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한국 야구 발전을 위해 많은 애를 쓰고 있는 지도자 출신 한 야구 원로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를 많이 쓰는 원로다.
그 분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요점은 이랬다. 선수들이 너무 큰 잘못을 저질렀지만 더 이상의 추가 관련자가 나오지 않는다면 이제부터는 정리하는 방향으로 가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그 야구 원로는 "이대로 가다간 공멸밖에 남지 않는다. 살릴 수 있는 것은 살려야 하지 않겠나. 일부 선수의 일탈로 너무 많은 것을 잃고 있다. 베테랑 기자들을 중심으로 분위기 전환을 위해 노력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일부 선수들의 일탈로 시작된 파장이 아직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그러나 아직 끝낼 단계는 아니다. 다른 문제는 없는지 끝까지 파헤쳐야 한다. 사진=MK스포츠 DB |
"아니요. 아직 멀었습니다. 좀 더 끝을 봐야겠습니다. 선수들의 마음 가짐이 처음부터 달라질 수 있도록 더 집요하게 이 문제를 파고들어야 겠습니다."
프로야구가 이대로 추락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 야구를 걱정하고 공멸의 공포를 느끼고 있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이 쯤에서 조용히 덮을 문제가 아니다. 보다 폭 넓은 조사를 통해 다른 문제는 없었는지, 다른 위반 사례는 없었는지를 철저하게 가려내야 한다.
그래야 무너진 신뢰를 되찾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야구가 최대 위기까지 몰린다 해도 끝까지 파헤치고 정리를 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통해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의 윤리 의식이 얼마나 위태로운 것이었는지가 밝혀졌다. 팬들과 약속을 헌신짝 처럼 내팽개친 행동에 큰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많다.
여기서 멈추면 그 충격이 사라지기는 커녕 더 큰 불신만 남을 수 있다. 선수들이 완전히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도록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한다.
지난 2004년 병역 비리 문제가 터졌을 때도 그랬다.
"이러다 야구가 망하는 것 아니냐"는 두려움이 야구계를 감쌌다.
구단 별로 두자릿 수 이상의 병역 비리 연루 선수들이 나왔다. 이렇게 다 까발려져서는 제대로 야구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그 때도 나왔었다.
하지만 야구는 살아남았다. 당시 수사를 주도했던 경찰은 모처럼 잡은 대어를 쉽게 놓아 주지 않았다. 전방위 수사를 계속 했고 굴비 엮이듯이 선수들의 연루 사실이 드러났다.
매일 같이 경찰의 브리핑이 있었고 새로운 연루 선수가 드러나곤 했다.
모든 것이 까발려 졌다. 야구의 신뢰는 땅으로 떨어졌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민감한 병역 문제를 건드렸다는 점에서 위기 의식은 더 컸다.
하지만 야구는 망하지 않았다. 이후 한국 프로야구는 제대로 된 병역 시스템이 자리 잡았다. 때가 되면 누구나 군 문제 해결에 나선다.
그 기간 동안 훈련을 계속하며 야구와 단절을 최대한 막는 시스템도 자리 잡았다. 병역 비리 문제로 모든 것을 털고 가다보니 새로운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야구계가 신뢰를 다시 얻는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돌아선 팬심을 되돌리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 들어 야구의 질이 높아지고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베이징 올릭픽 금메달 등 굵직한 성과를 내며 팬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었다.
이번에도 모두가 새롭게 출발한다는 각오로 모든 것을 털어내야 한다. 연루자가 더 있다면 계속해서 징계하고 처벌해야 한다. 끝까지 파고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야구 원로께서 야구를 걱정하시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아직은 끝을 말할 단계가 아니다. 아직 우리 선수들의 윤리 의식이 확실하게 자리
작은 것 하나도 세심하게 신경써야 한다는 것이 몸에 익어야 한다. 팬들과 약속을 그 어떤 것보다 중요시 하는 마음 자세를 갖춰야 한다. 그래야 같은 사건이 반복되지 않는다.
그 때가 올때까진 모두가 정신 바짝 차리고 발본색원에 나서야 한다.
[정철우 MK스포츠 전문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