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안준철 기자
2019년 한국 스포츠는 다사다난했다. 영광과 좌절, 환희와 아쉬움, 비상과 추락이 극명하게 갈린 한 해이기도 했다.
2019년 스포츠계에 닥친 여러 사건·사고에는 중심에 섰던 인물들이 있다. 이제 저물어 가는 2019년에 사건·사건의 중심에 섰던 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2020년에도 영광을 이어가기 위해, 또는 좌절을 딛기 위해, 비상을 위해, 아쉬움을 남기지 않기 위해 각자 살고 있을 것이다. 화제의 인물들을 되돌아보고, 그 후를 조명해봤다. <편집자 주>
2019년 야구계에는 허민(43)이라는 이름이 다시 등장했다. 메인스폰서를 넥센타이어에서 키움증권으로 교체한 히어로즈 구단의 이사회 의장으로 나타났다. 야구단을 사적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던 이장석 전 대표가 감옥살이를 하게 되면서 허민 원더홀딩스 대표가 히어로즈 이사회 의장에 선임됐다.
↑ 2013년 양준혁재단이 주최한 자선야구 대회에서 마운드에 올라 공을 던지는 허민 키움 히어로즈 이사회 의장. 사진=MK스포츠 DB |
허민 의장은 2011년 국내 최초 독립야구단인 고양 원더스를 창단해 화제를 모았다. 구단에서 쫓겨나거나, 선택받지 못한 선수들에게는 원더스가 마지막 희망이었다. 당시 SK와이번스에서 경질된 김성근 감독을 사령탑으로 선임하며 큰 관심을 모았다. 비주류 선수들은 원더스를 마지막 기회로 여기고, 프로구단을 노크했고, 프로행에 성공한 선수들이 더러 나왔다. 하지만 2014년을 마지막으로 고양 원더스는 해체했다.
이후 4년 여 만에 허민 의장은 야구계에 등장했다. 그는 히어로즈 구단을 인수하려 했다. 하지만 히어로즈 대주주인 이장석 전 대표가 거부했다. 대신 사외이사 자격으로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의장을 맡고 나서, 구단 정상화보다는 그의 기행(奇行)이 화제가 됐다. 2월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는 자체 청백전에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타자를 상대했다. 서울대 야구부 출신이긴 하지만 허 의장은 정식야구 선수는 아니었다. 다만 야구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미국으로 건너가 너클볼을 배우고, 미국 독립구단에 몸담기도 했다. 이런 경력을 앞세워 마운드에 올라 리그 정상급 타자들에게 자신의 너클볼을 던졌다. 구단 내부에서도 “도가 지나치다”는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급기야 지난 6월에는 히어로즈 2군 구장인 고양구장에서 2군 타자들을 세워놓고 라이브 피칭을 시도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2군 선수들은 일과시간이 끝났지만, ‘이사회 의장님’과 캐치볼을 하고 ‘이사회 의장님’이 던진 너클볼을 타석에서 지켜봐야 했다. 히어로즈 구단은 “선수들도 즐겁게 했다”는 변명을 내놨지만, 궁색하다는 소리만 들어야 했고, 허민 의장은 야구단을 개인 놀이터로 만든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굳혀졌다.
2019시즌이 끝난 시점에서 히어로즈는 다시 야구계의 폭탄이 됐다. 이장석 전 대표의 측근으로 알려진 박준상 전 대표이사가 이 전 대표의 옥중경영에 연루됐다는 의혹으로 사퇴했다. 그리고 신임 대표이사에 하송 부사장이 선임됐다.
하송 부사장은 구단 감사위원장을 맡았던 이다. 무엇보다 허민 의장은 최측근이다. 고양 원더스 시절에는 단장을 맡았다. 하송 대표는 감사위원장을 맡는 동안 이 전 대표의 옥중경영을 알고도 묵인했다는 의혹이 있었다. 이를 구단 경영권 장악에 이용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박준상 전 대표이사의 사퇴, 임은주 부사장의 직무정지, 장정석 전 감독이 재계약 불발 등 히어로즈는 다시 시끄러워졌다. 허 의장 측이 장악한 히어로즈 구단은 모두 이장석 전 대표의 옥중경영과 관련 있다고 주장하지만, 말이 엇갈리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