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진영 |
AP와 골프월드에서 골프 전문기자로 활약하다 지금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홈페이지에 글을 기고하는 론 시라크 기자는 25일(한국시간) 이정은6가 작년 신인왕을 수상하면서 한 영어 연설에 대해 진한 애정과 감동을 드러냈다. 시라크 기자가 이 글을 쓴 이유는 원래 지금쯤 US여자오픈이 열려야 하지만 코로나 19 탓에 12월로 연기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LPGA 뿐 아니라 미국 언론들은 한국여자골퍼들의 재능과 성적 뿐 아니라 이제는 인성과 내면적인 면에도 주목하기 시작한 듯하다.
시라크 기자가 쓴 LPGA 홈페이지 메인기사는 글쓴이의 애정 어린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제목부터 '이젠 특이한 이름보다 마음씨로 더 알려진 이정은6(Jeongeun Lee6 Now Known For her Heart Than her curious Name)'다.
"지난 해 5월 28일 이정은6는 23살이 됐다"로 시작되는 글은 "언어가 어떻든 그는 이제 스타다"로 끝을 맺는다. 시라크 기자는 "작년 이정은6의 이름 중 숫자 '6'이 처음에는 '오자'가 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무명이었지만 23살 생일 후 불과 일주일 만에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면서 대스타가 됐다"고 썼다. 무엇보다 시라크 기자는 어릴 적 이정은6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다리를 못쓰게 된 사연과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이정은6의 마음을 높이 평가했다.
↑ 이정은 |
이정은6는 US여자오픈 우승 때 "영어로 말할 수 없어 미안하다. 영어를 공부하고 있고, 다음 우승 때는 영어로 말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까지만 영어로 말한 뒤 통역을 통해 우승 소감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그 6개월 뒤 이정은6는 영어로 신인상 수상 소감을 밝혔고 이에 대해 시라크 기자는 그의 말은 흠잡을 데 없는 그의 스윙처럼 부드럽게 흘러 나왔다고 표현했다.
시라크 기자는 "순수한 감성과 완벽한 영어의 2분19초 짜리 연설이었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수상 연설은 길지 않다. 부모님과 떨어져야 하고, 영어도 못하고, 혼자해야 하는 생활이 무척 두려웠지만 곧바로 친구와 가족들의 도움으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결국 꿈을 이룰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최고 선수들이 모이는 LPGA투어에 참여할 수 있어 영광이고 모든 이들에게 감사한다"는 말로 끝맺은 연설은 당시 기립 박수를 끌어 냈고 이정은6도 눈물을 쏟아 냈다.
시라크 기자는 "코로나 19 영향으로 US여자오픈은 12월로 연기됐지만 만일 나중에 타이틀 방어에 성공한다면 이정은6가 영어로 우승 소감을 하는 것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정은6에 앞서 세계 1위 고진영이 직접 자신의 경험담을 쓴 1인칭 스토리 '내 할아버지의 딸(My Grandfather's Daughter)'도 전 세계 골프팬에게 진한 감동을 안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알츠하이머병과 맞서 싸우며 만년을 보내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애정을 드러낸 고진영의 글은 어느 전문 수필가의 글 못지 않게 솜씨가 뛰어났다.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의 기억이라도 더 지키기 위해 힘겹게 싸우는 모습을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 채 옆에서 지켜보는 일은 고통스럽다"로 시작된 글은 "나는 모든 팬들이 스코어보드의 숫자나 진열장의 트로피보다 '인간 고진영'을 더 많이 봐주길 바란다. 나는 누군가의 친구이자 딸이며 손녀 그리고 골퍼다. 만일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봐 준다면 내 인생과 선수로서의 삶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고 끝을 맺는다.
"잔인한 도둑이 매일매일 조금씩 할아버지의 기억을 빼앗는 일은 슬프고 지켜 보기 힘들었지만, 병마에 맞서 싸우는 할아버지의 용기와 위엄을 보며 오히려 큰 영감을 받기도 했다"는 표현에서는 정말 고진영의 흠 없는 샷처럼 글 솜씨 또한 뛰어나다는 인상을 받게 한다.
2015
[오태식 스포츠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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