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야에서건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은 경외의 대상이 된다. 쉽게 닿을 수 없는 무언가를 이룬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에겐 부러움 그 자체다.
삶이 얼마나 즐거울까 싶어서다. 특출나지 못한 세상의 90%들은 특출난 사람들의 삶을 동경한다. 뭐든 잘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다. 삶이 재미없는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은 재미있어 보이는 잘 하는 사람들의 삶이 궁금하고 부럽다.
LG 박용택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가장 많은 안타를 친 선수다. 이제 2500안타라는 이정표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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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 박용택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가장 많은 안타를 친 선수다. 이제 2500안타라는 이정표도 세웠다. 사진=김재현 기자 |
야구가 얼마나 재미있을까 싶다. 안타 치는게 너무 쉬워보이기까지 한다. 혹시 미리 은퇴를 선언한 것이 아쉽지는 않을까 괜한 걱정까지 해준다.
그러나 정작 최고의 자리에 올라 있는 박용택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개인 기록에 더 이상 미련을 두고 있지 않아서다. 그리고 그 자리까지 너무 힘들게 올라왔기에 뒤를 돌아보는 것이 두렵다고도 했다.
박용택은 “야구가 너무 힘들다.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 다시 태어난다면 야구는 보고 싶지도 않다. 다른 인생을 살며 다른 취미를 갖고 살고 싶다”고 했다.
예상과 전혀 다른 반응이다. 은퇴를 선언한 것도 전혀 후회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야구가 너무나 어려웠기 때문이다. 박용택은 소문난 연습벌레다. 자다가도 타격에 대한 생각이 들면 벌떡 일어나 몇 시간이고 스윙을 했다.
야구가 안 될땐 밤새 스윙을 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내일 당장 경기가 있었지만 그런 건 두 번째였다. 당장 눈 앞의 고민을 해결해야 잠들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잘 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수도 없이 배트를 휘둘러야 직성이 풀렸다. 그럼에도 아직 답을 다 찾지 못했다며 또 다시 훈련을 하고 있는 박용택이다.
루틴이라는 것을 지키기 위해 수 없이 많은 유혹들을 참고 넘겨야 했다. 가끔 나태해지고 싶기도 했지만 바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렇게 그의 온 몸은 야구를 잘 하기 위해 철저하게 망가졌다. 주사 치료를 받지 않으면 팔을 위로 들어올리는 것도 불가능한 상태까지 이르렀다. 혼자 티셔츠를 갈아입지 못할 정도가 됐다. 그가 “몸의 기능이 20% 정도도 안 남은 것 같다”고 얘기한 이유다.
그렇게 지겨운 야구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그만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얼마 남지는 않았지만 이미 개인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을 모두 경험한 그다. 내려놓고 즐기다 그만둘 수는 없는 것일까.
잠시 시간을 낸 박용택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팀 플레이어로서 마지막으로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가 그것이다.
박용택은 오로지 우승만을 생각하고 있다. 그 어떤 화려한 은퇴식도 한국시리즈 우승에 비할 바는 아니라고 했다.
마지막 시즌을 버티게 한 힘도 2500안타를 달성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승을 하고 싶어서였다. 그 가능성이 1%라도 보이면 그는 마지막 있는 힘을 다 쏟아낼 준비가 돼 있다.
그런 LG가 최근 위기를 맞고 있다. 선발 투수 윌슨이 팔꿈치 통증으로 빠졌고 라모스도 부상으로 엔트리서 제외됐다. 국내 선수들의 분발이 절실한 상황이다.
박용택은 오로지 후배들만 믿고 있다고 했다. “후배들이 우승을 위해 그 어느 해 보다 많은 땀을 흘렸다. 지금까지 정말 잘해왔다. 얼마 남지 않은 만큼 후배들만 믿고 끝까지 가볼 생각이다. 진심으로 우승을 바라고 노력했던 후배들의 땀을 믿는다. 우승만 할 수 있다면 내 몸은 어떻게 돼도 상관 없다. 내 자리도 어디든 상관 없다. 함께 우승하는 것 만이 지금 내게 남아 있는 마지막 꿈이다.”
박용택은 개인의 성취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선수다. 이제 그 기록 위에 마지막 영광을 더하려 하고 있다.
결코 혼자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더 절실하고 절박하다. 박용택은 “위기가 왔지만 우리 후배들을 믿고 있다. 잘 이겨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들 그만큼 열심히 준비해왔다. 잘 해야 하고 잘
다시 돌아 보고 싶지도 않을 만큼 질려버린 야구. 하지만 꿈이 남아 있기에 박용택은 오늘도 배트를 들고 타석에 들어서고 있다. 과연 하늘은 진심을 다한 박용택에게 마지막 선물을 허락할 것인가. 이제 그 결말까지 얼마 시간이 남지 않았다.
정철우 MK스포츠 전문위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