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기적은 만들어지는 것인가.
'비운의 손수건 왕자'가 기적 같은 일을 해냈다. 단번에 구속은 6km나 끌어 올렸다.
팔꿈치 인대 파열 이후 수술 없이 재활에 나서고 있는 상황. 두 번째 실전에서 깜짝 놀랄 구속을 선보였다.
↑ "손수건 왕자" 사이토 유키가 9일만에 무려 6km를 끌어 올리며 기적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사진=MK스포츠 DB |
1점 리드한 7회에 등판.선두 타자를 땅볼로 잡아냈지만 이어진 타석에선 풀 카운트 끝에 볼넷. 이어 2루 도루가 나왔고 와다의 2루 땅볼 때 2사 3루가 됐다. 여기서 오가와에게 중전 적시타를 맞아 실점했다. 후쿠다는 초구에 유격수 땅볼로 잡아내며 이닝을 매조졌다.
중요한 것은 구속이었다. 무려 138km가 나왔다. 12일 등판 때는 고작 132km에 그쳤다. 9일만에 6km가 빨라졌다.
여전히 대단히 빠른 구속은 아니지만 조금만 더 스피드를 끌어 올리면 1군에서도 통할 수 있는 구위를 만들 수 있게 된다. 비록 변화구 위주의 투구를 했다고는 하지만 구속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남기며 기적을 쓸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줬다.
사이토는 12일 가마가야 구장에서 열린 2군 이스턴리그 요코하마 DeNA전에 등판해 1이닝을 던졌다.
오른쪽 팔꿈치 인대 파열 부상 이후 첫 실전. 지난해 10월 16일 이스턴리그 요미우리전 이후 269일 만의 실전 등판이었다.
결과는 3자 범퇴 무실점. 9개로 3타자를 막아냈다. 그러나 최고속도는 고작 132km가 찍혔다.
한때는 복귀까지 1년 이상을 필요로 하는 인대 재건 수술(통칭 토미·존 수술)도 고려한 바 있다.
그러나 조기 복귀를 목표로 PRP(자기다혈소판혈증 주입) 요법을 선택했다.
이번 전지훈련부터 재활훈련의 일환으로 적극적인 투구 훈련을 거듭해 이날 실전 등판까지 이르게 됐다.
사이토는 재활 등판 과정서 하루에 무려 200개의 투구수를 기록해 사람들을 놀라게 한 바 있다. 그만큼 절실하게 재활에 매달리고 있다.
PRP(Platelet Rich Plasma=자기다혈소판혈증주입)란 환부의 혈액을 채취해 혈소판을 늘리는 배양을 한 것을 주사하여 자연치유력을 촉진시키는 요법이다.
피부주름, 처짐 등을 해소하는 성형외과 분야에서 발전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토미 존 수술을 받기 전에 이 요법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사이토의 복귀 여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020년 12월 9일 계약 갱신 교섭에서 350만 엔 감소한 연봉 1250만 엔에 사인. 프로 10년 만에 처음으로 1군 등판 없이 끝났다.
▼같은 달 28일 통증이 있던 오른쪽 팔꿈치가 인대 파열된 것을 밝혔다. 환부의 현상이나 보존치료를 선택한 경위를 밝혔다.
▼2021년 2월 1일 오키나와·쿠니가미에서의 2군 캠프 첫날, 가장 빠른 오전 9시 반에 불펜에 들어가 2번의 작은 휴식을 사이에 두고 200구의 투구를 했다.
▼같은 달 9일 재활 훈련의 일환으로 약 200구의 투구를 계속했다. 구속은 약 120km.가 나왔다.
▼같은 달 19일 오키나와 나고에서 2군 연습에 참가.불펜에서 약 200구를 던져 어깨와 팔꿈치에의 부담을 줄인 새로운 폼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이토는 이날 훈련 뒤 "좋은 방향으로 가줄 것 같다"는 소감을 밝혔다.
▼같은 달 24일 나고에서의 2군 훈련으로 구리야마 감독이 지켜보는 가운데, 불펜에 들어가 슬라이더, 체인지업, 포크를 섞어 약 150개를 던졌다. 약 130km까지 나왔다.
▼4월 8일 가마가야의 2군 시설에서 프리 타격의 타격 투수로 등팡, 호소카와, 다미야, 등에 합계 29구를 던져 최고속은 135km까지 나왔고 히트성의 타격은 2개가 나왔다.
그리고 첫 실전서 132km를 찍은 뒤 두 번째 둥판에서 무려 6km를 끌어 올렸다. 수술 없이 재활만으로 조기 복귀를 모색했던 선택이 옳을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이 페이스라면 머지 않아 사이토를 1군에서 보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더 이상 '비운' 딱지를 달고 있지 않아도 될 수 있다. 실제 기적을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감을 부풀리고 있다.
사이토는 고교 시절 팀을 고시엔 우승으로 이끌며 영웅으로 떠올랐다.
곱상한 외모에 넘치는 투지와 혹사를 넘어선 투혼 등으로 큰 인기를 모았다. 손수건으로 땀을 닦는 모습이 화제가 되며 '손수건 왕자'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최
하지만 대학 졸업 후 입단한 프로 세계는 냉정했다.
데뷔 시즌 6승을 거둔 것이 최다승이었다. 이후 각종 부상과 부진이 거듭되며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해엔 1군 등판 기록 조차 없다.
[정철우 MK스포츠 전문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