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외국인 투수 플렉센은 이번 한국시리즈의 키 플레이어다. 플렉센이 나오는 경기는 반드시 잡아야 하고 언제든 불펜 투수로 활용할 수도 있다. 그만큼 그가 완벽한 공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플렉센은 처음부터 강력한 투수는 아니었다. 빼어난 구위를 갖고는 있었지만 잘 활용하지 못하는 투수였다.
그의 6월 평균자책점은 4.71, 7월 평균자책점은 5.25에 불과했다. 그러나 8월을 기점으로 플렉센은 변하기 시작한다. 부상으로 한달 넘게 결장한 뒤 돌아온 플렉센은 9월 평균자책점 3.86, 10월 평균자책점 0.85를 기록한다. 시간이 지난 수록 언터처블이 되고 있음을 뜻한다.
이 상승세는 포스트시즌에도 이어지고 있다. 준플레이오프서 팀에 승리를 안긴 데 이어 플레이오프서는 1승1세이브를 거두며 두산을 한국시리즈로 이끌었다. 상대적으로 불펜이 약하다는 단점도 플렉센이 있어 메꿀 수 있었다.
↑ 플렉센은 두산의 한국시리즈 우승 열쇠를 쥐고 있다. 사진=김재현 기자 |
하지만 빠른 공 만으로 타자들을 제압할 순 없다. 빠른 공을 더욱 위력적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변화구가 뒤를 받혀줘야 한다. 플렉센에게는 커브가 있다. 각도 큰 커브는 그의 하이 패스트볼과 짝을 이뤄 타자들의 방망이를 현혹시킨다.
부상 전.후의 커브 위력을 살펴보면 플렉센의 커브가 얼마나 위력적으로 변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 자료=스포츠 데이터 에볼루션 |
피안타율은 0.265에서 0.136으로 0.130 가까이 낮아졌다. 피OPS는 0.639에서 0.361로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커브가 거의 언터쳐블의 변화구로 업그레이드 됐음을 뜻한다.
↑ 자료=스포츠 데이터 에볼루션 |
플렉센의 커브에 타자들이 많이 당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는 수치다. 전체 커브 투구 중 헛스윙하는 비율이 11%에서 23%로 두 배 이상 뛰었다. 갑자기 타자들이 플렉센의 커브를 손도 대지 못하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이에 따라 커브가 스트라이크가 되는 비율이 40%에서 70%로 크게 높아졌다. 강한 타구 비율은 같았고 땅볼 유도율은 줄었지만 헛스윙을 하거나 빗맞은 타구를 만들어내는 비율은 드라마틱하게 높아졌다. 그 사이 플렉센의 커브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 자료=스포츠 데이터 에볼루션 |
그러나 플렉센의 커브는 일단 타자들의 눈에 패스트볼과 차이를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궤적을 그렸다. 일단 손에서 떠나는 순간 ‘뽕~’하고 떠오르는 궤적을 그린 뒤 떨어지기 시작했다. 패스트볼 보다 높이 보이는 공은 일단 커브라는 것을 알 수 있음을 뜻한다.
A팀 타격 코치는 “플렉센의 커브는 던진다는 걸 미리 알 수 있다. 패스트볼 보다 높은 궤적에서 출발하면 커브다. 타자들도 다 안다. 하지만 대처가 제대로 안된다. 그래서 더 위력적이라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자료=스포츠 데이터 에볼루션 |
그렇다면 플렉센의 커브는 왜 알고도 못 치는 것일까. 정답은 떨어지는 낙폭과 회전수에 있다.
스포츠 데이터 에볼루션은 “비교적 비슷한 위치에서 출발하는 패스트볼과 커브의 궤적을 비교했을 때, 플렉센의 패스트볼과 커브는 투구 후 약 12m 지점에서 평균 약 41.8cm의 무브먼트 차이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플렉센의 패스트볼과 커브는 스트라이크 존에 이르러 평균 약 79.0cm에 달하는 무브먼트 차이를 보인다. 타자의 신체 조건에 따라 약간씩 달라지지만 통상적으로 스트라이크 존의 상하 높이가 약 70cm 정도에서 형성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스트라이크 존 상단에서 하단까지의 차이에 육박하는 차이라고 볼 수 있다. 가장 높은 스트라이크 존에서 가장 낮은 스트라이크 존까지 낙폭이 이뤄진다. 타자의 시선을 위.아래로 크게 흐트러트릴 수 있는 위력을 갖고 있다.
여기에 플렉센은 150km가 넘는 공을 하이 패스트볼 존으로 찔러 넣을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공을 높게 보고 대처해야 칠 수 있다. 시선이 높게 형성돼 있는 상황에서 크게 떨어지는 공은 눈으로만 쫓기엔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 자료=스포츠 데이터 에볼루션 |
또한 2020시즌 플렉센 커브의 평균 회전수는 약 2837rpm으로 KBO리그에서도 최상위권의 회전수를 보여주고 있다. 움직임을 크게 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플렉센의 커브는 알고도 치기 힘든 위력을 지니고 있다. 타자의 시선을 크게 흔들 수 있는 낙폭과 많은 회전이 가져다 주는 변화의 크기가 타자들을 현혹시키고 있는 것이다.
과연 NC 타자들은 플렉센의 커브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을까. 그 숙제를 풀지 못한다면 한국시리즈를 풀어가는 것도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정철우 MK스포츠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