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밖이 위험하다고 하나, 집 안이라고 안전하기만 한 건 아니다. 우울감 증가를 뜻하는 '코로나 블루'를 넘어서 분노가 상승하는 '코로나 레드', 암담함이 급증하는 '코로나 블랙'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게다가 먹기만 하고 움직이지 않으니 확진자 대신 '확찐자'가 될까봐 걱정이다.
동네 한 바퀴라도 돌고 오는 인구가 부쩍 늘었다. 청계천 변만 나와도 마스크 쓴 안쪽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씩씩하게 걸으며 위안을 받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청계천 변을 걷다보니 푸릇푸릇하기만 하던 나뭇잎도 노란빛이 살짝 물들었다. 벌써, 가을이다. 상쾌한 숲 냄새가 그리워진다. 웬지 새처럼 느껴지지 않는 비둘기 말고 새다운 새를 보고 싶다.
그리 멀지 않지만 빌딩 숲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이 가까이 있다. 서울역 기준으로 1시간 10분 거리인 구리역 인근 동구릉이다. 경의중앙선 구리역에서 버스로 갈아 타 '우리나라최대왕릉군인동구릉' 정류소에서 내렸다. 무슨 정류소 이름이 이렇게 길까 싶어 다시 한번 마음 속으로 띄어쓰기 해보게 된다. 우리나라 최대 왕릉군인 동구릉. 이는 사실이다. 입구에 다다르자 새소리가 들린다. 발걸음을 재촉하게 된다.
◆ 태조 잠든 건원릉 있는 동구릉
동구릉은 궁궐 동쪽에 릉이 구(九)개라서 동구릉이다. 면적도 전체 능역이 약 200만 ㎡에 달하고 11월까지 개방하는 숲길 구간만 3,200m다. 규모도 큰 데다가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릉인 건원릉이 있어 '왕릉의 성지'로 불린다. 입구부터 9개 릉과 숲길, 양묘장, 연지를 둘러보면 2시간 가량 가벼운 산책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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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원릉 앞에 서면 두 개의 길이 보인다. 오른쪽은 왕이 다니는 길이고 왼쪽은 혼이 다니는 길이다. 동구릉관리소는 오른쪽으로 갈 것을 추천했다. |
왕릉탐방은 교육적이다. 조선 왕릉은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뛰어난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아이들과 함께와도 걷기에 무리가 없는 수준의 경사이며, 흥미진진한 역사 이야기 거리도 풍부하다. 왕릉 숲길 걷기는 건강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천연 치유제 피톤치드를 맘껏 마쉴 수 있다. 30분간 숲길 2km를 걷는 것만으로도 우울, 피로 등의 부정적 감정을 70% 이상 감소시키며 면역력 증진에도 효과가 있다고 국립산림과학원은 보고했다.
연인 혹은 친구와 같이 걷기에도 좋다. 말하지 않아도 새소리가 무드를 잡아준다. 최신영 동구릉관리소장은 "연중 언제든 데이트 코스로도 손색이 없다"고 귀띔했다. 왕과 왕비가 같이 묻힌 모습을 보면서 설득력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조선 왕릉 유일 삼연릉인 경릉을 볼땐 주의해야 한다. 현종과 원비 효현황수, 계비 효정황후 세 기의 봉분이 함께 모셔져 있다.
◆ '비밀의 숲' 단풍만개 11월은 첫 공개
조선왕릉 숲길을 올해 가을 처음으로 공개하는 건 아니다. 동구릉도 올 5월 16일부터 6월까지 개방했다. 이번에도 개방하는 왕복 1500m 휘릉~원릉구간과 편도 1400m 휘릉~원릉 구간이다. 이 두간을 지난 6일부터 11월까지 개방하는데, 11월 개방은 처음이다. 이달 중순부터 설악산을 시작으로 단풍 물결이 동남쪽으로 퍼지고 있다. 최신영 소장은 "직원들만 보기에 너무 아까워서 한시적으로라도 공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노랗고 붉게 물들어 절정에 이르고 낙엽이 떨어지는 10월말부터 11월초 운치가 절정이다. 11월 개방이 의미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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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구릉 숲길은 흙길을 정비해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개방 첫날은 이달 6일 햇살은 따사롭고 나무는 푸르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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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구릉 숲길에는 약간의 경사가 있지만 그리 고난도는 아니다. 쉬엄쉬엄 걷기 좋다. |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리를 적용했다. 2m 간격으로 떨어져 길은 우측통행을 유도하고 왕릉 안에서도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또한 산불 우려가 없도록 안내원을 배치해 관리하고 있다.
◆ 태조 이성계 건원릉 능침 공개도
조선의 건국자 이성계는 사후에 고향 땅 함흥에 묻히기를 원했으나 3대 임금 태종 이방원은 그 말을 따르지 않았다. 대신 고향에서 억새를 옮겨심었다는 사연이 전해진다. 그래서 왕릉 중 유일하게 가을이 짙어질수록 하얗게 물든다. 위에서 내려다 본 경관이 장관이다.눈이 부치게 빛나는 억새를 직접 보기는 어렵다. 왕릉은 원칙적으로 능침 이상으로 관람이 불가하다. 그래서 가까이서 볼 기회가 많지 않다. 10월 마지막 주 주말인 24~25일 에 건원릉 억새풀 체험 행사를 가진다. 사전신청으로 선발된 20명 이내 인원이 오후 2시와 4시 두 차례 해설사와 함께 오른다. 예년에는 40명까지 신청을 받았는데 코로나로 인해 인원을 반으로 줄였다.
능침을 넘어서 건원릉 위편에 서면 뻥 뚫린 경관이 펼쳐진다. 잠실에 있는 롯데월드타워 꼭대기 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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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원릉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이 장소에서 건원릉과 잠실 롯데월드타워까지 보이는 경관을 감상할수 있다. 나무 바로 옆이 기가 모이는 명당이라 한다. |
이외에도 동구릉에서는 10월 17일(토)과 18(일)에 저녁 7시 30분부터 1시간 동안 브랜드 공연 '채붕(彩棚)-백희대전'을 연다. 이 행사는 조선 후기 우인 광문의 기록을 바탕으로 오늘날 관객을 위해 새롭게 재창작한 연희극이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붕(棚)의 구조로 이루어진 가설 누각 형태의 무대를 구성하고, 가설 누각 채붕 위에 4인 1역으로 구성된 광문과 쌍사자 및 풍물, 줄타기, 솟대쟁이 등의 화려한 백희대전을 선보이는 프로그램이다. 사전예약제로 100명 미만이 참가할 수 있다.
같은 기간에는 동구릉의 9릉을 방문하여 각각의 스탬프 라운지에서 스탬프를 찍어 미션 완수 후 기념품을 수령하는 동구릉 스탬프 투어도 병행한다. 건원릉 억새풀 체험 행사 기간인 10월 24일(토)과 25일(일)도 스탬프 투어 기간이다. 하루 200명씩 도장을 다 찍은 관람객에게 기념품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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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가을 건원릉 억새가 하얗게 물든 모습이다. [사진 제공 = 동구릉관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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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에 가까워 지면 동구릉의 서어나무가 노랗게 묽든다. [사진 제공 = 이정근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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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원릉 주변 숲도 가을이 다가오면 알록달록하게 물든다. 10월말 11월초가 단풍감상에 좋은 시기다. [사진 제공 = 이정근 작가] |
▶ 동구릉 추천 코스(2시간 가량 소요)
매표소→ 수릉 → 현릉→ 건원릉→ 목릉 → 휘릉→ (휘릉~원릉 숲길)→ 원릉 → (양묘장 숲길) 경릉→ 혜릉→숭릉→연지
[권오균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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