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상철 기자] 손흥민(26·토트넘 홋스퍼)은 부족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그는 ‘리더’로 성장하고 있다.
벤투호 1기의 주장은 ‘예상대로’ 손흥민이었다. 왼팔에 주장 완장을 두르고 한국-코스타리카전에 임했다. 후반 38분 이승우(헬라스 베로나)와 교체 지시를 받자, 김영권(광저우 에버그란데)에게 주장 완장을 넘겼다.
손흥민이 주장으로 A매치를 치른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모두 올해 벌어진 경기였다. 온두라스전 및 독일전과는 달랐다. 당시에는 주장 기성용(뉴캐슬 유나이티드)이 결장하면서 손흥민이 임시로 주장을 맡았다. 이번에는 정식으로 주장에 선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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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태희의 추가골을 축하하는 손흥민. 사진(고양)=김재현 기자 |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우승의 밑거름이 된 손흥민의 리더십이다. U-23 대표팀과 A대표팀은 분명 다르다. 손흥민은 ‘중간’ 위치다. 하지만 그는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간판선수다.
동료들은 주장 손흥민에 대해 호평했다. 4개월 전 “나 다음으로 흥민이가 주장이 돼 한국 축구를 잘 이끌어줬으면 좋겠다”던 기성용도 “앞으로 4년을 내다보면 흥민이가 하는 것이 맞다. 주장은 나라를 대표하는 영향력 있는 선수가 해야 한다”라고 힘을 실어줬다.
사령탑 교체와 함께 주장도 바뀌었다. 기성용은 곧 떠난다. 내년 1월 아랍에미리트에서 개막하는 2019 아시안컵이 마지막 무대다. 박지성, 이영표(2011년), 차두리(2015년) 등 주축 선수들이 아시안컵을 끝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기성용의 의지는 확고하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 그렇지만 손흥민은 주장과 관련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어려워했다. 그는 주장 관련 질문을 받을 때마다 옆에서 인터뷰 중인 기성용을 자주 쳐다봤다.
손흥민은 “오늘 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장에 나갔지만 언제나 나한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리더(기성용)이 옆에 있다. 나는 성용이형이 계속해서 팀의 리더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말을 그래도 행동으로 다 옮긴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손흥민의 말은 큰 영향력을 끼쳤다. 때로는 타이르고, 때로는 꾸짖어 원 팀으로 원 골(우승)을 이뤄냈다.
손흥민은 “아시안게임이야 경험이 많지 않은 후배들이라 싫은 소리도 했다. 그러나 A대표팀에서 나는 중간 위치다. 어린 편에 속한다. 나보다 리더십이 뛰어나며, 험 많은 형들이 있다”라고 했다.
코스타리카전 베스트11 중 손흥민보다 어린 선수는 없었다. 동갑내기 친구도 이재성(홀슈타인 킬), 1명이었다. 아무래도 어려웠을지 모른다. 독한 말도 아직 꺼내기 힘들다. 그렇지만 손흥민은 침묵하는 리더가 아니다. 고뇌하는 리더다. 말 한마디도 신중하게 생각하고 했다.
손흥민은 “경기 전 형들에게 했던 이야기는 ‘이 경기를 간절하게 생각하자’ ‘월드컵 독일전 후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자’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자’였다. 내가 말하기 전에 다들 (그렇게)생각했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손흥민의 말 한마디 때문은 아닐 지라도 손흥민의 말 한마디대로 뛴 태극전사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며 빠른 템포로 공격적인 축구를 펼쳐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특히, 젊은 여성팬의 유입으로 축구 부흥이 시작되던 경기였다. 5년 만에 A매치 매진 속 마치 콘서트를 방불케 했다.
손흥민은 책임감과 사명감을 이야기했다. 그는 “최근 한국 축구에 긍정적인 분위기가 형성됐는데,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 물론 잘할 때도 못할 때도 있다. 그러나 경기장 안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 경기장을 찾은 많은 축구팬에게 보답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모처럼 팬도 선수도 신나는 축구였다. 손흥민도 빠른 템포의 축구에 “힘들지만 재미있다. 이런 축구를 계속하고 싶다”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날 터진 두 골 모두 손흥민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더 이상 톡톡 튀지 않는다.