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스포츠 김대호 기자
두산 베어스 우완투수 이영하(23)가 선발에서 마무리로 전환했다. 오랜만에 등장한 우완 정통파 투수라 기대가 컸는데 갑자기 마무리 투수로 돌아선다는 소식에 실망이 컸다. 마무리 투수를 가볍게 보는 건 아니지만 역할이나 중요도로 볼 때 야구에서 선발투수의 비중은 크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이영하 스스로 마무리 투수로 바꿔줄 것을 원했다고 하니 더욱 안타깝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메이저리그에도 전문 마무리 투수의 개념이 없었다. 선발투수가 한 경기를 책임지는 것이 1차 목표였다. 메이저리그에서도 불펜투수가 2~3이닝을 던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 ‘1이닝 전문 마무리’가 처음 등장한 것이 1988년이다. 오클랜드 A’s 토니 라 루사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데니스 에커슬리가 메이저리그 최초의 전문 마무리투수다. 당시 미국의 야구 평론가나 팬들은 “다 이긴 경기를 한 이닝 반짝 던지고 연봉을 받아 가냐”고 비아냥 거릴 정도로 마무리 투수를 폄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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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무리로 전환한 두산 이영하가 하루빨리 컨디션을 추스려 선발로 컴백하기 기대한다. 사진=MK스포츠 DB |
갈수록 불펜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 현대 야구이지만 그렇다고 선발투수의 무게에 비할 순 없다. 가장 단적으로 선발과 마무리를 비교할 수 있는 게 선발투수는 그 경기의 승패를 좌우하지만 마무리투수는 승리를 지킬 뿐이다. 선발투수가 무너지면 경기를 내줄 뿐 아니라 불펜의 플랜 전체를 다시 짜야 한다.
선발투수는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도 험난하다. KBO리그에선 용병 2명이 사실상 선발 두 자리를 꿰찬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세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이영하는 입단 첫 해부터 재능을 인정받아 2년차부터 선발 자리를 차지했다. 아무한테나 찾아오는 기회가 아니다. 야구인들이나 팬들은 이영하가 두산은 물론 한국을 대표하는 우완 선발투수로 승승장구하기 바랐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이영하에게 변함없는 믿음을 보냈다. 올시즌 예상치 못한 부진을 보여도 선발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고 기회를 줬다. 이영하가 선발을 반납한 것은 나름 팀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으리라 추측된다. 하지만 이영하가 진정 팀을 생각하고 김태형 감독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 이 고비를 넘기고 진정한 에이스로 거듭 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 프로야구는 우완 선발투수에 목말랐다. 2000년대 들어 박명환(두산) 손민한(롯데) 배영수(삼성) 윤석민(KIA) 등이 있었지만 한두 군데 부족한 구석이 있어 팬들의 구미를 100% 당기진 못했다. 다르빗슈 유(시카고 컵스) 다나카 마사히로(뉴욕 양키스)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 등 발군의 우완 정통파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일본과 비교하면 더욱 초라해 보였다.
김태형 감독은 “이영하가 빨리 선발투수로 돌아오길 바란다”고 했다. 이게 어디 김 감독 마음 뿐이겠는가. 우리는 지난 해 프리미어12에서 보여준 이영하의 모습을 기억한다. 비록 올해 투구 밸런스가 흐트러지면서 심한 슬럼프를 겪고 있지만 이영하가 가야할 길은 선발투수다. 이제 만 23세의 젊은 투수다. 시행착오는 누구나 겪는다.
선발에서 마무리로 전환하는 건 상대적으로 쉽다. 짧은 이닝을 집중해서 던지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덜 받는다고 한다. 선발투수는 잘 던지다가 한 번에 무너지기도 한다. 최소 5이닝 이상을 던져야 한다는 책임감도 무겁다. 무엇보다 한 번 마무리에 길들여지면 다시 선발로 돌아가기 쉽지 않
선발투수만이 최고의 가치는 아니지만 이영하가 한국 프로야구의 보석 같은 존재가 되길 바란다. 잠시 마무리 외도를 마치고 한국 프로야구의 끊어진 선발투수 계보를 잇기 바란다. ‘우리도 이런 선발투수가 있다’는 자부심을 이영하가 갖게 해줬으면 좋겠다. MK스포츠 편집국장 dhkim@maekyung.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