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스포츠(잠실) 정철우 전문기자
2007년 6월 9일은 한국 야구사에 기념비적인 날이다. 잠실 두산-삼성전. 양준혁이 이승학을 상대로 역대 최초로 2000안타를 달성한 날이다.
지금은 2000안타 달성 선수가 두자릿수를 넘어갔지만 당시만해도 아무나 넘볼 수 없는 대기록으로 여겨졌다.
그날의 감격은 많은 선수들이 기억하고 있다. 그 경기를 보며 2000안타의 꿈을 꾼 선수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 최형우(왼쪽)가 홈런으로 2000안타를 달성한 뒤 그라운드를 돌고 있다. MK스포츠(잠실)=천정환 기자 |
양준혁 이후 2000안타를 달성한 모든 선수들은 그날의 기억을 항상 떠올린다. 나도 그와 같은 영광의 순간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갖고 노력하게 됐다는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다.
KIA 최형우는 20일 잠실 LG전서 개인 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다. 역대 12번째 대기록이었다.
그런데 최형우는 다른 선수들과는 다른 기억을 갖고 있었다. 정작 2000안타를 달성하기는 했지만 최초 기록자인 양준혁에 대한 기억은 가물가물하다는 것이었다.
최형우는 "양준혁 선배님의 2000안타에 대한 기억이 없다. 다들 그 장면을 보고 2000안타를 꿈꿨다고 하는데 나는 다르다. 그저 하루 하루 버텨내는 것이 중요했다. 하루에 안타 하나가 간절했던 시절은 있었지만 대기록을 보고 꿈을 꾼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기록을 다시 찾아봤다. 양준혁의 2000안타가 나왔을 때 최형우는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그 장면이 기억에 없다고 하는 것이었을까.
2007년 최형우는 프로야구 선수가 아니었다. 2002년에 삼성에 입단한 최형우는 2004년까지 뛴 뒤 삼성에서 방출됐다. 안타 기록은 2002년에 세운 2개가 전부였다.
이후 야구를 포기하려 했지만 경찰청에서 겨우 다시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경찰청에서의 활약을 통해 2008년 삼성에서 다시 뛸 수 있게 됐다.
양준혁이 대기록을 세웠을 때는 프로야구 선수로서 계획을 세운다는 것 자체가 사치였던 시기였다.
여기서 최형우의 대단함이 다시 드러난다. 다른 2000안타 달성자들은 빠르게 프로야구에 적응해 어린 시절부터 차곡차곡 안타를 쌓아가다 대기록에 이른 선수들이었다.
최형우는 달랐다. 출발점 부터가 차이가 났다. 20대 중반이 돼서야 프로야구 선수로서 커리어를 쌓아갈 수 있었다.
최형우는 "다른 스타 플레이어들이 신인 때 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기록을 향해 나아 갔기 때문에 양준혁 선배를 보며 꿈을 키울 수 있었을 것이다.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 대기록이 시야에 들어왓을 것이다. 그 때 나는 좌절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절망 속에 시간을 보냈다. 다시 기회가 왔을 때는 절박하게 매달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하루 하루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절실하게 매달리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라며 "2000안타를 목표로한 적이 없다. 그 정도 칠 수 있을 거라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양준혁 선배가 기록을 세웠을 ??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기억에 없는 일 인 듯 하다. 다른 선수들과 나는 출발부터 달랐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도 다르다"고 말했다.
최형우는 그 어떤 선수보다 출발이 늦었다. 그러다보니 다른 선수들보다 늦은 나이에 2000안타를 달성하게 됐다. 하지만 최형우는 아직 달릴 힘이 남아 있다. 체력적으로 여전히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형우는 "남들보다 늦게 시작해서인지 나는 아직 한참 뛸 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 한 번도 체력적으로 부담을 느낀 적이 없다. 야구를 못할 수는 있어도 힘이 떨어져 못할 나이
인생의 바닥에서 출발해 최고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 최형우다. 모두가 영광을 꿈꾸고 있을 때 좌절에 빠져 있었지만 이제 그 누구 보다 높이 날아 오르게 된 최형우. 그래서 그의 2000안타는 좀 더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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