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스포츠 정철우 전문기자
두산에서 LG로 이적한 함덕주는 독특한 스타일의 투수다. 일반적인 좌투수와는 반대 성향을 보인다.
상식적으로 좌투수는 좌타자에게 강하다. 공을 보기 어렵고 바깥쪽으로 승부할 수 있는 무기가 있기 때문이다.
함덕주는 다르다. 오히러 우타자들에게 더 강세를 보인다. 일반적인 좌투수들의 성적과는 전혀 다르다.
↑ 함덕주가 3월29일 잠실 SSG전서 역투하고 있다. 사진=LG 트윈스 |
함덕주는 지난해 우타자를 상대로는 피안타율이 0.195에 불과했다. 그러나 좌타자를 상대로는 피안타율이 0.341로 치솟았다. 우타자와 좌타자의 상대 성적이 눈에 띄게 차이가 났다.
슬라이더를 제대로 던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좌투수가 좌타자를 잡는 패턴은 몸쪽 공을 보여주고 바깥쪽으로 흘러 나가는 슬라이더를 던져 헛스윙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함덕주는 좌투수임에도 슬라이더에 대한 자신이 없다보니 이 같은 패턴의 승부를 할 수 없었다. 좌타자에게 유독 고전했던 이유다.
함덕주는 체인지업이 주무기인 투수다. 검지와 중지를 벌려 잡는 독특한 함덕주의 체인지업 그립은 우타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패스트볼과 똑같은 궤적으로 날아오다 타자 앞에서 갑자기 떨어진다. 우타자의 바깥쪽을 자신있게 공략할 수 있는 주요 무기다.
그러나 슬라이더는 그만큼의 자신감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렇다고 좌타자에게 함부로 체인지업을 던질 수도 없다. 자칫 공이 몰려 장타를 허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함덕주의 슬라이더 구사 비율은 10.1%에 불과했다. 그나마 2019년의 5.2%에서 두 배 가량 올라간 수치다. 체인지업 구사 비율은 매년 30%가 넘었다. 사실상 패스트볼과 체인지업의 투 피칭 유형 투수였다.
그런 함덕주에게 변화의 조짐이 생겼다. 슬라이더를 좀 더 자신감 있게 던지게 된 것이다.
함덕주는 3월29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SSG랜더스와 2021 KBO리그 시범경기에 선발 등판했다. 3이닝 동안 49개의 공을 던져 3피안타 4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함덕주는 이날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1회를 탈삼진 3개로 끝내더니 3회 2사 2, 3루 위기에선 추신수를 2루수 땅볼로 처리, 1점도 내주지 않았다.
함덕주가 그동안 약점을 보였던 좌타자, 그것도 추신수를 상대로 위기에서 벗어나는 위기 관리 능력을 선보였다. 이 승부에서도 슬라이더를 과감하게 썼다.
이날 함덕주는 패스트볼(22개), 슬라이더(15개), 체인지업(7개), 커브(5개) 등 다양한 구종을 점검했다.
눈에 띄는 것은 슬라이더 구사 비율이다. 체인지업 보다 무려 2배 이상 슬라이더를 던졌다. 함덕주에게는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함덕주는 “오랜만에 공을 던지는 데다 예정된 투구수(최대 50개) 때문에 최대한 빠르게 타자와 승부하려고 했다. 그래서 최대한 스트라이크를 많이 던지면서 내 구종을 점검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포수 유강남과의 첫 호흡인 것도 영향이 있었다. 그는 “강남이 형도 처음이니까 다양한 구질과 로케이션으로 사인을 냈다”면서 “한 두 개를 제외하고는 강남이 형 사인대로 던졌다”고 덧붙였다.
아직 함덕주를 잘 모르는 유강남이기에 그에게 다른 좌투수들 처럼 많은 슬라이더를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건 그런 사인에 함덕주가 고개를 젓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만큼 슬라이더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함덕주는 지난 겨울 슬라이더에 많은 공을 들였다.
슬라이더가 주무기인 투수들에게서 그립부터 던지는 방식까지 많은 것을 흡수했다. 슬라이더를 좀 더 자신감 있게 던지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그 결과 슬라이더에 대한 나름의 자신감이 붙게 됐다.
함덕주는 "아직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슬라이더에 대한 자신감이 붙은 것은 사실이다. 공을 많이 들인만큼 좋은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는 슬라이더를 던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슬라이더가 장착된 함덕주는 보다 위력적인 투수가 될 수 있다.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함덕주를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이젠 좌타자들도 함덕주의
함덕주의 슬라이더는 올 시즌 그의 성적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무기가 됐다. 함덕주의 새로운 슬라이더를 좀 더 주목해 볼 이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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