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가 최대 위기를 맞았다.
팬들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만회할 수 있는 카드가 딱히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돌아선 팬심을 되돌릴 방법이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사건이 터지고 한 사람의 강연이 떠올랐다. '그 강연이 프로야구 선수 전체를 향한 것이었다면 이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을까'하는 아쉬움이 남을 정도로 예리하고 명확한 강연이었다.
↑ 홍성흔이 2019시즌 두산 신인들에게 했던 강연이 다시 화제다. 이번 술판 사태를 예견한 듯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기 때문이다. 사진=MK스포츠 DB |
두산은 2019시즌 두산 유니폼을 입게 된 신인 선수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했다.
그 중 홍성흔 샌디에이고 마이너팀 코치의 강연이 포함돼 있었다. 홍 코치의 강연 내용은 신인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명언들의 모음이었다.
마치 지금의 사태를 예견이라도 한 듯, 선수들에게 꼭 피해야 할 것을 강조했다.
홍 코치는 "쉽게 술 사주는 주변 형님들을 만나지 마라"고 입을 열였다. 마치 이 사태를 예견한 듯한 경고의 말이었다.
"신인 선수지만 프로 구단에 입단한 만큼 이제는 공인이다. 술로 인한 행동 실수는 본인 뿐만 아니라 팀에게도 가족에게도 손해를 끼친다"고 역설했다.
홍 코치는 술을 멀리할 수 있는 선수가 돼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며 "경쟁자들이 술을 마시러 갈 때 타격 스윙 한 번 더 하라"고 충고했다.
홍 코치는 또 "모든 게 술 때문이다. 여자 문제, 승부 조작, 도박 개입 등 모두 술에서 기인한다"고 후배들을 가르쳤다.
홍 코치의 강연은 마치 예언이 되어 2년 뒤 한국 프로야구를 뒤집었다.
술 잘 사주는 좋은(?) 형을 따라 나섰다가 여자 문제가 불거졌고 방역 수칙 위반이라는 약속까지 어기게 됐다.
모든 것이 술에서 시작했다.
결은 조금 다르지만 승부 조작에 연루된 선수들 대부분도 일단은 술로 시작한다.
술 잘 사주던 형에게 마음을 열었다가 꼬임에 넘어가 결국 넘어선 안 될 선을 넘게 되는 것이다. 억대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 쌈짓돈 정도에 불과한 금액에 쉽게 승부 조작 유혹에 빠지는 이유다.
홍 코치가 이미 2년 전에 이런 내용의 강연을 했다는 건 한국 프로야구에 이번 사태와 비슷한 음주 문화가 뿌리 깊게 내려 박혀 있었음을 뜻한다. 자신의 선수 시절에도 술의 유혹에 넘어가는 선수들을 많이 봤기에 나올 수 있는 이야기였다.
이번 술판 파문이 단순히 연루된 몇몇 선수의 일탈에 그치지 않는 이유다. 지금 같은 음주 문화가 바꾸지 않으면 모든 선수들이 장본인이 될 수 있다.
시즌 중 지나친 음주는 성실한 플레이에 대한 팬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짓 임을 잊어선 안된다.
만약 홍성흔 코치의 강연이 프로야구 선수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면 이번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을까.
아쉽게도 고개가 가로 저어진다. 규칙이나 약속 따위는 헌신짝 처럼 여기는 이들에게 무슨 기대
다만 홍 코치의 통찰력이 새삼 놀랍게 느껴질 뿐이다.
또한 아직 그와 같은 정신력을 가진 선수들이 한국 프로야구에 남아 있을 수 있다는 희망도 가져보게 된다.
프로로 성공하고 싶은 선수라면 홍 코치의 말들을 다시 곱씹어 봐야 할 것이다.
[정철우 MK스포츠 전문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