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스포츠 정철우 전문기자
NPB 통산 2안타에 그친 타자가 팀을 떠난 뒤 메이저리그서 2095안타를 친 대표 스타로 성장한 놀랄만한 스토리가 있다.
히로시마 카프 출신으로 메이저리그에서 성공을 거둔 알폰소 소리아노(45) 이야기다.
소리아노는 히로시마 카프의 중남미 캠프 출신 선수였다. 일본 프로야구에선 기량 미달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쓸쓸히 팀을 떠나야 했다. 하지만 그에겐 메이저리그의 성공이 기다리고 있었다.
↑ 뉴욕 양키스 시절 소리아노. 사진=MK스포츠 DB |
일본 야구 전문지 슈칸 베이스볼은 최신호서 드라마틱한 야구 인생을 산 한 남자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소리아노가 일본에 온 것은 당시 20세인 1996년. 깡마르고 천진함이 남는 소년과 같은 풍모였다. 같은 해에는 1군 출장 기회가 없고, 웨스턴리그에서 57경기에 출장해, 타율 0.214, 홈런 0, 13타점에 그쳤다.
파워는 있지만 스윙이 거칠고 컨택트 능력도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듬해인 1997년은 1군에서 9경기에 출전했지만 17타수 2안타로 타율 0.118, 0홈런, 0타점. 1998년에 연봉 조정으로 구단과 타협이 되지 않고 조용하게 탈퇴한다.
1996년 베이스볼 매거진을 통해 카프 아카데미에서 히로시마에 입단한 펠릭스 펠도모, 티모니엘 페레스, 프란시스코 델라크루즈와 좌담회가 실렸다. 소리아노는 "먼저 들어가 있던 선수로부터 아카데미의 어려움은 상상을 넘는다고 들어서 솔직히 망설였다.
카프 아카데미에 들어가는 것을 고민하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가족들이 "너는 아직 어리니까 이제부터겠지. 장래성이 있으니 열심히 하라"는 말을 듣고 다시 가기로 결심했다. 리너리스 코치로부터도 여러가지 지도를 받았다. 덕분에 한 달 후 계약을 할 수 있었다. 그 때의 힘든 훈련이 나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라고 감사를 말하고 있었다.
히로시마에서는 소질을 터트릴 수 없었던 소리아노지만, 메이저리거로서 상상을 초월한 성공 스토리가 전개된다. 1998년 9월에 뉴욕 양키스와 계약하면서 1999년 9월에 메이저 승격. 2001년 2루에서 주전 자리를 꿰찬 뒤 158경기 출전에 타율 0.268, 18홈런, 73타점, 43도루(리그 3위)로 두각을 나타냈다.
이듬해인 2002년에는 타율 0.300, 39홈런, 102타점, 41도루로 도루왕을 차지했다. 자신의 첫 트리플 스리 달성과 함께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선수가 된다.
2003년에는 선두타자 홈런 13개 신기록을 세웠다. 같은 해 오프에 레인저스로 이적하면서, 2005년에 자신 세번째의 30홈런, 30도루를 달성했다.
워싱턴 내셔널스로 이적한 2006년에는 타율 0.276, 46홈런, 95타점, 41도루로 메이저 사상 4번째로 40홈런, 40도루를 달성한다. 40홈런 40도루 402루타는 메이저리그 사상 첫 쾌거였다.
빠른 발과 장타력을 고루 갖춘 강타자는 드물었다. 2007년 이후에도 시카고 컵스의 주전으로 활약하다 2013년 7월 트레이드로 뉴욕 양키스에 복귀했다. 2013년 8월 7일의 화이트삭스전에서 미.일 통산 2000개 안타를 달성했다. 메이저 통산 1998 안타에, 프로 생활을 시작한 히로시마 시대의 2 안타를 더한 과거는 일본에서도 화제에 올랐다. 2014년의 시즌 후에 현역 은퇴를 표명했다.
메이저리그 통산 성적은 1975경기 출전에 타율 0.270, 412홈런, 1159타점, 289도루. 7년 연속으로 올스타전 출전에 2004년에는 MVP를 획득.
슈칸 베이스볼은 "메이저리그에서 꽃망울을 터뜨린 소리아노의 노력은 물론 칭찬 받아야 하겠지만 그 재능을 발견한 카프 아카데미, 히로시마에서 걸었던 길도 결코 헛되지 않았다. 소리아노의 성공 이야기는 앞으로도 전 세계에 전해질 것이다"라고 글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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