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서울 잠실) 이상철 기자
“너무 아쉬워서 오늘은 축하받고 싶지가 않다.” KBO리그 최초로 2500안타 기록을 달성한 박용택(41·LG)의 쓴웃음을 지었다.
중요한 타석에 2500번째 안타를 쳐서 팀을 승리로 이끌고 싶었던 그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간절하게 기를 불어넣었으나 타석에 선 오지환과 이형종은 만루에서 고개를 숙였다. 끝내기 안타, 그 하나가 터지지 않았다.
LG는 6일 삼성과 홈경기에서 2-3으로 역전패를 하면서 67일 만에 5위로 추락했다. 치열한 순위 경쟁이 펼쳐지는 시기에 위가 아닌 아래로 향하는 LG다.
↑ 김용달 삼성 타격코치(왼쪽)가 6일 KBO리그 1호 2500안타를 달성한 박용택(오른쪽)과 뜨겁게 포옹하며 축하와 격려를 하고 있다. 사진(서울 잠실)=김재현 기자 |
3일 수원 kt전에서 2499번째 안타를 때린 박용택은 사흘 뒤 전인미답의 대기록을 작성했다. 고우석이 9회초에 1점 차 리드를 못 지키면서 박용택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류중일 감독은 2-2의 9회말 1사 1루에서 대타 박용택 카드를 꺼냈다.
박용택은 2B 카운트에서 이승현의 속구를 통타, 우익수 구자욱의 머리 위로 넘어가는 2루타를 날렸다. 2500안타를 달성한 순간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텅 빈 야구장에서 박용택은 두 팔을 들어 올리는 세리머니를 펼쳤다
박용택은 “우익수에게 잡힐 것 같기도 했는데 올해 친 내 타구 중 가장 속도가 빨랐던 것 같다. 그래서 우익수를 넘기는 타구가 됐다. 내가 꿈꾸던 ‘이기는 경기에서 중요한 타석에 친 안타’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회상했다.
박용택의 2500번째 안타로 LG는 1사 2, 3루 찬스를 얻었다. 정근우의 고의볼넷으로 만루가 됐다. 박용택은 “2루 주자로 있으면서 타자에게 ‘잘 칠 수 있다’고 기를 불어 넣었다. 이렇게 많이 기를 줬던 적이 없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끝내기 찬스를 놓친 LG는 연장 12회초에 이성규에게 결승 홈런을 맞고 1승이 아닌 1패를 추가했다.
KBO리그에서 박용택보다 많은 안타를 친 타자가 없다. 그가 안타를 칠 때마다 기록 경신이다. 2500안타는 상징성이 크다. 그렇지만 현역 마지막 시즌을 치르는 박용택은 기록 욕심이 없다. 2500안타도 마찬가지다.
박용택은 “솔직히 2500안타를 의식한 적은 없다. 주위에서 관련 질문을 정말 많이 하는데, 난 이미 리그 최다 안타 기록을 깨고 은퇴할 예정이다. 안타 2497개, 2498개, 2499개로 마쳐도 큰 차이가 없다”라고 말했다.
주변에서 더 기록을 의식했다. 박용택은 “이병규 타격코치님이 ‘여끼자기 왔는데 2500안타 기록까지 세워야 하지 않겠냐’면서 몇 개 남았다는 걸 계속 알려주셨다. 오늘 기록 달성으로 코치님께서 신경을 덜 쓰지 않겠나”라며 미소를 지었다.
LG와 삼성은 연장전에 돌입하기 전에 박용택의 2500안타 달성 기념행사를 가졌다. LG의 류중일 감독과 주장 김현수, 삼성의 허삼영 감독, 주장 박해민이 박용택을 축하해줬다.
↑ 박용택의 꿈은 2500안타가 아니다. 그는 최다 경기 출전 기록을 경신한 뒤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에 도전한다. 사진(서울 잠실)=김재현 기자 |
박용택과 김 코치는 특별한 인연이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사제의 정을 나눴다. 지금의 박용택이 있기까지 김 코치의 지도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은사’다. 박용택은 “20대 시절 많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그러다 3년간 많은 걸 고치려고 하시던 김 코치님과 자주 부딪히디도 했다. 그렇지만 나만의 타격을 정립할 수 있던 시기였다”며 “코치님은 (여러 지도자 중에서) 가장 먼저 기억나는 지도자다”라고 밝혔다.
김 코치가 박용택에게 꽃다발을 주고 함께 기뻐하던 장면도 ‘준비된 그림’이었다. 박용택은 “경기 전에 김 코치님을 만나 ‘오늘 2500안타를 치면 코치님께 직접 꽃다발을 받고 싶다’라고 정중하게 요청했다. 코치님도 흔쾌히 수락해주셨다”라고 일화를 소개했다.
기록의 사나이는 기록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달성하고 싶은 기록이 있다. 바로 최다 출전 신기록이다.
2222경기를 뛴 박용택은 정성훈의 2223경기 기록에 1경기 차로 따라붙었다. 앞으로 2경기만 더 출전하면,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다. LG는 17경기를 남겨놓고 있어 박용택의 최다 경기 출전 기록 경신은 초읽기 수준이다.
그는 “(이미 최다 안타 기록을 경신한 만큼) 안타보다 최다 경기 출전이 더 의미가 클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박용택이 이루고 싶은 꿈은 한 가지 더 있다. 우승의 한을 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LG는 2위에서 5위로 추락했다. 순위가 높을수록 정상을 밟을 확률이 높아진다. 선두 NC와
그는 “중요한 17경기가 남았다. 이렇게 5~6개 팀이 엮여서 조금만 잘하거나 못해도 위아래로 갈 수 있던 적이 없었다. 후배들이 긴장감을 즐겁게 받아들이면서 마지막까지 힘냈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rok1954@maekyung.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