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서울 논현) 안준철 기자
프로농구의 한시대를 풍미했던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의 간판 가드 양동근(39)은 눈가를 훔쳤다. 17년 간의 현역 생활을 마무리 하는 순간, 양동근 눈물을 훔치면서도 “꿈만 같았던 시간”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1일 서울 논현동 KBL센터에서는 양동근의 은퇴 기자회견이 열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2019-20시즌이 조기 종료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프로농구는 리빙 레전드를 떠나 보내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날 은퇴 기자회견에는 박병훈 현대모비스 단장을 비롯해 유재학 현대모비스 감독, 함지훈(현대모비스), 조성민(LG) 등도 참석해 꽃다발을 전달했다.
양동근은 2000년대 이후 프로농구의 아이콘이다. 프로에 데뷔한 첫 시즌(2004-05)에 신인상과 수비5걸상을 받으며 전설의 역사를 시작했다. 14시즌 동안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 4회, 챔피언결정전 MVP를 3회 수상했고 시즌 베스트5에만 9차례 들었다. 그가 현대모비스에 있으면서 얻은 챔피언반지는 국내 프로선수 중 최다인 6개다. 지난 2월27일 기준 통산 664경기에 나서 7864 득점과 3336 도움, 979 스틸과 1910 리바운드를 기록했다.
↑ 1일 오후 서울 신사동 KBL 센터에서 울산 모비스의 양동근이 은퇴를 선언하고 기자회견을 가졌다. 양동근이 은퇴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서울 논현)=천정환 기자 |
태극마크를 달고도 양동근은 역사를 썼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유재학 감독이 이끈 남자농구대표팀은 아시아 최강 이란에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결승전에서 4쿼터 종료 2분여를 남기고 5점차로 끌려가던 상황에서, 양동근은 결정적 외곽포와 절묘한 오시스트로 승리까지 이끌었다.
다음은 양동근과 일문일답.
-프로 데뷔 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첫 번째는 통합우승이다. 그리고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다. 굳이 꼽자면 그렇다. 은퇴를 하게 되니 다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된다. 모든 순간이 소중했다.
-유재학 감독 없는 양동근은 생각할 수 없다. 유재학 감독은 양동근에게 어떤 존재인가?
▲굉장히 냉정하신 분이라는 생각을 어렸을 때 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냉정함보다는 정이 많으신 분이라는 건 알게 됐다. 준비가 철저하신 분이라는 건 여러분들 다 아실꺼다. 미팅을 하면 꼭 우리가 준비를 못한 부분을 물어보신다. 선수라서 그런지 안 보이는 부분이 있다. 그 부분을 다시 잡아주신다. 그러면 ‘아 이런 부분을 감독님이 말씀하셨구나’라고 깨닫게 된다. 많이 배우고 있고, 지금도 배우고 있다. 제가 이 자리에 있기까지 만들어 주신 분이다.
-꿈꿨던 은퇴는 아닐거 같다. 이런 결정을 언제 한건지?
▲은퇴는 FA가 될 때부터 해 왔던 것이다. 작년에 은퇴를 했어도, 제 결정이라 그렇게 나쁜 결정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은 안 한다. 항상 말씀드린 대로 다른팀 가드들이나, 우리팀 선수들하고 경쟁해서 자리를 차지하고, 경기를 뛰는 거다. 내가 해왔던 걸로 뛰면 안된다. 지금은 저도 힘이 들고, 적응력 떨어질 거라 생각해서 은퇴. 특별하게 큰 의미를 둔 건 아니다.
-아들이 무득점을 해도 잘했다고 하는데, 자녀들한테 자랑하고픈 경기가 있다면?
“제 아들이 더 잘 알텐데, 저보다 더 많은 농구경기를 본다. 제가 모르는 걸 알려주기도 한다. 무득점을 해도 자랑스럽다는데 모든 경기가 다 자랑스럽지 않았을까.
↑ 1일 오후 서울 신사동 KBL 센터에서 울산 모비스의 양동근이 은퇴를 선언하고 기자회견을 가졌다. 양동근 유재학 감독과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사진(서울 논현)=천정환 기자 |
▲집에서도 은퇴 얘기를 밥먹듯이 해서 알고 있었을 듯하다. 제 결정을 존중해줬다. 은퇴는 그동안 준비해왔기에, 당황스러워하진 않았을 것이다. 다만 이렇게 은퇴할 줄을 몰랐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경기를 더 뛸 수 있다면, 누구랑 하고 싶나?
▲학창 시절 때 선수들이랑 다시 뛰어보는 게 가장 재밌을 것 같다. 고등학교 때는 좋은 선수들이 많아서 제가 뛰질 못했다.
음, 김도수(고양 오리온 코치)는 빼놓고 싶지 않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농구를 같이 시작했다. 도수가 저 때문에 시작했고, 같은 반이었다. 대학교 후배인 조성민도 넣겠다. 이 자리에 와서 말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크리스 윌리엄스도 있다. (함)지훈이는 너무 많이 해서 빼겠다. (이)종현이는 부상 때문에 시간이 많이 필요해서 같이 하고 싶다.
-반대로, 데뷔 후 맞대결 한 상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 너무 많다. 신인 때 했던 형님들, 가드 형님들은 다 생각난다. 스타일이 워낙 달라서 비디오를 워낙 많이 봐도 못 막을 정도였다. 까다로운 선수를 한 명 뽑는 건 힘들다. 너무나 다른 스타일이라 그래서 저도 많이 늘었다.
-지도자 계획이 있다. 어떤 과정 어떤 지도자를 꿈꾸나?
▲구체적으로 잡힌 게 없다. 코로나19 때문에 힘든 상황이라서 결정된 건 없다. 제가 배워왔던 건 감독님이 선수들을 어떻게 지도하고, 어떻게 이해시키는지다. 지금도 배우고 있다. 더 배울 게 많다. 더 많이 배워서 저만의 색깔을 찾을 수 있는 지도자가 돼야 한다.
-양동근이 역대 최고다라는 말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제가 최고라는 얘길 한번도 한적 없다. 그런 기사들 보면 (팬들이) 욕을 많이 하신다. 속상하다. 선수들이 뭘 하던 덜 미워해주셨으면 좋겠다. 최고라고 생각안하고 남들보다 한 발 더 뛴 거 밖에 없다.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지?
▲팬들에겐 ‘믿음이 가는 선수, 이기든 지든 1경기라도 더 뛰고 싶은 선수, 열심히 뛰었던 선수’라는 기억으로 남고 싶다. 선수들에겐 ‘양동근과 뛰었을 때가 좋았구나’라는 생각만 하게 되면 성공한 선수 인생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등번호 6번이 영구결번된다. 어떻게 정한건가?
▲신인 때 3번하고 6번이 남아서 고민하고 있는데, 감독님이 6번을 하라고 하셨다. 나중에 감독님이 농구하신 걸 화면으로 봤는데, 6번을 달고 하셨다. 겉으로 말씀 안하셨지만, 내게 6번을 주셨구나 생각 많이 했다.
-은퇴 투어, 꿈꾸지 않았나?
▲올해까지만 하고 관두겠다 생각했는데, 저는 그렇게까지 받아야 할 선수는 아니다. 정해 놓고 뛰면 동기부여
-절친 이범호(필라델피아 필리스 코치 연수 중)의 은퇴식에 직접 참석했다. 이번에 따로 연락 없었나?
▲연락 못했다. 시차도 안 맞고, 거기도 지금 코로나19 때문에, 애들 등교도 못하고 있다더라. 연락할 상황이 아니었다. jcan1231@maekyung.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