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잠실) 이상철 기자
LG가 KBO리그 단독 3위에 오른 1일, 승장 류중일 감독과 승리투수 타일러 윌슨은 시즌 4번째 경기를 뛴 포수의 리드에 엄지를 들었다.
승리 하이파이브 후 더그아웃 벤치에 앉은 그의 얼굴은 땀범벅이었다. 인터뷰 요청에 그는 정중하게 “앉아서 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경기를 책임진 적이 언제였을까. 오랜만이었다. 서른여덟 살 포수는 모든 걸 쏟아냈다.
LG는 지난 1월 자유계약선수 이성우 영입을 발표했다. 선수로 더 뛰고 싶던 그의 역할은 백업 포수였다. LG에는 유강남, 정상호가 버티고 있다. ‘만에 하나’를 위한 포수 보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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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우는 한 가지 바람을 이뤘다. 두 아들에게 아빠가 야구선수로 뛰는 걸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TV가 아니라 야구장에서 보여주고 싶은 마지막 바람이 있다. 사진=김재현 기자 |
2군에 있던 이성우에게 기회가 찾아온 건 지난 5월 28일이었다. 정상호가 가벼운 어깨 통증으로 빠졌다.
기회는 자주 주어지는 편이다. 1군 엔트리 등록 후 벌어진 5경기 중 4경기를 뛰었다. 선발 출전이 두 번이었다. 특히 1일 잠실 LG전에서 윌슨과 최고의 호흡을 맞추며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사실 주먹구구에 가까웠다. 이성우는 윌슨의 공을 경기 직전 처음 받았다. 그렇지만 풍부한 경험과 유연한 대응으로 투수를 편하게 해줬다.
이성우는 “나 때문이 아니라 원래 LG 투수들이 잘한 거다. 지금도 좋은 흐름을 타고 있다”라며 “경기 전 불펜에서 포구한 게 전부였다. 그동안 (유)강남이랑 짝을 이뤄 난 잘 몰랐다. 그러나 이닝을 마칠 때마다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윌슨이 하던 대로, 그리고 원하는 대로 해줬을 뿐이다”라고 겸손하게 밝혔다.
윌슨의 공은 변화가 심하다. 포수 입장에서도 포구하기가 쉽지 않다. 이성우는 “SK 시절 상대했을 때 좋은 투수라고 느꼈다. 오늘 포수로 호흡을 맞췄는데 ‘이래서 윌슨, 윌슨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포수 입장에서 진짜 편하게 해주는 투수다”라고 말했다.
이성우의 피나는 노력도 있다. 그는 “언제가 내 마지막 경기가 될지 모른다. 난 내일이 없다. 오늘만 사는 남자다”라고 강조한 뒤 “몇 번이나 공을 빠트리는가 싶었다. 연승 중인데 백업포수의 결정적인 실수로 그르칠 수 있다. 짧은 순간마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정말 긴장하고 집중했다”라고 전했다.
류 감독은 이성우의 활약에 흐뭇해했다. 포수 옵션이 많아진다는 건 팀 입장에서 긍정적인 요소다. 다만 이성우는 스스로 자신이 활동할 수 있는 기한이 제한적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정상호가 이탈하는 기간은 열흘이다. 곧 1군에 복귀할 예정이다.
이성우는 “LG에 입단했을 때도 유강남, 정상호의 빈자리가 생겼을 때 메우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정)상호가 나보다 위라는 부정하지 않는다. 상호가 돌아올 때까지 버티자는 마음가짐이다. 타격도 잘하고 싶지만 수비라도 빈틈없이 해 보탬이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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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수 이성우(왼쪽)가 1일 KBO리그 잠실 NC전에서 LG의 5-1 승리를 이끈 후 투수 정우영(오른쪽)과 기뻐하고 있다. 이성우 합류 후 LG는 4승 1패를 기록하고 있다. 사진=김재현 기자 |
이성우는 “오랜만에 1군 무대를 다시 밟게 되니까 가슴이 뛰더라. 2군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더 야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내가 간절한 것 같다”라며 웃었다.
오늘만 사는 이성우에게도 그리고 싶은 내일이 한 가지 있다. 가족에게 ‘야구선수 이성우’를 최대한 보여주는 것이다.
이성우는 “아들이 둘 있다. 큰 애는 다섯 살, 작은 애는 19개월이다. 첫째는 아빠가 야구선수라는 걸 알지만 둘째는 잘 모른다. 2군에 있을 때 아내와 영상통화를 했다. 애들이 TV로 야구 경기를 보는데 왜 아빠가 안 나오냐고 하더라. 마음이 아팠다. 그때 ‘한 번은 1군에 올라가 아이들에게 마지막일지 모를 아빠의 경기를 보여주자’는 꿈이 생겼다”라고 밝혔다.
이성우의 가족은 광주광역시에 거주하고 있다. 2년 전 트레이드로 광주를 떠났으나 그의 앞날이 불확실해 동행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성우는 뿌듯하다. 최근에는 아빠가 야구선수라는 걸 보여주고 있다. 활약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TV를 틀면, 많든 적든 아빠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는 이성우의 두 아들이다.
마지막 바람은 온 가족이 잠실구장을 방문한 가운데 아빠, 남편, 아들, 사위가 뛰는
이성우는 “가족이 한 번도 잠실구장을 간 적이 없다. 내가 언제까지 1군에 있을지 모르겠지만 온 가족을 초청하려고 한다. 잘하든 못하든 선발이든 교체든 그저 경기 출전만으로도 다들 좋아한다. 그게 지금 내 마지막 바람이다”라고 말했다. rok1954@maekyung.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