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상철 기자
2020년 프로야구 정규시즌도 ‘종점’을 향하고 있다. 5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로 2021년을 기약한 삼성도 11경기만 남았다.
위에 올라갈 수도 아래로 내려갈 수도 없는 ‘8위’로 시즌을 마칠 사자 군단이다. 잔여 경기 결과가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누군가에게 그 한 번의 기회를 부여잡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성곤(28)의 시즌 61번째 및 통산 91번째 경기는 언제일까. 9월 20일 1군 엔트리에 말소된 후 그는 2군 선수단과 동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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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곤에게 2020년은 선물과 같다. 첫 홈런도 쳤고 첫 타점도 올렸다. 시즌 막바지 2군으로 내려갔으나 그가 1군 무대에서 가장 잘한 해였다. 사진=MK스포츠 DB |
삼성의 퓨처스리그 경기는 지난 7일 종료됐다. 그렇지만 끝은 없다. ‘다음’을 계속 밟아가야 한다. 15일부터 시작하는 NC, 롯데와 낙동강 교육리그 경기를 준비하던 이성곤은 “요즘 운동하기 딱 좋은 날씨다”며 웃었다.
그는 “퓨처스리그가 끝났고 교육리그를 곧 시작한다. 그러나 KBO리그는 아직 진행 중이다. (1군에 올라가) 마지막 1경기라도 더 뛰고 싶다. (호출을 받을 수 있는 만큼) 내 강점을 살리며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내 뜻대로 되는 건 아니다. 감독님께서 불러주시면, (언제든지 올라가서) 최선을 다할 준비가 되어있도록 노력했다”라고 말했다.
7년차 야구 선수의 인생이 조금이나마 빛나고 있다. 오랜 세월, 야구를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던 그는 묵묵히 구슬땀을 흘렸다. 그리고 그 노력을 보상받았다.
경기고, 연세대를 졸업한 이성곤은 2014년 2차 신인 드래프트 3라운드 32순위로 두산의 지명을 받았다. 청소년대표를 거쳤던 그는 장래가 촉망받는 유망주였으나 기나긴 2군 생활로 ‘미래’를 장담할 수 없었다. 한 해가 지날 때마다 재계약 여부를 걱정해야 했다.
1군에서 뛸 기회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2017년 말 2차 드래프트를 거쳐 삼성으로 둥지를 옮겼으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19년까지 그는 KBO리그 통산 30경기밖에 뛰지 못했다. 타석도 60번뿐이었다.
하지만 이성곤에게 2020년은 잊지 못할 시즌이다. 6월 24일부터 9월 19일까지 3개월 동안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마침내 알을 깼다는 평가도 들었다.
14일 현재 이성곤의 1군 성적은 60경기 39안타 5홈런 18타점 16득점 OPS 0.795다. 데뷔 첫 홈런, 타점을 기록했다. 거포로서 잠재력도 과시했다. 안타 39개 중 12개(홈런 5개·2루타 7개)가 장타였다.
6월 26일 사직 롯데전에선 스트레일리를 상대로 1호 홈런을 터뜨렸다. ‘이순철의 아들’이 아닌 ‘이성곤’이라는 이름을 널리 알린 순간이었다. 하루 뒤에는 첫 타석부터 샘슨의 초구를 공략해 비거리 120m 아치를 그렸다.
잊지 못할 순간들이다. 이성곤은 “특히 1군 무대에서 쳤던 첫 홈런이 너무 각별하다. 게다가 올해 리그를 지배하는 투수(평균자책점 3위)를 상대로 친 것 아닌가. 뜻깊은 홈런이다. 그때 타격감을 끝까지 유지하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그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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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곤에게 2020년은 선물과 같다. 첫 홈런도 쳤고 첫 타점도 올렸다. 시즌 막바지 2군으로 내려갔으나 그가 1군 무대에서 가장 잘한 해였다. 사진=MK스포츠 DB |
그는 “홈런 개수가 많지 않아도 중요한 순간에 친 홈런이다. 사실 홈런만 기억나는 게 아니다. 홈런뿐 아니라 안타 하나하나가 내겐 너무 소중했다”라고 강조했다.
남은 11경기, 허삼영 감독이 이성곤을 다시 1군 엔트리에 등록할지는 미지수다. 이성곤의 통산 91번째 경기는 내년에 열릴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눈에는 부족하고 아쉬움이 남을 법하나 그에겐 매우 뜻깊은 시즌이었다.
이성곤은 “사실 그동안 힘겹게 2군 생활을 했다. 그렇지만 올해는 내 인생에 1군에서 가장 잘했던 시즌이다. 크게 부각할 만한 성적은 아니다. 잘한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난 정말 즐겁고 재밌게 야구를 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매년 이 시기가 오면, (보류 명단에서 제외될까) 야구를 그만둬야 하는 거 아닐지 걱정이 많았다. 그래도 올해는 방출될 걱정을 안 해도 될 것 같다. 추워지는 날씨에 마음이 춥지 않다. 내년에 더 잘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새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약점인 수비에 중점을 두고 운동할 계획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준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난 행복하다”라고 힘줘 말했다.
풀타임 시즌도 아니다. 1군 등록 기간은 108일. 리그 최고 타자와 비교할 만한 성적표도 아니다. 그렇지만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동안 고생한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이성곤은 “내게는 2020년이 선물과도 같다. 남들은 그 정도밖에 못 해놓고 그러냐고 핀잔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6~7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2군에서만 계속 경기를 한다는 건 해본 사람만 알 것이다. 매너리즘에 빠지고 포기할 수도 있다. 그 과정이 하나하나 다 기억이 난다”라고 이야기했다.
직업은 야구 선수. 아버지를 보고 자랐던 20대 선수의 오랜 꿈이었다. 동경했던 그 세계에 발을 내딛는 그는 절대 야구 배트를 놓을 수 없었다. 그 어떤 고난의 길을 걷더라도.
이성곤은 “힘겨웠던 긴 시간을 버틸 수 있던 건 ‘야구’ 때문이다. 정말 야구가 좋다. 야구가 아닌 일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돈을 많이 벌든 적게 벌든, ‘야구 선수 이성곤’이라는 표현을 스스로 좋아했다”라고 전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값진 경험이다. 이성곤이 성장하는 ‘자양분’이 됐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거나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많았다. 그러면서 좀 더 빨리 어른이 된 것 같다. 그때 얻은 경험은 귀중한 자산이다. 아마 계속 1군에서만 뛰는 선수는 알 수 없는 걸 난 갖고 있다. 그게 내 강점 중 하나다”라고 밝혔다.
가장 무서운 게 무관심이라고 했던가.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만으로 기뻐했다. 호평이든 악평이든. 이성곤은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평가를 받더라도 그런 반응을 얻는 것만으로도 신기했다. 2군에 있을 땐 전혀 몰라주지 않나. 그런 평가가 나한테 많은 도움이 된다. 그래서 참 좋았고 뜻깊은 한 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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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곤에게 2020년은 선물과 같다. 첫 홈런도 쳤고 첫 타점도 올렸다. 시즌 막바지 2군으로 내려갔으나 그가 1군 무대에서 가장 잘한 해였다. 사진=MK스포츠 DB |
직설적인 화법으로 유명한 이 위원이다. ‘해설위원’으로서 ‘야구 선수 이성곤’을 냉철하게 비평하기도 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아들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이성곤은 “‘이순철의 아들’이라는 게 자랑스럽고 자부심을 느낀다. 아버지께서도 좋은 말씀을 해주시는 편이다. 조언도 잘 해주시고 응원도 많이 해주신다. 내가 힘들어할 때마다 큰 위로가 됐다. 든든한 지원자가 있다는 게 버틸 수 있던 원동력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물론, 칭찬에 인색한 분이지만, 잘할 때는 ‘네가 웬일이냐’라고 반응하셨다. 그런 말씀도 내겐 칭찬으로 느껴진다. 내년엔 더 잘해서 아버지께 더 많은 칭찬을 듣겠다”라고 다짐했다.
잊지 못할 한 해를 보냈으나 이성곤은 ‘주전’이 아니다. 백업으로 1군 붙박이도 아니다. 2020년보다 더 행복한 2021년을 보내려면, ‘업그레이드’는 필수다.
이성곤은 “(9월) 1군 엔트리 제외는 어느 정도 예상했다. 너무 못했다. 특히 수비 약점으로 감독님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내 활용 가치를 높이려면 공격뿐 아니라 수비도 잘해야 한다. 모든 면에서 성장한 걸 삼성 팬 여러분에게 보여드리고 싶다”며 각오를 다졌다. rok1954@maekyung.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