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용 전 대한야구협회장은 9일 후배들의 잇단 이탈과 도쿄 올림픽 참사에 대해 쓴 소리를 했다.
야구계 최고 원로로서 쓴 소리는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일견 기대가 됐던 것도 사실이다. 김 전 회장은 야구 감독으로 한국시리즈 10히 우승이라는 전무 후무한 기록을 세웠고 구단 사장을 거쳐 아마 야구협회 회장까지 지낸 인물이다. 한국 야구계에서 그 이상의 무게감을 가진 인물은 찾기 힘들다.
↑ 김응용 전 야구협회장이 도쿄 참사에 대해 "선수들이 배에 기름이 꼈다"는 수준 이하의 비판을 했다. 사진=MK스포츠 DB |
김 전 회장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과거 야구대표팀은 국제대회에서 죽기 살기로 했다. 이번에는 그런 모습이 사라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대회에선 일본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진이 다 빠진 느낌이었다"라며 "마지막 두 경기(미국과 패자 준결승, 도미니카공화국과 동메달 결정전)를 보면서 팬들은 많은 실망을 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전 회장은 대회 개막전 불거진 일부 선수들의 방역 수칙 위반과 관련, "요즘엔 초등학생들도 훈련할 때 모두 마스크를 쓴다. 어린아이들도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방역수칙을 지키는데, 프로선수들은 단단히 잘못된 행동을 했다"고 꾸짖었다. 이어 "KBO도 중심을 잡고 재발 방지를 위해 엄한 징계를 내려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김 전 회장은 "그런 상황에서 올림픽에 나갔으니 선수들이 제대로 뛰었겠나. 배에 기름이 찬 상태에서 뛴 것이나 다름없다"며 "KBO도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구성원 중에 잘못한 이가 있으면 재발 방지를 위해 엄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기사들은 온통 김 전 회장의 "배에 기름이 찬 것"이라는 말을 헤드 라인으로 뽑았다. 가장 자극적인 멘트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김 전 회장 정도 무게감을 가진 원로가 할 말은 아니라고 본다. 그건 쓴 소리가 아니라 뒷담화에 가까웠다.
김 회장의 쓴 소리를 보며 순서가 뒤바뀐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사과와 반성이 먼저 이뤄졌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야구 원로들에게는 코로나 술 파티를 연 선수들이나 도쿄 참사로 노메달 수모를 겪은 선수가 모두 제자이자 후배다. 자신의 제자와 후배가 잘못을 저질렀다면 응당 그에 대한 사과와 반성을 하는 것이 도리 아닐까.
다시 말하지만 일탈을 한 후배나 야구를 못한 후배나 모두 야구 원로들의 제자이자 후배다. 연결고리를 끊으려 해도 끊어지지 않는 관계다.
그렇다면 야구 원로들은 이 사태에 대해 사과와 반성을 먼저 했어야 한다. 제자와 후배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후배들의 일탈이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예전부터 보고 배운 것들이 전해지고 옮겨진 것이다. 걸리지 않았다고 해서 선배들의 일탈이 용서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후배들이 어디서 보고 그런 행동들을 했겠는가. 모두 선배들이 하던 행동을 보고 따라한 것이다. 내가 그러지 않았다고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행동을 꾸짖고 잘못을 꾸준히 지적했어야 했다.
야구 선배들이 눈 감고 넘어갔던 일 들이 지금 한꺼번에 터지며 야구의 위기를 만든 것이다. 이기기만 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승자 독식 주의'를 만든 것도 야구 원로이자 선배들이다.
야구 선배들은 지금 두 파로 갈라져 서로 다른 협회를 운영하고 있다. 선배들도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데 후배들이 단합해 하나로 뭉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지금 야구 선배들은 '나 때는 말이야..."를 할 때가 아니다. 모두 선배들에게 보고 배운대로 후배들이 행동했다는 자각을 가
때문에 꾸짖는 쓴 소리 전에 통렬한 반성과 사과를 먼저 해야 한다. 꾸짖는 건 그 다음 일이다.
지금이라도 책임있는 야구 원로들과 선배들이 책임 있는 사과와 반성을 내놓길 바란다. 그리고 후배들에게 보다 당당하게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것이 순서다.
[정철우 MK스포츠 전문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