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인천) 안준철 기자
클린베이스볼로 가는 길은 험난한 것 같다. 아니 정운찬 총재 체제의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내세우고 있는 클린베이스볼은 껍데기만 남았다.
KBO 30일 서울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상벌위원회를 열고 SK와이번스 2군 선수단의 음주 및 무면허 운전, 선후배 폭행 사건, 미신고 은폐 의혹과 관련해 심의했다.
후배에게 경기 외적인 폭력 행위를 한 김택형(24)과 신동민(24)은 30경기 출전 정지와 제재금 500만 원, 얼차려 등을 지시한 정영일(32)은 10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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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운찬 KBO 총재는 취임 후 클린베이스볼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강조만 했는지는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진=MK스포츠 DB |
특히 폭행의 피해자이지만, 원인 제공을 한 서상준(20)과 최재성(20)에 대한 징계는 ‘봐주기’나 마찬가지였다. 구단 자체 조사에서도 밝혀진 사실이지만 둘은 숙소에서 외출 후 복귀 지각이 잦았고, 심지어 미복귀, 무단 외출도 있었다. 더구나 음주 후 숙소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경찰에 적발되진 않았지만, 음주운전(서상준)과 무면허 운전(최재성)이 있었다. 이들은 30경기 출장 정지와 제재금 200만 원, 사회봉사활동 40시간이 부과됐다. 동료의 음주와 무면허 운전을 방조한 전의산(30)에게는 15경기 출장 정지의 제재를 부과했다.
솜방망이 처벌이다. “왜 원인제공을 한 이들이 더 경미한 처벌을 받냐”는 얘기가 나올만하다. KBO는 경찰에 적발되지 않아 증거가 없다는 점, 즉 형사 입건되지 않은 점이라는 것을 감안했다. 다만 이런 식이면 ‘일탈은 하되, 걸리지만 말아라’라는 논리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특히 구단이 자체적으로 제재금을 부과하고 3주간 템플스테이에 참가토록 하는 자체 징계를 내렸다고 하지만, 이에 대한 KBO 보고의무를 저버렸다는 건 사안에 대한 심각성을 너무 안일하게 치부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구단 내 사건·사고에 대한 은폐 시도로 보는 게 더 정확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도 KBO는 제재금 2000만 원으로 끝냈다. 부정행위에 구단 임직원이 개입하거나 구단이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경우 징계는 무겁다. KBO규약 제150조에 따르면 경고 및 1억 원 이상의 제제금 부과라고 명시돼 있다. 1억 원의 5분의 1 수준이다. KBO 역대 제재금 최고액 기록을 갈아치울 수도 있었다. 현재까지는 5000만 원이다. 물론 KBO는 봐줬다. SK의 은폐를 은폐라고 보지 않은 것이다. SK에서 주장하는대로 ‘판단 미스’라는 점을 받아준 셈이다.
어쨌든 KBO가 그렇게 강조하는 클린베이스볼에 역행하는 징계임은 분명하다. 이번 징계로 KBO는 또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난에 직면했다. 일각에서는 상벌위원회 무용론이 나온다. 한 야구팬은 “팬들의 눈높이에 벗어나는 상벌위원회가 도대체 왜 있냐”고 비난하기도 했다.
2000만 원으로 사상 초유의 막장 관리를 막은 SK는 한숨을 돌리는 모양새다. 이날 인천 홈에서 열린 LG트윈스전에서 박경완 감독대행이 고개를 숙였고, SK는 상벌위원회 결과가 나온 뒤 류준열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다만 SK의 사과 방식은 너무 뻔뻔했다. 사실 이날 상벌위원회 전까지도 SK는 당사자들을 철저히 감췄다. KBO 징계가 나오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원인 제공을 한 선수들의 공개 사과 정도 기대했던 야구팬들은 다시 실망스럽다는 반응이다. 잘못한 선수들을 구단이 꽁꽁 감추고, 감싸는 모양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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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상준(왼쪽)과 최재성(오른쪽)은 각각 음주운전과 무면허 운전을 한 것으로 조사돼 KBO 징계를 받았다. 사진=SK와이번스 홈페이지 |
결국 클린베이스볼은 ‘빛 좋은 개살구’였다. 정운찬 총재가 부임하면서 우선순위로 강조했던 게 클린베이스볼이지만, 도돌이표라는 지적이 나온다. 껍데기만 남은 클
이럴 거면 아예 ‘깨끗해지자’라는 얘기도 할 필요 없고, 강조할 이유도 없다. 껍데기만 남은 클린베이스볼은 위선이기 때문이다. 특정 구단의 은폐행위를 봐준 KBO, 그리고 문제 선수들을 끝까지 감싸고 도는 SK, 모두 곱씹어야 할 문제다. jcan1231@maekyung.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