위해 야구에만 집중했다.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야구만 팠다. 여러 사람의 도움도 있었다. 신정중학교 박지철 감독은 김현우에겐 고마운 은사다. “호주에서 혼자 온다고 저를 꺼려하는 학교가 많았는데, 흔쾌히 받아주셨고, 저를 키워주신 분입니다. 정원욱 개성고 감독님은 프로 오는 데 있어서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표현은 잘 하시지 않지만, 뒤에서 많이 도와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박창열 코치님은 저와 많은 대화를 나누는 상대였습니다.” 부산에 사는 이모도 김현우에게는 든든했다. 주말에는 기숙사를 나와 이모집에서 쉬었다.
여러 사람의 도움을 김현우는 잊지 않았다. 그리고 노력했다. 결실로 이어졌다. 꿈에 그리던 한국 프로야구 선수가 됐다.
누구보다 호주에 있는 가족은 김현우에게 큰 힘이 됐다. 김현우의 프로지명에 무뚝뚝한 부산 사나이인 아버지도 눈물을 흘렸다. 김현우는 “코로나19로 호주에서 한국에 오시기 힘든 상황에서도 아버지는 드래프트 때 오셨다. 그리고 제가 지명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호주로 가실 때, 호주에 있는 형과 통화하면서 우셨다고 들었다”며 “어머니와는 영상 통화를 했는데, 어머니도 많이 우셨다”고 말했다.
↑ 후회하지 않을 때까지 하고 싶다는 게 김현우의 생각이다. 현재까지 김현우의 프로야구 정착 과정은 순조롭다. 사진=키움 히어로즈 제공 |
스스로 주루와 수비는 자신 있지만, 아직 타격은 보완할 점이 많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김태완 타격코치 옆에 항상 붙어있다. “코치님이 훈련 후에도 많이 도와주십니다.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십니다. 경험을 많이 쌓고, 1년, 1년 단계를 쌓아가면 가능성이 있다고 하십니다.”
동기생들은 1군 무대를 밟고 있지만, 김현우는 조바심내지 않고 있다. 완벽한 실력을 갖춘 뒤 1군에 올라가도 늦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다.
김현우의 모자에는 ‘No Regret(후회하지 말자)’라는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 아버지의 삶이 녹아있는 글귀, 김현우는 아버지를 마음에 품고 프로야구 선수로 성장하고 있었다.
[안준철 MK스포츠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