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안준철 기자
이정후(22·키움 히어로즈)도 사람이었다. 9월초 이정후는 극심한 타격 부진에 빠졌다. 항상 타석에서 자신감이 넘쳤던 눈빛은 흐려졌다.
9월 첫 9경기에서 이정후는 34타수 5안타 타율 0.147에 그쳤다. 이정후 스스로도 “프로 데뷔 이후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고 할 정도로 타격 침체가 길게 이어졌다.
하지만 천재는 천재였다. 이정후는 스스로 슬럼프를 딛고 일어섰다. 9월 10번째 경기였던 지난 11일 잠실 LG트윈스전에서 3안타를 터트리며, 부진 탈출을 알렸다. 이후 12일 고척 두산 베어스전에서 멀티히트, 13일 두산전에서도 3안타를 때렸다. 1할대에 허덕였던 9월 타율도 0.330으로 치솟았다. 키움도 이정후가 살아난 3경기에서 2승 1무를 기록했다.
↑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대표팀에서 함께한 이정후(왼쪽)와 아버지 이종범 코치(오른쪽). 사진=MK스포츠 DB |
특히 아버지 이종범 주니치 드래건스 코치의 무게감이 이정후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11일 LG전에서 3안타를 때린 뒤 이정후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 때문에 저 자신에게 가혹했다. 아버지 때문에더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프로에 온 뒤에는 그런 생각을 안 했는데, 최근에 돌아보니 다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정후는 프로야구에서 성공한 야구인 2세의 대표적 인물이다. 아버지 이종범 코치는 프로야구를 수놓은 레전드 중 한 명이다.
오히려 이정후는 이종범 코치를 뛰어넘었다는 평을 받았다. 이정후는 데뷔시즌인 2017시즌 전경기(144경기)에 출전해 타율 0.324로 신인왕을 받으며 프로야구를 강타했고, 이후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했다. 아버지의 별명이었던 ‘바람의 아들’을 잇듯 ‘바람의 손자’라는 별명도 얻었다.
물론 아버지란 존재가 2세 스포츠인에게 부담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아버지와의 비교, 아버지의 명성에 흠집을 내면 안된다는 생각 같은 것들이 그렇다. 2세들이 겪는 숙명일지 모른다. 그리고 전혀 이런 부담과 관련 없어 보였던 이정후도 아버지의 무게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이정후에겐 결국 도움이 됐다. 부진 탈출 하루 뒤, 이정후에게 혹시 아버지의 조언은 없었냐고 물었다. 이정후는 “아버지와 메신저로 대화를 나눴다. 아버지께서 ‘프로선수니깐 잘 이겨내야 한다. 금방 풀릴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셨다”고 소개했다. 이어 “아버지가 ‘지금의 경험들이 앞으로 너를 더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되풀이되지 않도록 지금의 경험들을 잘 기억해라. 넌 아직 어리다. 사회에서는 대학교 4학년 나이다. 어떻게 보면 내년이 성인야구를 하는 시기이다. 그만큼 어리다. 잘 이겨낼 수 있다’고 하셨다”고 전했다.
↑ 키움 히어로즈 이정후가 타격훈련 차례를 기다리면서 야구공을 배트로 가볍게 튕기고 있다. 사진=MK스포츠 DB |
아버지란 존재의 무게감, 그리고 아버지의 조언에 한 층 더 성장한 이정후다. 이정후는 그렇게 더 단단해져 가고 있다. jcan1231@maekyung.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