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믿을맨 정우영은 최근 슬럼프를 겪고 있다. 9월 이후 부진에 빠져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9월 월간 평균자책점은 5.25. 10월 들어서도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10월 월간 평균자책점도 5.79나 된다. 5번 등판했는데 그중 세 번이나 실점했다.
가장 먼저 ‘혹사’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정우영은 올 시즌 59경기서 68이닝을 던졌다. 순수 불펜 투수 중에서는 손꼽힐 정도로 많은 이닝을 던졌다.
↑ 정우영의 9월 이후 평균자책점은 5.40이다. 피안타율은 0.175에 불과하나 16⅔이닝 동안 볼넷을 11개나 허용했다. 사진=천정환 기자 |
그러나 세부 기록을 살펴보면 정우영에게서 혹사의 후유증을 찾아보긴 어렵다. 많이 던져 공의 위력이 떨어졌다는 증거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스터리다. 구위가 떨어지지 않았는데 왜 슬럼프가 찾아온 것일까.
스포츠 데이터 에볼루션에 의뢰해 우선 정우영의 피안타율과 피장타율을 원별로 따져 보았다.
↑ ‘스포츠 데이터 에볼루션’ 제공 |
9월 이후 정우영의 피안타율은 0.180에 불과했다. 월별 성적으로 봐도 6월이나 7월처럼 한참 무더위가 찾아왔을 때 보다 나은 성적을 보였다.
피장타율도 낮았다. 피장타율은 2할에 불과했다. 피OPS도 0.533에 불과했다. 미니 슬럼프를 겪었던 6월에 비해 훨씬 좋은 성적이다.
헛스윙 비율이 조금 떨어진 것을 빼면 모자란 부분을 찾기 어려운 수준이다. 혹사 후유증이었다면 피안타율이나 피장타율이 눈에 띄게 늘어났어야 한다. 힘이 떨어져 난타를 당하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물론 장기인 땅볼 유도율이 10% 정도 빠진 점이 눈에 걸리기는 하다. 하지만 땅볼이 줄었다고 피안타나 피장타가 늘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특별한 문제점이라고 지적하긴 어렵다. KBO리그의 평균 땅볼 유도율인 40%~45%에 비해선 여전히 대단히 높은 땅볼 유도율을 보이고 있다.
부진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 갑자기 볼넷 비율이 늘어난 것이 눈에 들어왔다.
↑ ‘스포츠 데이터 에볼루션’ 제공 |
단순히 제구력이 흔들렸다고는 보기 어려웠다. 스트라이크 존 안쪽으로 공을 던지는 비율은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포츠 데이터 에볼루션 관계자는 “정우영이 특별히 존 바깥으로 공을 더 많이 던진 것은 아니었다. 9월 이후 정우영이 스트라이크 존 안쪽으로 보낸 투구의 비율은 약 41.8%로, 시즌 전체인 44.1%에 비해 크게 낮은 수치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밖에 없었다. 정우영이 스트라이크 존 바깥쪽으로 던지는 공에 타자들이 잘 속지 않았다는 점이다. 유인구에 속는 비율이 그만큼 떨어졌다는 뜻이 된다.
↑ ‘스포츠 데이터 에볼루션’ 제공 |
정우영이 던진 공에 대한 타자들의 스윙 로케이션 차트를 살펴보았다.
그러자 단초가 보이기 시작했다. 정우영이 던진 공이 스트라이크 존 바깥쪽으로 형성됐을 때 타자들이 스윙하는 빈도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5월에서 8월까지는 스트라이크 존 바깥쪽으로 던진 공에 타자들의 헛스윙이 많이 나왔다. 하지만 9월 이후로는 이 빈도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정우영의 유인구에 타자들이 더 이상 쉽게 속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일단 정우영의 투구 패턴이 상대에게 읽혔을 가능성이다. 사이드암 스로에다 많은 이닝을 던지지 않는 불펜 투수인 만큼 그동안은 패턴이 잘 읽히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정우영도 이제 2년차 후반부에 접어든 투수다. 낯섦만 가지고는 승부를 걸 수 없다.
유인구가 쉽게 간파당하다보니 승부를 서두를 수 밖에 없고 그렇게 서두른 승부는 안 좋은 결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혹사로 구위가 떨어져서가 아니라 정우영의 커맨드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스포츠 데이터 에볼루션 관계자는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간 성적, 좌우 스플릿, 득점권 등 여러가지 상황에서 뚜렷하게 유의미한 차이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투구 패턴이 읽혔다면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됐음을 의미한다. 정우영과 함꼐 LG 포수들이 풀어가야 할 과제다. 정우영이 문제를 파악하고 과감한 변신을 시도할 때 슬럼프 탈출의 시간은 좀 더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다.
정철우 MK스포츠 전문위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