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의 외국인 타자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는 KBO리그 최고의 타자 중 한 명이다. 2020시즌에도 무려 199개의 안타(1위)를 치며 안타 기계다운 명성을 이어갔다.
하지만 호.미.페는 포스트시즌만 되면 타격에 힘이 부쩍 떨어진다. 포스트시즌에서는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하는 징크스가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서 페르난데스는 타율이 0.077에 머물렀다. 올 시즌에도 부진은 이어지고 있다. 준플레이오프부터 한국시리즈 1차전까지 타율이 0.192에 머물러 있었다. 4차전까지 타율도 0.267에 불과하다.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엔 부진의 폭이 너무 크다. 슬럼프를 길게 가져가지 않는 페르난데스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매년 반복되고 있는 포스트시즌의 부진엔 뭔가 이유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추론이 가능하다.
↑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는 22일 현재 한국시리즈 4경기 타율 0.267를 기록하고 있다. 사진(서울 고척)=천정환 기자 |
일단 페르난데스가 어떤 유형의 타자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 자료=스포츠 데이터 에볼루션 |
페르난데스는 패스트볼에 강점이 있는 타자다. 올해 정규시즌서 패스트볼 타율이 0.391이나 된다. OSP도 1.052에 이른다. 올 시즌 때려낸 21개의 홈런 중 15개가 패스트볼을 공략해 얻어낸 것이었다.
다른 구종에서도 고르게 강세를 보였지만 유독 패스트볼에 대한 대처 능력이 좋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런 그에게 상대 배터리도 의외로 패스트볼을 많이 던졌다. 패스트볼 구사 비율이 50%나 됐다. 그만큼 페르난데스가 빠른 공이 들어오는 타이밍을 잘 맞춰 많은 스윙을 했다는 뜻도 된다.
그러나 포스트시즌에 들어선 뒤 페르난데스의 패스트볼 공략 성공률은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 자료=스포츠 데이터 에볼루션 |
한국시리즈 1차전까지 페르난데스의 패스트볼 타율은 0.200에 불과했다. OPS가 0.585에 그쳤다.
흥미로운 것은 상대 배터리의 페르난데스 공략 방식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정규시즌서 50%에 달했던 패스트볼 비율이 34%까지 떨어졌다. 페르난데스를 힘으로 이기려는 시도를 크게 줄였음을 알 수 있다.
한, 두 명의 투수에게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투수들의 패스트볼 공략 비율이 크게 줄었다.
보다 유인구로 많이 페르난데스의 방망이를 유도해내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수치다. 정규시즌서 패스트볼에 강했기 때문에 당연한 선택을 한 것으로 알 수 있다.
전체적인 변화를 봤을 때 페르난데스는 포스트시즌에서 특별한 약점을 보이지는 않았다.
↑ 자료=스포츠 데이터 에볼루션 |
스포츠 데이터 에볼루션은 “인플레이 타구 비율도 크게 차이가 없었고 볼을 골라내는 비율도 큰 차이가 없었으며, 헛스윙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포스트시즌 인플레이타구 % 가 다소 줄어들긴 했으나, 정규시즌에 비해 10월이 오히려 인플레이타구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볼 때 성적과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다만 인플레이 타구시 아웃되는 비율이 크게 높아졌다. 9월까지 페르난데스의 BIS는 37%였지만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한 10월부터는 20%대 중반으로 눈에 띄게 성공률이 떨어졌다. 공을 배트에 맞히는데는 성공하고 있지만 그 결과를 좋게 만드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뜻한다.
↑ 자료=스포츠 데이터 에볼루션 |
정규시즌에 비해 포스트시즌서 땅볼 비율이 다소 높아지기는 했지만 워낙 땅볼이 많은 유형의 타자였기 때문에 여기서 특별한 문제점이 생겼다고 보긴 어렵다. 다만 팝업 플라이가 늘고 라인 드라이브는 줄어드는 현상을 보였다는 건 공을 정타로 만드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패스트볼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페르난데스의 타격 난조를 가져온 이유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정규시즌서 그렇게 잘 치던 패스트볼을 갑자기 못 치게 된 이유는 뭘까. 이유는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상대는 빠른 공을 잘 던지려 하지 않는데 계속 그 타이밍을 고집하기 때문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노림수가 먹혀들지 않으니 정작 진짜 노리던 패스트볼이 들어왔을 때에도 좋은 타격을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자료=스포츠 데이터 에볼루션 |
부진한 2020 포스트시즌의 페르난데스를 보면, 강한 타구 비율에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타구 유형별로 땅볼 비율의 약간 증가, 팝업 플라이의 증가, 라인드라이브 타구 비율의 감소 등을 볼 때 정교한 컨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스포츠 데이터 에볼루션은 “페르난데스는 기본적으로 포심 패스트볼에 매우 강한 타자이며, 고타율은 주로 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를 상대로 이루어졌다. 2020 포스트시즌에서 페르난데스를 상대로한 투수들은 포심 패스트볼을 적게 구사했으며, 이는 페르난데스가 부진한 데 영향을 주었을 수 있다. 실제로 자신이 공략을 잘했던 패스트볼과 슬라이더만을 상대했던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홈런 포함 2안타로 좋은 활약을 펼쳤으며, 2안타 모두 포심 패스트볼을 상대로 한 결과였다”고 설명했다.
페르난데스의 능력은 찬스를 만들기도 하고 연결하기도 하며 해결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포스트시즌 들어 페르난데스 타석에서 흐름이 끊기는 경우가 너무 자주 나타나고 있다. 두산 타선이 전체적으로 힘이 떨어진 모습을 보이는 큰 이유 중 하나다.
A팀 전력 분석원은 “페르난데스가 패스트볼에 강하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이젠 그 반대의 경우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패스트볼을 유인구로 쓰는 것이다. 볼이 되는 몸쪽 하이 패스트볼로 페르난데스의 스윙을 유도해 땅볼을 만드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패스트볼을 많이 보지 못하니 좋아하는 빠른 공이 오면 페르난데스의 방망이가 그만큼 쉽게 나오고 있다. 그러나 놔두면 볼이 되는 공이 대부분이다. 이 공을 제대로 골라내지 못한다면 이번 시리즈가 끝나기 전까지 해법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포스트시즌은 1년간 쌓인 데이터를 놓고 벌이는 두뇌 싸움이다. 정규 시즌의 대비책만으로는 좋은 결과를 내기 어렵다. 약점을 보이면 무섭게 파고 들어간다. 실수가 나올 때도 있겠지만 방향성이 정해지면 실패할 때까지 밀어붙인다.
페르난데스는 자신의 정규시즌에서
정철우 MK스포츠 전문위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